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27] 어선의 총톤수 변경, 검사 안 받으면 형사처벌 될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27] 어선의 총톤수 변경, 검사 안 받으면 형사처벌 될까?
  • 김한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0.11.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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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톤수 어선법 위반 사건

[현대해양]

김한솔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스물일곱 번째 여행의 시작>

잘 아시다시피 배의 크기를 결정하는 가장 기초적인 지표 중 하나가 총톤수입니다. 법 역시 총톤수에 따라 어선검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하고, 소형선박 여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선법은 어선검사를 받지 않고 조업을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제44조 제1항 제4호).

그럼 이 어선법을 잘 지키기 위해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 사이트를 열고 어선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처벌규정인 어선법 제44조 제1항 제4호를 보시면 ‘제21조에 따른 어선검사를 받지 아니하고 어선을 항행 또는 조업에 사용한 자’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래서 제21조를 쫓아가보면, 어선의 검사라고 해서 제1항 제4호에 임시검사를 기재해 놓았습니다. 자, 그럼 임시검사는 어떤 내용으로 받아야 할까요? 그런데 아무리 제21조를 살펴보아도 어떻게 임시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 없습니다.

보통 제21조 아래 쪽에 제3항, 제7항 또는 제9항 등을 두면서 ‘위에서 정한 임시검사를 받아야 하는 내용, 절차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또는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한다’고 해서 그 길을 따라가면 되는데 그런 이정표가 없는 것입니다.

변호사인 저희들도 당황해서 어선법 전체를 살펴보아도 내용이 없습니다. 대통령령인 어선법 시행령에도 없습니다. 결국 어선법 시행규칙까지 내려갔더니 제47조가 있습니다.

제47조에 가서야 겨우 ‘법 제21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어선소유자가 임시검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다음 각 호와 같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제47조 제1항 제6호에 가보니 ‘법 제27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어선검사증서에 기재된 내용을 변경하려는 경우’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어선법 제27조 제1항 제1호를 가 봅니다. 제27조 제1항 제1호에는 ‘제21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정기검사에 합격된 경우에는 어선검사증서(어선의 종류·명칭·최대승선인원 및 만재흘수선의 표시 위치 등을 기재하여야 한다)’라고 쓰여있습니다.

이제 겨우 어선검사증서가 나왔는데, 여기에는 또 총톤수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어딘가 어선검사증서에 관한 내용이 있겠지 하고 살펴봐도 어선법에는 또 내용이 없습니다. 어선법 시행령에도 없고 그래서 다시 시행규칙을 살펴보았더니 제63조에서 겨우 ‘검사증서의 서식’이라는 제목으로 ‘법 제27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어선검사증서’라고 한 다음 다시 ‘별지 제61호서식’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별지 제61호서식을 보니, 겨우 둘째 줄 오른쪽에 ‘총톤수 Gross Tonnage’가 써 있습니다.

우리 헌법이 생각하는 국민은 당연히 법률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런 국민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지를 알기 위해서는 국회가 만든 법을 보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어선법만을 보고 어선법 시행규칙 제63조 제1항 제1호 가목의 별지 제61호서식을 찾아갈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민들은 어선법 제21조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국민이 알아서 어선법 시행규칙 제63조를 찾아 내려와서 별지 서식까지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A는 낚시어선인 00호의 소유자로, 00호에 관한 어선검사증서에 기재된 총톤수(9.77t)가 약 2t 정도 증가되도록 선체 상부구조물을 증설하였음에도 임시검사를 받지 아니하고 위 선박을 항행 또는 조업에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습니다.

2심인 창원지방법원은 ‘어선법 제27조 제1항 제1호는 어선검사증서에 기재할 구체적인 내용을 하위법령에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 않다. 어선법의 위임이 없으므로 총톤수를 어선법 제27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어선검사증서에 기재된 내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A를 어선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라며 A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고 검사는 대법원에 상고하였습니다.

A는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쟁점>

어선법 시행규칙 제63조 제1항 제1호 (가)목에 따른 [별지 제61호 서식]에서 어선검사증서에 기재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면서 총톤수를 포함시킨 것이 죄형법정주의를 준수한 것일까요?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00. 5. 26. 선고 2017도13426 판결>

어선의 효율적인 관리와 안전성 확보라는 어선법의 목적(제1조)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선의 종류와 규모 등에 따라 구체적인 검사의 필요성과 대상 등을 다르게 정할 필요가 있고 그에 따라서 어선검사증서에 기재할 내용이 정해질 것이므로, 어선검사증서에 기재할 사항을 법률에 자세히 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법 제21조 제1항은 어선의 검사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해양수산부령인 어선법 시행규칙에 위임하고 있고, 법 제27조 제1항 제1호에서 정기검사에 합격된 경우 어선검사증서에 기재할 사항에 관하여 괄호 표시를 하고 그 안에 ‘어선의 종류ㆍ명칭ㆍ최대승선인원·제한기압 및 만재흘수선의 위치 등’이라고 정하여 그 대상을 예시하는 형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 제21조 제1항은 정기검사에 합격된 경우 어선검사증서에 기재할 사항을 해양수산부령에 위임하고 있고, 그 구체적인 위임의 범위를 법 제27조 제1항 제1호에서 예시적으로 규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법 제21조 제1항, 제27조 제1항 제1호는 어선검사증서에 기재할 사항에 관하여 해양수산부령에 위임할 사항의 내용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였고, 이로부터 하위법령인 해양수산부령에 규정될 사항이 어떤 것인지 대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보인다.

 

<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결국 무죄를 선고한 2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유죄로 재판을 하라며 창원지방법원에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총톤수처럼 중요한 사항의 변경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국민이 예측할 수 있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물일곱 번째 여행을 마치며>

법조인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위 법령에 위임하여야 죄형법정주의를 지킨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판례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엄격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도 교과서에서 배우는 헌법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대법원에서 이런 부분을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무죄 판결이 불러올 엄청난 파장, 그러니까 이 사건의 경우 무죄가 유지되었다면, 국회가 새로운 입법을 할 때까지 누구라도 계속 총톤수를 마구 변경하여 개조를 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니, 사법부의 보루로서 이를 막으려는 의도가 더 강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큰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언제까지 대법원이 입법의 미비를 봐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판결로써 사회의 혼란을 막기보다 오히려 입법부에 경고를 함으로써 국가가 바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아직까지도 바뀌지 않은 어선법과 같은 사건들은 언제라도 헌법 위반으로 무죄가 선고될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이 언제 올 지 모르니 중대하게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법적 대응책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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