[해양수산법 판례여행 29] 어선제조업자는 어선건조허가 없이 어선을 미리 제작할 수 있을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29] 어선제조업자는 어선건조허가 없이 어선을 미리 제작할 수 있을까?
  • 한수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0.12.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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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허가 어선건조 사건
한수연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현대해양]

<스물아홉 번째 여행의 시작>

매일 같이 법을 바라보며 사는 저희 같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일반 국민분들에게 법은 참 낯설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 개의 개념이 하나의 단어로 묶이고, 이 단어에 벌칙 조항이 관여되어 법의 앞뒤로, 또 시행령, 시행규칙, 고시, 예규 등으로 정신 없이 왔다갔다 해야 하는 경우는 그 정도가 더해집니다.

요즘은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가 정말 잘 되어 있어, 법령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고시나 예규 자체를 찾기 위해 고생을 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법령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여전히 법의 해석은 쉽지 않습니다.

어선을 건조하려면 어선법 제8조 제1항에 따라 ‘건조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건조허가 없이 어선을 건조하게 되면 어선법 제43조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

어선법 제8조 제1항과 제43조, ‘건조허가 없이 건조하면 형사처벌된다’, 그리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선법 제8조 제1항의 ‘건조허가’에는 어선의 건조뿐만 아니라 건조의 발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어선을 직접 건조하는 행위와 어선제조업자에게 건조를 의뢰하는 발주 모두 어선법 제8조 제1항의 ‘건조허가’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선법 제43조에서 건조허가 없이 건조를 하였다는 것은 건조의 발주까지 포함하는 것일까요?

이 사건에서 A는 제주도에서 어선제조업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즉, A는 다른 사람들이 어선건조를 의뢰하면 그들을 위해 어선을 제조하여 왔습니다.

A는 나중에 어선건조 의뢰를 받으면 빠르게 납품을 하기 위해, 2001. 2. 10.경부터 2002. 3. 15.경까지 2.2톤급 FRP 선체 1개를, 2001. 3. 15.경부터 2002. 3. 19.경까지 4톤급 FRP 선체 1개를 미리 제작하였습니다.

A는 건조허가를 받지 않고 어선을 건조하였다는 이유로 어선법위반죄로 기소되었고, 1심에서 어선법위반이 인정되었습니다.

어선제조업자는 어선건조허가 없이는 미리 어선을 만들어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쟁점>

어선을 소유할 목적으로 어선건조발주허가를 받은 자로부터 어선제조를 의뢰받은 어선제조업자가 어선을 완성하려는 의사로 선체를 제작하는 경우 또는 어선제조업자가 후에 어선건조발주허가를 받아 오는 자의 의뢰를 받아 어선을 완성할 목적으로 미리 선체를 제작하는 경우, 그 선체 제작행위에 대하여 어선법 제8조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어선건조허가를 받아야 할까요?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03. 9. 26. 선고 2003도3005 판결>

구 어선법 제8조 제1항은, ‘어선을 건조·개조하고자 하는 자 또는 어선의 건조·개조를 발주하고자 하는 자는 해양수산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해양수산부장관 또는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43조는 이에 위반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선법은, 어선의 건조·등록 및 조사·연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어선의 효율적인 관리와 성능향상을 도모함으로써 어업생산력의 증진과 수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선박의 안전에 관하여는 선박안전법이 이를 규율하고 있는 점과 구 어선법 제8조의 규정형식 및 내용을 종합하여 본다.

어선의 건조를 직접 행하여 어선을 소유하려는 의사로 선체를 제작하는 경우에는 구 어선법 제8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어선건조허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선을 소유할 목적으로 어선건조발주허가를 받은 자로부터 어선제조를 의뢰받은 어선제조업자가 어선을 완성하려는 의사로 선체를 제작하는 경우 또는 어선제조업자가 후에 어선건조발주허가를 받아 오는 자의 의뢰를 받아 어선을 완성할 목적으로 미리 선체를 제작하는 경우에는 어선제조업자는 그 선체 제작행위에 대하여 구 어선법 제8조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어선건조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할 수 없다.

 

<판결의 의의>

어선법 제8조 제1항은 ‘어선을 건조하려는 자’ 또는 ‘어선의 건조를 발주하려는 자’ 모두 ‘건조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상으로는 어선건조와 건조발주 모두 하나의 건조허가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해양수산부 예규인 ‘어선법 사무취급요령’에 따르면, 어선건조의 대상은 그 허가를 받은 어선소유자가 직접 어선을 건조하는 경우를, 어선건조발주의 대상은 그 허가를 받은 어선소유자가 어선의 건조를 조선소 등에 의뢰하는 경우를 말합니다(제6조).

어선법 시행규칙 역시 별지 1호 서식에서 어선건조허가와 어선건조발주허가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선의 건조허가와 건조발주허가는 법상 명확히 구별됩니다.

이 상태에서 벌칙 규정인 어선법 제43조를 보면, ‘제8조 제1항을 위반하여 건조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어선을 건조하거나 어선의 건조를 발주한 자’의 의미는 ‘자신의 어선을 직접 건조하는 자가 건조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나 ‘자신의 어선을 다른 사람에게 건조하게 하는 자가 건조발주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A는 다른 사람의 어선을 제조하는 자에 불과하므로, 건조허가 또는 건조발주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제2심은 제1심을 파기하면서 무죄를 선고하였고, 대법원 역시 무죄를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스물아홉 번째 여행을 마치며>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나니 그 뜻이 분명히 드러났지만, 제1심조차 어선법위반죄를 인정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은 일반 국민분들뿐만 아니라 법조인들에게도 쉽지 않다는 뜻 아닐까요?

우리 생활에서 법을 떼어놓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누구도 대법원 판결을 장담할 수 없으니 A가 기소되는 순간 어선제조업자 분들이라면 빨리 어선건조허가를 받는 것처럼 법적 리스크가 있으면 즉시즉시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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