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해운조선물류수산 저자와의 대화’ 성료
‘제6회 해운조선물류수산 저자와의 대화’ 성료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0.11.05 1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 주관…이진한·김인현 교수 발제
고려대학교 해상법연구센터(소장 김인현 교수)가 주관하고 고려대 바다최고위과정이 후원하는 제6회 해운조선물류수산 저자와의 대화가 지난달 31일 오후 7시부터 줌(ZOOM) 화상회의 방식으로 3시간 가량 진행됐다.
고려대학교 해상법연구센터(소장 김인현 교수)가 주관하고 고려대 바다최고위과정이 후원하는 제6회 해운조선물류수산 저자와의 대화가 지난달 31일 오후 7시부터 줌(ZOOM) 화상회의 방식으로 3시간 가량 진행됐다.

[현대해양] 6회 해운조선물류수산 저자와의 대화가 열렸다.

고려대학교 해상법연구센터(소장 김인현 교수)가 주관하고 고려대 바다최고위과정이 후원하는 제6회 해운조선물류수산 저자와의 대화가 지난달 31일 오후 7시부터 줌(ZOOM) 화상회의 방식으로 3시간 가량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저자인 이진한 고려대 역사학 교수,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고문현 숭실대 법대 교수, 송규진 고려대 교수(아세아문제연구소), 안광헌 현대글로벌서비스 사장, 차민식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 권오인 고려종합국제운송 사장, 김연빈 귀거래사 출판사 대표, 이석행 시마스타 대표, 최재홍 해양진흥공사 위원, 최영석 남성해운 상무, 권종호 이삭 대표, 유병세 전 조선해양플랜트 전무, 한기철 도선사, 이재근 MOA쉬핑 사장, 김동수 대한조선 상무, 김경복 한국선급(KR) 실장, 이종덕 삼성SDS 부장, 이현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 강동화 김&장 법률사무소 전문위원, 최종성 마린웍스 부장, 장상운 한국선주협회 직원 등 약 50명의 해운조선물류 분야 관계자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진한 교수 고려시대의 무역과 항해

첫 순서로 이진한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고려시대의 무역과 바다」 「고려시대 송상 왕래연구를 중심으로 왕성했던 고려시대의 무역과 항해에 대해 설명했다.

이진한 교수는 고려시대는 조운(漕運)을 위해 바닷가에 설치된 창을 중심으로 발달됐다며 바다와 강가의 마을에만 수령이 파견된 것만 봐도 바다를 중요시했다는 증거라고 제시했다.

이 교수는 고려시대에는 예성강 벽란도가 중심항으로 큰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도 상해 부근에서 고려로 오는 선박들은 가거도까지 물표가 없어서 2시간 동안 위험한 항해를 했다고 전했다. 이 당시에는 이른바 시인항해가 불가했다는 것.

또 이 교수는 흑산도의 여러 섬은 중국 장강으로 오고가는 방향과 같았으며, 가거도에서는 섬의 옆을 지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군산 근처 고군산도가 항해방식을 바꾸었는데 여기서 도선사가 승선하여 예성강으로 올라갔다. 송나라 때 나침반이 사용했으며, 고려에서도 나침반이 사용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태안 근처(안흥량)는 항해하기가 어려워 많은 조운선이 많이 침몰됐다고 전했다. 1207, 나주에서 개경으로 가던 마도1, 마도2, 3호선에서 화물의 물표에 적힌 수하인의 이름이 나와서 몇 년도 선박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이 교수는 송나라는 시박사(중국 당나라 때부터 해상 무역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라는 관아를 통해 고려로 배를 보낸 반면 고려는 성종 때부터 해운을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장보고 대사처럼 세력을 키우는 것을 우려했다는 것.

이 교수는 기록에 의하면 1123년 서긍이 고려에 사신으로 왔을 때 영파(중국 절강성 동북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에서 뱃길로 개경까지 15일 걸렸다고 말했다. 고려는 외교관계가 없는 송의 상인을 받아드렸는데 송 경덕진의 청자가 고려 인종의 묘에서 발견되는 등 송의 문화가 유입됐다는 것.

이 교수는 송나라와 달리 명나라는 해금정책(海禁政策)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명나라는 해금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자유로운 무역이 금지되고 조공만 가능했다고. 그는 이 때는 바다를 이용하지 않고 운하를 이용해 통행에 3~4개월 걸렸는데 조선 성종 때(1488) ‘표해록을 쓴 최부가 제주도에서 전남으로 가던 중 표류해 귀국할 때 밟았던 육로와 같다고 밝혔다.

관련 영상은 https://youtu.be/xix1LxNeZZE

 

김인현 교수 내가 경험한 바다와 수산

두 번째는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가 내가 경험한 바다와 수산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수필집 바다와 나, 선장교수의 고향사랑을 바탕으로 발제했다.

김 교수는 먼저 바다와 나30대 초반 선장으로서 실패를 극복하는 내면의 과정을 그리는 반면, 선장교수의 고향사랑」은 바다와 가정교육을 글로 표시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수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애피소드를 소개했다. 그는 수산업을 가업으로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의 어선은 6.25 피난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선거 때에는 막걸리 수송에도 사용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동해안 오징어 건조는 가족의 협업으로 했으며, 정치망 어장에 방어가 100마리 정도 들면 대박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동해안 고래는 국제협약(IWC 협약)에 따라 상업포경은 불가능하지만 혼획된 것은 해경의 확인과 검사의 서명이 있으면 거래와 시판이 가능하다며 뜻밖의 횡재사례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옆집은 목선을 건조하던 목수집이었는데 조부님이 철선을 계획조선하다가 결국 실패를 하게 됐다. 7살에 발생한 어선의 좌초사고는 집안을 도산으로 빠뜨렸고, 이는 자신에게도 좌초사고였다고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다.

김 교수는 집안이 수산업에 종사했기에 도움이 됐던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어선에서 일찌감치 멀미를 익힌 덕분에 해양대 항해실습 때 멀미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교수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 김 교수는 바다는 넓은 마음을 주고 끊임없이 치는 파도는 성실을 가르켜주었기에 현재의 자신이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절망은 희망의 막내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선장시절 당한 좌초사고에 대한 극복을 바다와 나에서 그렸다. 명심보감, 대학 공부, 고려대 대학원 법학과 진학, 그리고 부끄러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1999년 해양 전문지에 선장의 국제소송체험기를 기고해 당당해질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해상법의 거장 채이식 고려대 명예교수, &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등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해상법 교수가 된 나에게는 이제 바다는 객관의 바다이고 바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효용을 높이고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전해주어야 한다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관련 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B2FOWcSYBLI

한편, 7회 해운조선물류수산 저자와의 대화는 오는 7일 정필수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부원장의 역사속의 물류, 물류인라는 제목으로 허생전, 박제가 등 기존의 작품과 인물을 물류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할 예정이다. 이 또한 비대면으로 줌(ZOOM) 화상회의 방식으로 열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