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㉝ 꽃게에 울고 웃는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㉝ 꽃게에 울고 웃는다
  • 김준 박사
  • 승인 2020.11.10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
연평도 꽃게잡이(사진제공_옹진군)
연평도 꽃게잡이(사진제공_옹진군)

[현대해양]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는 시각, 최근 불을 밝힌 등대공원에 올랐다. 막 출어를 시작한 꽃게잡이 배들이 불을 밝히고 모이도에서 소연평도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멀리 우도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연평도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연평도의 가을은 꽃게로 시작해 꽃게로 끝난다. 어쩌면 연평도 일 년도 봄철 꽃게로 시작해 가을철 꽃게잡이를 끝으로 한해가 마무리된다고도 볼 수 있다. 백령도와 대청도처럼 수심이 깊지 않아 연안에서 물고기들이 모두 깊은 바다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면 젊은 사람들은 인천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한때 1만여 명의 주민이 살았던 섬이지만 지금은 2,000여 명을 오간다. 서해5도가 그렇듯이 연평도도 반은 주민이고 반은 군인과 군인가족들이다. 그 덕분에 연령구성을 보면 일반 섬과 달리 젊은 층 비중이 매우 높다. 연평도는 연평항을 중심으로 동부, 서부, 중부, 남부, 새마을 등 다섯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연평리까지 포함해 연평면을 이룬다.

2019년 다시 불을 밝힌 연평등대
2019년 다시 불을 밝힌 연평등대

명동보다 번성했던 조기골목

연평도는 조기로 유명한 섬이다. 1960년대까지 성어기에는 2~3,000 척 배들이 모여들었고, 식고미를 공급하는 상인, 배 수리공, 술 장사를 하는 사람들까지 수만 명이 연평도에 북적댔다. 관광자원으로 복원한 조기파시 골목에 사람들이 치어서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서울 명동에 비유할 만큼 번화했던 거리이다. 연평도는 어장이 좋은 섬이다. 1960년대까지는 조기파시가 형성될 만큼 조기가 많이 들어왔다. 그렇다고 연평도 사람들의 삶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외지 배들이었다. 연평사람들은 남자들은 선원으로 배를 탔고, 여자들은 물을 길러다 팔고 나무를 가져다 팔았다. 그 대신 조기를 받기도 했다. 잡은 조기들이 운반선으로 인천으로 나가기 전에는 간독에 넣었다가 말렸다. 바닷가 몽돌이 모두 조기건조장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어업조합 건물도 사라지고, 옛 정취가 나던 점포들도 새 건물로 바뀌었다. 수협 소유의 당시 어업조합 건물은 조기파시의 마지막 유산이었다. 리모델링을 해서 조기박물관이 비지팅센터로 활용하기 안성맞춤이었다. 그 자리에 반듯한 새 건물이 들어섰다. 조기는 수 세기 동안 황해를 지켰고 우리 밥상에 올랐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밥상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어디 하나 제대로 된 조기박물관 하나 없다. 연평도에 조기전시관이 그 역할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어촌문화와 해양문화의 현실이다. 그 골목에는 좁지만 육거리도 남아 있다. 또 옛날 장터도 가늠할 수 있다. 벽화로 칠하고 당시 사진도 벽에 붙였지만 옹색하기 그지없다. 섬을 관광객이 찾고 주민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원이나 콘텐츠에는 관심이 없다.

조기파시때 서울 명동보다 번화했다는 골목
조기파시때 서울 명동보다 번화했다는 골목

 

연평갯벌이 주는 것들

마을에서 당섬까지 이어지는 도로 동쪽은 연평항이지만 서쪽은 구지도까지 갯벌이 발달해 마을어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물이 빠지자 20여 명의 주민들이 호미를 들고 갯벌을 거닐며 낙지도 잡고 소라도 줍고 ‘갱’이라 부르는 고둥도 잡는다. 특히 고둥을 이용해 만드는 갱국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김치를 담글 때도 까나리액젓과 새우젓만 아니라 굴을 넣어 시원한 김치를 즐겨 먹는다. 이 김치를 ‘새앙김치’라고 한다. 봄에는 바지락 등 조개를 파고 겨울철에도 굴을 까기 위해 주민들이 이용하는 갯벌이다. 최근에는 개체 굴 양식을 시도하고 있다. 갯벌은 1970년대 김 양식을 했던 곳이다.

조기의 신 임경업장군이 조기를 잡았다는 안목어살
조기의 신 임경업장군이 조기를 잡았다는 안목어살

당섬의 안목선착장과 모이도 사이에는 어살을 놓아 조기를 잡았다. 임장군이 중국으로 가던 중 식량이 떨어져 조기를 잡았다고 전하는 ‘안목어살’이 이곳이다. 지금도 그물을 놓아 조업을 하고 있다. 물이 빠지면 안목에서 모이도까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바닥이 들어나지만 물이 들면 들물에 강화나 덕적에서 올라오는 물이 연평도를 지나 소연평과 안목사이로 빠르게 흐른다. 그 사이에 어살을 놓아 물고기를 잡았다. 지금은 임장군을 충민사로 옮겨 모시고 있지만, 옛날에는 당집이 당섬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런 이유로 당섬이라 했다고 한다. 이렇게 갯벌이 발달한 탓에 낙지, 바지락, 민꽃게, 고둥 등을 채취해 밥상에 올릴 수 있지만 배를 타기 위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당섬 선착장까지 나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연평항은 국가어항이다. 최근 인천과 연평도를 잇는 여객선의 운항횟수가 1일 1회에서 2회로 늘어나 급한 당일치기 업무도 가능해져 다소 불편함이 해소되었다.

