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㉞ 아름다운 오름과 모살왓이 그립거든
김준의 어촌정담 ㉞ 아름다운 오름과 모살왓이 그립거든
  • 김준 박사
  • 승인 2020.12.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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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함덕리
함덕포구에서 본 서우봉
함덕포구에서 본 서우봉

[현대해양] 함덕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한라산 북쪽해안에 위치한 낮은 평지에 위치한 마을이다. 함덕리는 북촌과 신흥리 사이에 오목하게 섬으로 들어와 있다. 넓은 모살왓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지형 때문이다. 제주말로 모래는 모살, 밭은 왓(밧)이라 한다. 조개껍질이 부셔져 쌓인 모래로 물색이 에메랄드빛이다. 주민들은 감귤, 마늘, 배추, 수박 등이 많이 재배했었다.

제주여행을 할 때 몇 차례 함덕을 오갔다. 하지만 머무른 적은 없다. 중국 단체여행객들이 몰려들어 너무 시끄럽고 복잡했던 탓이다. 잠시 바닷가를 둘러보고 가곤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코로나19로 중국여행객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지없이 빗나갔다. 대형버스와 자가용으로 해안도로는 복잡했고, 해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숙소에서 하루 여행을 마친 여행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밤바다를 보기 위해서다.

 

큰 마을은 물통이 좋아야 한다

제주에서 마을을 이루려면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다. 우선 물이 있어야 하고, 연료를 구할 수 있어야 하고, 먹고 살 식량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식수다. 지금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지만 옛날에는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러와야 했다. 어머니들은 물동이를 이고 샘에서 줄을 서서 물을 퍼 담는 것이 하루 시작이었다. 제주에서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는 대신에 물허벅이라는 것을 등에 지고 물을 퍼 날랐다. 섬이 온통 화산돌로 이루어져 있으니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걸을 수가 없었다. 한걸음 두걸음 옮길 때마다 바닥을 살펴야 했다. 일찍부터 제주 어머니들이 머리에 이는 대신에 등에 지는 것을 택했던 이유다. 중산간의 마을만 아니라 해안마을도 사정은 똑같았다. 함덕리처럼 큰 마을은 물통도 커야 하고 많아야 했다.

함덕리 모래해변에 있는 산물 ‘모살개물’
함덕리 모래해변에 있는 산물 ‘모살개물’

함덕포구 앞에는 ‘앞갯물’이라는 물통이 있다. 마을 앞에 있는 포구라 ‘앞개’라 했다. 그곳에 있는 물통이다. 물이 많아 마을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용천수다. 이곳만 아니라 소래물, 거룻물, 숫두물, 고도물, 시긍물, 홀물, 드름물, 든물, 큰도물, 엉알물 등 많다. 이러한 용천수를 ‘산물’이라 한다. 이중 함덕리 설촌에 큰 영향을 미친 소래물과 고도물은 여전히 물이 솟고 있다. 소래물은 마을 가운데이 있는 산물로 네 칸으로 나누어 가장 웃물은 제사용이나 식수로, 다음은 음식물 씻는 물, 몸을 씻는 물, 마지막 물은 마소가 먹는 물이나 농사를 짓는데 사용했다. 모래해안으로 접한 너럭바위(제주말로 ‘빌레’라고 함) 근처 옛 포구 ‘모살개’ 근처에도 ‘모살개물(큰도물)’이 있었다. 이곳은 복원을 해 도로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장소이기도 하다. 도로 쪽 산물은 여자 전용이고, 바다 쪽 산물은 남자 전용이다. 입구를 보면 여자용은 바닷쪽으로 남자는 도로쪽으로 터져 있어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너럭바위 근처에서 해초를 채취하고 있는 주민
너럭바위 근처에서 해초를 채취하고 있는 주민

함덕1리 알동네 길가에 서물당이라 부르는 삼수신당이 있다. 함덕포로 가는 길이다. 서물은 물때 세물에 제를 올리는 제당이다. 그래서 한자로 삼수신당이라 했다. 세물은 조금에서 물이 살아나는 물때다. 서물당에 구전되는 이야기가 이렇다. 어느날 김첨주라는 어부가 낚시를 하러 바다에 나갔다. 무직한 것이 걸려 당겨보니 돌맹이였다. 바다에 던지고 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질도 없었다. 오늘 일진이 좋지 않구나 싶어 돌아가려고 낚시줄을 걷는데 묵직함이 전해졌다. 그런데 바다에 던졌던 같은 돌이 올라왔다. 다시 돌을 던지려고 하니 그 돌이 ‘나는 용왕의 딸로 죄를 지어 미륵돌이 되었으나 때가 되어 다시 용왕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으니 세물에 제사를 지내주시면 해상안전과 풍요를 내려주겠다’고 말을 했다. 김씨는 돌을 마을로 가져와 그 사실을 알리고 마을에 모셨다.

