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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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0.11.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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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파의 소년소설 『아름다운 고향』에 나타나는 역사의식

[현대해양] 향파는 「어머니」, 「경대승」 등의 역사소설을 남겼다. 「경대승」은 고려시대 무인정변이라는 사실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어머니」는 정중부의 집권 이후 명학소의 천민 망이 망소이가 주도한 민중 봉기를 다루고 있다. 향파의 역사소설에 나타나는 역사의식은 기층 민중의 삶에 관심하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역사에 대한 무지와 건망증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향파의 이러한 역사의식은 소년소설에도 그대로 잘 드러난다. 향파의 소년소설 『아름다운 고향』에서도 이런 모습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년소설은 그 배경이 한말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현우’라는 한 인간의 개인사다. 허 별감이란 집에서 일하는 여종 삼월이와 머슴 김동 사이에서 태어난 ’현우’의 삶을 통해 기층민들의 삶의 지난한 세월을 핍진하게 그려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 형식이 아버지도 보지 못하고 유복자로 태어난 현우의 아들인 ‘영재’가 아버지의 일기를 발견해서 읽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어, 한 가족사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재미있다.

『아름다운 고향』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몇 가지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현우의 출생이 소위 요즈음 말대로 하면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그는 어릴 때의 꿈을 버리지 않고,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실현해 나간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고 날품풀이로, 지게꾼으로, 살아가는 부모 밑에서 성장해야 하는 ‘현우’의 삶이란 어떻게 보면 아무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음악적 재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소유자로 형상화함으로써 성장하는 소년소녀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다. 이 소년소설이 창작된 때가 1950년 초반(1952년 11월에서 1954년 1월까지 《소년세계》에 연재됨)이란 점을 감안하면, 향파 선생이 왜 이런 인물을 내세우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동란으로 사회가 힘들고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자라나는 세대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야 하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소년소설이 흔치 않은 시절 향파 선생은 자신의 소년 시절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구상한 것이다.

둘째는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현우’와 그의 아버지(영재의 할아버지)가 보여준 삶의 진정성이다. 특히 ‘현우’의 아버지는 일경으로부터 숱한 고문과 어려움을 당한다.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이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선조들이 당했던 고난의 역사의 한 장면으로 인식된다. 뿐만 아니라 ‘현우’의 성장기를 통해 보여주는 고난사는 정말 눈물겹다. 그가 친구 ‘태호’의 꼬임에 속아 고향를 떠나 서울로 가서 고학을 하는 동안 경험한 인생살이는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다. 굶는 것이 다반사이고 몇 번이나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를 살던 가난한 우리 선조들의 삶을 대변하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일자리를 구하고,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동란이라는 현실적인 고난 앞에서 자라고 있는 소년소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통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현실의 시련이 너무 심하면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면, 현재를 넘어서고 미래를 열어나가는 근원적 힘이 된다. 나리를 잃고 살아온 지난 세대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현재의 고난이 별 것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될 때,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이야기의 중심 주체가 자라나는 소년소녀가 되어 있을 때, 이야기를 읽게 되는 소년소녀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살면서 일본에 굴복해서 어쩌지도 못하고 협력자가 된 자도 있지만, 많은 선각자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자기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어린 소년소녀들에게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당에서 만났던 죽당 선생은 그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이다.

한번은 서당에서 아이들이 현우에게 학교에서 배운 창가를 한번 불러보라고 해서 일본 창가를 불렀다. 이 노래소리를 들은 죽당 선생은 현우를 불러서는 “지각없는 놈 같이 누가 너더러 그따위 노래를 하래”라고 호통을 치면서, “우리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한테 먹혔고, 또 아직도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일어서진 못하지만 그래 한신들 제 나라 찾아볼 생각을 잊는단 말이냐”라고 훈시를 하고 있다. 현실감 있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그래서 ‘현우’는 조금씩 역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몰래 읽는 『임진록』을 통해 사명당이란 인물을 알게 되고 사명당의 무용담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현우’의 역사의식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계기는 당시 서울에서 공부하고 고향에 잠시 들렸던 중학생 ‘용훈’과의 만남이다. 용훈이 역사 선생님을 통해 받은 역사 노트를 보고는 그의 마음에는 큰 움직임이 있었다. 많은 독립군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의식을 가슴에 새겨나간 ‘현우’는 결국 일본으로 가 그곳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귀국해서 고향에서 젊은이들에게 독립사상을 넣어주는 일에 전력하다가 34살에 감옥에서 옥사하고 마는 것으로 ‘현우’의 개인사는 끝나고 있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이 ‘현우’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향파 선생의 성장기와 많은 부분이 겹쳐진다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이 작품의 시공간이 그의 삶과 닮아 있다. 그가 일제 강점기 산골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를 했다는 사실과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가서 고학을 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노동을 하면서 힘들게 공부를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자신의 개인사를 토대로 『아름다운 고향』을 집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남다른 역사의식의 결과이다. 이 작품을 마무리하면서, ‘현우’의 유복자인 ‘영재’가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펼치는 생각이 향파 선생의 인간 삶에 대한 역사관이기 때문이다.

영재는 넋없이 매남산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무엇이고 인생은 무엇인가. 영재의 머릿속엔 아버지의 노트가 떠 왔다. 시작한 데도 끝 가는 데도 없이 흘러만 가는 세월. 큰 역사 작은 역사. 천만 년 뒷세상에 전해지는 역사. 물거품처럼 일었다 금방 꺼져 버리고 마는 역사.

향파 선생이 이제 중학생인 영재가 사는 곳을 『아름다운 고향 』으로 명명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아름다운 뜻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다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은 시련과 고난의 시간 속에서 단련되고 성숙된 인간이 남긴 삶의 흔적이다. 그래서 역사와 문학이 결합된 역사소설은 인문학의 중요한 한 뿌리가 된다. 향파 선생은 창작 과정에서 늘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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