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27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27
  • 남송우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0.09.03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좌』 동인지에 스며든 향파의 인문주의 정신
동인지 『윤좌』
동인지 『윤좌』

부산에서 향파 이주홍, 요산 김정한, 청마 유치환, 정운 이영도 등 문학사에 길이 남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동인지가 『윤좌』이다. ‘여럿이 둘러앉았다’라는 의미의 동인지 ‘윤좌’(輪座)는 이들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했다. 1965년 6월 5일에 창간된 『윤좌』 창간호는 ‘불면 날아갈 듯’ 얇은 잡지였지만 알찬 내용과 맛깔스러운 편집이 돋보였다. 이 동인지 창간 작업을 주도한 인물이 향파 선생이었다.

창간 동인으로는 향파, 요산, 청마, 정운뿐만 아니라 의사이자 수필가였던 박문하, 소설가 솔뫼 최해군 선생 등이 힘을 더했고, 동물학자이자 교육자인 김하득, 국어학자 박지홍, 영문학자 김종출, 경제학자 김석환, 작곡가 이상근, 영화평론가 허창, 식물학자 이용기 선생 등도 참가했다. 『윤좌』 창간호에는 이들의 글들이 둘러앉아 있는 듯, 선후배 관계없이 가나다 순으로 실려있다. 윤좌 창간호에서 특기할 만한 사안은 청마 시인에 의해 작성된 동인 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은 먼구름 한형석 선생의 서체로 다음과 같이 선언되고 있다.

제각기 가진 行路 위에서/앞서 가고 뒤서 가고 하는 중/지극히 우연히 이뤄진/한 무리의 一行인지 모른다./거기엔//까다로운 그 무엇도 있을 턱이 없다./제 각기의/마음 내킨 행색이요 목적이면서도/서로가 주고받는 심중을/속임없이 이야기하고 또 듣고 하는 가운데/어느새 마련된/마음과 마음의 통로와 유대를/서로가 아끼게 된/그것인 것이다.//그리하여/앞길을 가름하여/알맞은 시간에 알맞은 곳/훤히 트인 草原의 한 그루 나무 그늘이나/맑은 계곡 기슭 같은 데서/걸음을 쉬어 둘러앉아/무거웠던 마음들을 풀어놓곤//다시/서로 이야기에/꽃을 피우는 것이다. <靑馬>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각기 다른 길을 가는 자들이 함께 모여 창간한 『윤좌』는 처음에는 1년에 두 차례씩이나 출간하는 열정을 보였으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몇 해씩 거르기도 했다. 1973년 이후에는 해마다 한 권씩 나와 반세기를 이어온 『윤좌』가 되었다. 오래된 『윤좌』 속엔 최현배, 박경리, 박목월 선생의 편지글도 있고, 매 호마다 선보인 최해군 선생의 단편소설도 만날 수 있다. 1978년 제9집에선 박문하 선생의 글 「새벽에 돌아오다」가 창간호에 실리지 못한 이유(외설스러움(!))가 무려 13년 만에 밝혀지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의 일이다.

박문하 수필가는 창립 회원이기는 했지만, 창간호에는 그의 글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13년이 지난 후에 『윤좌』에 공개된 것이다. 사실인즉 박문하 수필가가 원고를 향파 선생한테 보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외설스러워 그 원고를 그대로 싣지 못하겠다고 박문하 수필가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마음이 상한 박문하 수필가는 아예 원고를 수정하지도 않고 창간호에 싣는 것을 포기했다. 그 당시에는 『윤좌』를 학교에도 배포하려 했기에, 박문하 수필가의 글이 학생들의 교육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한동안 박문하 수필가는 원고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2015년에는 창간 50주년을 맞아 50주년 특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창간 50주년 기념호는 「한국 수필, 부산 수필의 현황과 과제」, 김이상 류영남 성병오 이규정 이진두 등 윤좌 동인들이 쓴 「나에게 ‘윤좌’란 무엇인가」, 구순을 맞는 윤좌 동인 피아니스트 제갈 삼, 팔순을 맞는 박선목·박홍길 동인을 위한 축하글 등을 담고 있다. 50년 동안 지나오면서 『윤좌』의 여정 가운데서 기록되지 않은 사연들도 많다. 부산의 대표적인 명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것이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둘러앉은 『윤좌』의 뒷자리에는 언제나 웃음과 해학과 낭만이 깃든 자리였기 때문이다.

1989년 발행된 『윤좌』 제19집에는 지난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소설가 최해군 선생이 쓴 단편 「이승의 윤좌·저승의 윤좌」가 실려 있다. 향파 선생의 유택에 이미 세상을 뜬 윤좌 동인들이 하나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이제 초창기 동인들은 거의 다 이 땅을 떠났다. 이미 세상을 떠난 동인들은 유치환(1969), 김종출(1974), 박문하(1975), 이영도(1976), 이용기(1978), 김하득(1981), 이주홍(1987), 손동인(1992), 한형석(1994), 김정한(1996), 김동주(1997), 김병규(2000), 김석환(2008), 박지홍, 김용태(2011), 김영송(2013), 이태길(2014), 최해군(2015), 이규정(2018), 김봉진(2019), 김대상(2020) 등이다. 솔뫼 선생의 25년 전 소설처럼 윤좌의 선배 동인들은 그렇게 다른 세상에서 여전히 둘러앉아 이승에서 못다 나눈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좌』 동인은 문학뿐 아니라 음악, 교육 등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대선배들의 모임이었던 만큼 동인지 윤좌의 50년 발자취는 부산지역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문화사적 자료들이다. 실린 글 중엔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많지만, 지역 동인들의 다양한 문화적 삶의 발자취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좌』 동인들은 어느 한 사람의 주도보다는 함께 나누고 교류하는 삶을 지향했다. 인간의 다양한 개성과 자유와 평등을 『윤좌』를 통해 실현해 나가는 인문학적 공동체였다. 원래 『윤좌』라는 말은 불교에서는 부처의 자리에 이르는 말이었고, 기계공학에서는 차축(車軸)의 일부분으로서 윤심(輪心)을 고정시키는 부분을 말한다.

그런데 『윤좌』 동인에 와서는 다양한 인간 삶의 조화로운 상태를 지향하는 인문학적 의미로 승화되었다. 그 『윤좌』가 아직 후배 동인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향파 선생이 뿌린 문화의 씨앗이 지닌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