서우봉 목장에 있는 말
서우봉 목장에 있는 말

 

오름과 모살이 좋은 마을

서우봉에서 본 함덕리
서우봉에서 본 함덕리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함덕리 풍경은 서우봉과 함덕포 사이 모살왓이다. 흔히 함덕해수욕장이라 부르는 곳이다. 물이 많이 빠지는 날은 육지의 서해바다처럼 제주에서 보기 드물게 넓은 모래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함덕리 옛 사진을 보면 서우오름 서쪽 바닷가에 있는 작은 모래밭을 주민들이 해수욕장으로 즐겨사용했던 것 같다. 마을은 지금보다 훨씬 뒤쪽에 있었고 그 앞으로 ‘여우내’라는 건천이 있었다. 평사동과 오름 사이로 흘렀다. 지금 그 자리에는 캠핑장과 건물이 들어섰다. 패사층과 바다가 만나 연출하는 해변의 경관은 제주에서도 꼽힌다. 수심이 깊지 않고 완만해 1983년에는 국민관광지로 지정을 받아 편의시설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함덕리는 모살왓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마을에서 걸어거 갈 수 있는 오름이 있다. 함덕리와 북촌리 사이에 있는 서우봉은 기록에는 서산, 서산악, 서산망, 서산봉, 서우봉, 서산악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제주도 북쪽바다로 튀어 나왔고, 두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 원추형 산산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북쪽 봉우리에 ‘서산봉수’가 있었다. 일찍부터 주민들은 ‘서모’라 불렀다. 그래서 서모오름, 서모봉이라 불린다. 삼별초 항쟁때 삼별초군의 최후 격전지로 알려져 있으며, 생이봉오지 언덕에는 4·3항쟁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그 옆에 ‘순이삼촌’의 무대인 북촌이 있다. 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구축한 진지동굴도 20여 곳이 있다. 뜬밭이 많은 제주 북쪽 지질과 달리 서우봉은 토질이 농사짓기 좋아 일찍부터 일궈 농사를 지었다. 일부 말을 키우기도 했다. 서우봉은 마을로 들어오는 태풍과 파도와 계절풍을 막아주기도 했다. 또 근처에서 탐라국시절 기와를 구었을 것을 추정하는 가마터가 발견되기도 했다. 마을주민들은 2003년 오름을 산책로를 만들고 2011년 올레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상록수림으로 이루어진 숲길과 오름 가장자리를 돌아보는 둘레길과 봉우리로 오르는 길이 있다.

서우봉오름 숲길
서우봉오름 숲길

함덕리는 동쪽 서우봉에서 보는 모습이 아름답고, 서우봉은 서쪽 함덕포 잠수들이 이용하는 길에서 보는 모습이 아름답다. 오름과 포구 사이에 마을이 있다. 함덕포는 해안을 따라 조천읍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다. 김상헌의 《남사록》과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는 함덕포,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강림포라 했다. 강림포는 강녕개의 한자어이다. 《남사록》에는 함덕포는 병선을 감출 수 있는 포구라고 했다. 지금 함덕포구도 마을 안으로 들어와 있다. 아니 민가가 바닷가로 내려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강녕개는 지금보다 더 상부에 있었다. 물이 많이 빠지는 때는 포구 아래 올렛여에 배를 두었다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포구로 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제주시내보다 더 번화하고 먹거리도 맛집도 더 많은 곳이 함덕이다. 몇 년 전 방문했을 때와 또 달라졌다. 우리나라 내놓으라는 브랜드의 커피숍은 모두 있다. 패스트푸드점도 들어왔다. 여기에 제주를 앞세운 유명 먹거리 브랜드도 모두 모여 있다. 호텔 등 숙박시설도 들어왔다. 중국자본이 들어와 호텔을 짓고 식당도 운영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 단체여행객들은 그 호텔에 묵고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고 했다. 여행객이 많아지니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편한 사람도 있다.

함덕리는 큰 마을이지만 여행객이 모여드는 곳은 상가가 집중해 있는 바닷가와 해수욕장 주변은 1㎞ 남짓 되는 거리이다. 식당도 카페도 여행객들로 만원이다. 적잖은 사람들은 술은 물론 도시락이나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와 바닷가에 앉아서 먹고 마시며 즐기기도 한다. 한껏 멋스럽고 부럽기도 하다. 일부겠지만 즐겼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고 가는 사람이 있다. 새벽바다를 보기 위해 나갔다 기겁을 했다. 폭죽놀이를 한 흔적과 담배꽁초까지 널 부러져 있다. 새벽산책을 나왔던 사람들이 바닷가를 걷다가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씩 한다. 이 모습은 중국여행객들이 많이 올 때, 소란스럽다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눈을 흘겼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유명 브랜드의 커피숍과 호텔이 자리한 함덕리 해안
유명 브랜드의 커피숍과 호텔이 자리한 함덕리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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