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내부갈등 이대로는 안된다
수협 내부갈등 이대로는 안된다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08.10.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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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고 경영자들의 덕목(德目)

 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인데, 그 속뜻은 가까운 사이의 어느 한 쪽이 망하면 다른 한 쪽도 온전하게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6일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하는 정보사이트(SERI CEO)회원 413명을 대상으로 아주 흥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오늘 내가 있기 까지 가장 힘이 되어 준 습관을 사자성어(四字成語)로 표현해 주십시오.”

 20일부터 24일까지 5일동안 실시한 조사에서 다섯사람 가운데 한 명 꼴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형설지공(螢雪之功) 16.1%,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14.6%로 그 뒤를 이었다.

 脣亡齒寒이라는 말은 중국 노(魯)나라 때 작성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웅호걸이 할거하던 중국의 춘추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403년)말엽, 「진」(晋)의 헌공(獻公)은 「괵」이라는 나라를 공격할 야심을 품고 「우」나라의 우공에게 길을 열어줄것을 청한다. 이때 우공의 충신 궁지기(宮之奇)는 헌공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우공에게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으며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하게 될 터이니 절대로 길을 열어주어서는 안된다”고 간청한다. 그는 輔車相依(보거상의 : 수레의 짐받이 판자와 수레는 상호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脣亡齒寒이라는 옛 속담을 거론하면서 결사반대하였으나 재물에 눈이 어두운 우공을 설득하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결국 「진」의 헌공은 궁지기의 예언대로 「괵」을 점령한 연후에 「우」나라까지 점령하게 된다.

 1592년 4월 13일, 정명가도(征明假道), 즉 명나라를 정벌하려 하니 길을 열어 달라는 터무니 없는 명분을 내세워 7년의 세월 동안 조선반도를 피바다로 물들였던 임진왜란의 역사와도 상당부분 닮아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최고경영자들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인간관계를 상당히 중시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우리나라 CEO들의 생각이 상생과 화합의 철학으로 다져져 있다는 사실은 무더위를 식혀주는 청량한 가을 바람같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잃을 것 밖에 없는 싸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올 여름 우리를 무덥고 지치게 했던 것은 비단 기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7월 14일 예기치않게(?) 터져나온 수협중앙회의 내부갈등이 우리 해양수산인들의 마음을 더욱 지치고 짜증스럽게 만들고 있다. ‘예상된 싸움’,‘계획된 시비’라는 각계각층의 비아냥에 처참한 심정으로 낙담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수협의 정체성회복 노력이 지도사업, 신용사업 부문 간의 갈등과 대립양상으로 비화된데 대해 스스로 부끄럽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외환위기를 맞은 지 올해로 꼭 10년째 되는 해다.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처절한 구조조정의 역경을 겪어야만 했다. 외환위기 10년이 지난 지금, 많은 기업들이 안정궤도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저변에는 기업파산과 가정파탄의 아픔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 수협도 예외는 아니다. 수협법에 우선하는 공적자금특별관리법에 의거하여 체결된 MOU(이행각서)로 인하여 수협의 정체성이 삼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점은 그동안 수도 없이 지적되어 왔다. MOU때문에 수산업협동조합 존립의 이론적 근거가 훼손되고, 수협중앙회와 일선수협, 나아가서는 신용사업부문과 지도사업부문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난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해답은 간단하다. MOU를 고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공적자금을 갚아버리면 될 것 아닌가 . 갚을 돈이 어디 있냐고? 신용사업부문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1,000억원의 잉여금을 적립하여 갚아나가든지, 빚 갚을 때까지 10년 세월을 기다리다가는 수산업 전체가 파산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된다면 정부더러 갚아달라고 할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수협이 떠안고 있는 미처리결손금 9,887억원을 「상환의무 없는 출연」으로 돌려 주도록 사생결단으로 요구해야 한다. 한 두차례 요구했는데 안된다고 해서 중도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자세다. 일반금융기관의 경우 정부에서 출연한 예가 있다. 수산업을 파탄지경으로 내몬 데는 정부의 책임이 막중한데 왜 어업인들만 홀대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농협의 경우는 신·경(信·經) 분리에 10~15년의 유예기간을 요구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경제,신용,지도사업분리에 약 12조 4천억~13조7천억원의 자본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정부의 지원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겙繹龜??꼭 필요하다면 정부에서 소요자금을 지원하라는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농협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주길 바란다.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자면 때로는 짜증도 나고 싸울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철벽같은 제도는 그대로 둔 채 사람만 바꿔치운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 얻을 것은 없고 오히려 정부와 알력만 더 할 뿐이라면 이 쯤에서 화해하고 화합하는 것이 천번 만번 현명한 일이다. 脣亡齒寒의 고사(故事) 를 다시 한번 가슴속에 되새겨 주길 바란다. 입술이 없으면 어찌 이빨만 시리겠는가?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법이다.

 

 200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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