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30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30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0.12.09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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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파 이주홍의 『피리부는 소년』에 나타난 고통의 의미

[현대해양] 향파 이주홍 선생은 『피리부는 소년』을 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자가 이 작품을 펴내게 된 의도이다.

 

살기 좋은 곳을 낙원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낙원이 어디엔가 있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낙원이 못 되란 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어린이들은 낙원 속의 낙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학교의 선생님은 우리를 잘 가르쳐 주십니다. 때가 되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밤이 되면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를 보다가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이 위에 또 무엇을 욕심부리겠습니까? 이 세상 말고 또 어디에서 낙원을 바랄 것입니까?

그러나 과연 이 세상이 낙원만인 것일까요?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은 즐겁다고 생각하는 만큼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고르지 못한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 되는 것일까요? 이 책에 실린 주인공들은 조금도 그런 부정에 물들지 않고 끝까지 깨끗한 마음을 지켜나갑니다. 여러분들은 무릇 양심과 인내와 용기가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 세상은 낙원같은 즐거운 곳이기도 하지만, 고통이 있는 곳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부정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마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양심과 인내와 용기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향파 선생은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1952년 《파랑새》에 연재한 장편 소년소설로, 1955년에 세기문화사에서 『피리 부는 소년』을 출간하였고, 1994년에는 도서출판 산하에서 재출판하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 영구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에 살던 어머니하고 피란을 가게 된다. 아버지는 전쟁 통에 소식이 끊어졌고, 피란 도중 어머니와도 헤어져 부산까지 혼자 오게 된다. 영구는 다행히 같이 피란 오던 최준 아저씨의 도움을 받게 되고, 마음씨 좋은 장 노인 집에 머물게 된다. 영구는 장 노인 집에서 소를 먹이는 일을 하면서, 동네 친구들과 함께 갖가지 짓궂은 장난을 치며 잠시나마 전쟁을 잊고 즐겁게 살아간다. 이때 만난 친구들은 골목대장 형태를 비롯하여 동식, 장수, 장복, 종모, 주철 등 여러 개구쟁이들과 어울려 장난을 한다. 고기잡이, 참외서리, 곡마단 구경 등 때로는 심한 장난을 하지만 그는 항상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언젠가는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부모님이 자기를 찾아오리라 믿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영구는 억울하게 장 노인네의 돈을 도둑질하였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무작정 장 노인 집을 나와 최준 아저씨를 찾으러 부산으로 간다. 영구는 부산에서 이리저리 떠돌다 소매치기단에 들어가 갖은 고생을 하다가 우연히 옛 친구 승호를 만나 그 집에서 살게 된다. 방송국에 다니는 승호의 아버지는 영구의 피리 부는 솜씨를 칭찬하며 방송에 출현시킨다. 결국 승호의 도움으로 헤어졌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방송을 듣고 소식을 알려 온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그 후 전쟁이 끝나면서 영구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있는 서울로 돌아간다.

소설은 그 당시 전쟁 중에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할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해학적 문장을 통해 유머 있게 그리고 있는 솜씨는 특별나다. 그러나 이러한 유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닌 사실성을 기저로 한 웃음이며,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당시 우리나라의 아동문학에 재미성과 흥미성을 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아동들의 개성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드러내주고 있으면서도 결국은 하나같이 착한 사람으로 변모해 간다는 점을 강조하여 일반적으로 소년소설이 지니는 교훈성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를 지닌다.

「피리 부는 소년」은 아직도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남아 있는 시골 마을과 전쟁 중에 몰려온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아귀다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부산에서의 고단한 삶이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적 삶의 양식이 살아 있는 시골 마을 아이들의 참외 도둑질은 인지상정으로 넘길 만한 오락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부산에서 만난 소매치기단 아이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성인 세계의 폭력성이 영구와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수단화하고 억압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은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이 대거 유입됨으로써 이질적이고 배타적인 삶들이 혼재하는 공간인 부산을 배경으로 하여, 영구를 정신적으로 충격에 빠뜨린다.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의 생존의 공존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현실적 고통이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친구의 도움으로 소매치기단에서 벗어난다거나 잃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을 통해 좋은 결말을 이끌어냄으로써 재미와 교화성을 추구한 이주홍의 문학관이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피리 부는 소년」은 영구라는 소년이 시골 마을과 부산이라는 도시화 된 공간에서 겪는 체험을 통해 세계와 현실에 대한 변화와 성숙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로 오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이 작위적으로 그려짐으로써 소설의 개연성이 반감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에 있었던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바르고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평범하면서도 영원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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