 

꽃게 덕에 먹고 산다

연평도에는 대나루라는 곳이 있다. 유일하게 쌀농사를 짓는 곳이다. 남북이 나누어지기 전에는 해주를 오갈 때 이용했던 나루터이며 가장 큰 포구였다. 그래서 지명도 대나루라고 한다. 그곳에서는 북한의 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섬 주변에 배에 꽂힌 깃발을 두 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저 배들은 붉은 깃발을 꽂은 꽃게를 잡는 중국배들이다. 저 배들이 잡는 꽃게는 중국산이 되고 연평도 어민들이 잡으면 국산이다. 같은 바다에 있는 꽃게지만 누구에게 잡혀 어떻게 유통되고 관리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다.

지금은 봄과 가을에 꽃게를 잡아먹고 살지만 1960년대까지는 조기파시로 먹고 살았다. 1967년 촬영한 사진에는 포구에 400여 척의 배들이 모여들었다. 남해 여수, 진도, 거문도의 배는 물론 남해의 배들도 연평도까지 조기를 잡기 위해 올라왔다. 섬 주민들 중에는 아직도 당시 조기잡이를 하면서 불렀던 노동요 ‘배치기소리’를 흥얼거리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1967년 연평항에 모여든 조기잡이 배들
1967년 연평항에 모여든 조기잡이 배들

당시에는 꽃게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그물을 훼손하고 떼어내는데 힘들어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봄에는 큰 것 몇 마리 반찬으로 쓸 것을 제외하면 모두 버렸다. 쉽게 변하고 보관도 어렵고 유통은 더욱 힘들었다. 냉동창고가 보급된 후에야 꽃게가 도심까지 유통될 수 있었다. 물론 조기가 연평바다에서 사라지면서 꽃게잡이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꽃게값이 금값이다. 꽃게를 잡아 일년을 먹고 산다. 미리 그물을 놓았다가 새벽에 가서 거둬오고 새로운 그물을 놓는다. 그렇게 거두어 온 그물은 작업장에서 꽃게를 딴다.

연평항에 내려 마을로 들어오는 첫머리에 엄청나게 큰 쇠로 만든 닻들이 여행객을 반긴다. 바다에서 꽃게를 잡는 그물을 고정시키는 닻들이다. 곳곳에 쌓여있는 그물과 부표들도 역시 꽃게잡이에 사용하는 어구들이다.

백령도는 농사로, 대청도는 관광으로, 그리고 연평도는 어장으로 먹고 산다고 한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소연평도 등 서해5도는 접경지역이다. 조업은 일출 이후부터 일몰 전까지 허락되어 있다. 대신에 백령어장, 대청어장, 연평어장은 다른 지역 어선들이 들어와 조업을 할 수 없다. 야간조업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에 지역민만 조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구지도 주변의 갯벌과 마을어장으로 낙지, 바지락, 굴 등을 채취한다.
구지도 주변의 갯벌과 마을어장으로 낙지, 바지락, 굴 등을 채취한다.

하지만 꽃게철이면 중국어선들이 선단을 이루듯 몰려와 싹쓸어 가고 있다. 연평도 망향대에서 바라본 바다에 수십 척의 검은 배들이 석도 주변에 정박해 있었다. 모두 붉은 오성기를 달고 있는 꽃게잡이 중국어선들이다. 서해5도에 조업 중인 우리 어선은 약 240여 척인데 이곳에 출몰하는 중국어선은 연평균 5만 3,000여 척이라고 한다. 이들은 꽃게 성어기인 봄철과 가을철에 더 극성이다. 이들의 쌍끌이 조업으로 어족자원의 고갈만 아니라 해양생태계 파괴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 어구 훼손도 심각하다. 현실적으로 중국어선의 불법어업을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NLL을 넘어온 어선을 단속하는 정도다. 이마저 야간에 몰래 와서 그물을 넣고 조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코가 작은 그물을 이용해 바닥을 훑어내는 쌍끌이 조업을 하기에 어족자원의 고갈은 물론 해양생태계 파괴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남북관계까지 좋지 않다면 연평도 주민의 생활은 어려워진다. 주민들의 소박하면서 가장 큰 소망은 자유롭게 그물을 놓고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날이 밝자 소연평 주변으로 꽃게잡이를 위해 출어하는 어선들
날이 밝자 소연평 주변으로 꽃게잡이를 위해 출어하는 어선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