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㉛ 우리는 경운기를 타고 바다로 간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㉛ 우리는 경운기를 타고 바다로 간다
  • 김준 박사
  • 승인 2020.09.0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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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심원면 만돌포구

[현대해양] 바다에 나갈 때 배를 타고 나는 것이 상식이다. 가까운 바다에 나갈 때는 선외기를 타고, 좀 먼 바다로 나갈 때는 규모가 큰 어장 배를 가지고 나간다. 그런데 배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바닷일을 하는 마을이 있다. 심지어 경운기나 트랙터를 타고 나가기도 한다. 그런 대표적인 마을이 전라북도 고창군 곰소만에 위치한 심원면 만돌마을이다.

만돌리는 전라북도 심원면에 있는 마을로 120여 가구에 390여 명이 거주한다.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는 60여 가구다. 주민들은 간척 농지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바지락과 김 양식을 하고 있다.

 

아이, 바다를 품다

오랜만에 여름 갯벌을 맘껏 누볐다. 고향처럼 편안하고 아늑하고 부드럽다. 대죽도까지 2.7㎞가 넘는 갯길을 왕복으로 걸었다. 그 길에서 생태지평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해양환경교육여행학교> ‘아이, 바다를 품다’에 참여한 아이들을 만났다. ‘코로나19’로 답답했을 아이들이 갯벌을 만났으니 그 수런거림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 길에서 백합, 동죽, 바지락, 큰구슬우렁이, 갈매기, 민챙이 등을 만났다. 만돌마을의 갯벌체험은 물때와 날씨만 좋다면 항상 진행한다.

만돌마을은 어촌체험마을이다. 100여 곳의 어촌체험마을 중에서도 드물게 해양생태교육과 함께 체험이 이루어지는 마을이다. 2018년 ‘람사르 고창갯벌센터’를 만들어 주민해설사 교육과 양성, 프로그램개발, 모니터링을 지속해온 결과다. 잡는 체험 중심의 갯벌체험을 생태교육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그동안 갯벌을 막아 농지를 만들었고, 공장을 짓기도 했다. 이제는 친환경 재생에너지 단지를 만든다고 야단이다. 반면, 갯벌을 보는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세계 5대 갯벌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갯벌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쓸모없는 땅’이라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다. 람사르습지나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부터 다른 방식의 갯벌체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수년간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주민교육을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적용이나 개선이 되지 않는 것이 어촌체험이다. 바다와 갯벌을 여전히 이용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아이들 20여 명은 주민해설사 3명의 안내와 인솔 선생님 3명의 지도를 받고 있다. 갯벌을 이용할 때도 규칙이 있다. 칠게, 동죽, 바지락, 도요새 등 생물들도 공존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갯벌은 놀이의 대상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을 공감하는 장소이다.

갯벌체험을 하는 가족들
갯벌체험을 하는 가족들

바지락밭을 일구다

만돌마을은 가장 너른 바지락 밭을 가진 마을이다. 바닷물이 물러가면 2~3km 정도의 갯벌이 펼쳐진다. 일찍이 습지보호지역, 람사르습지 등 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신안갯벌, 순천갯벌, 벌교갯벌, 서천갯벌과 함께 ‘한국의 갯벌’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자연유산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 갯벌에서 바지락 양식, 김 양식, 갯벌체험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양식은 아니지만 동죽은 물론 백합도 서식한다. 갯벌체험장에서 채취하는 것은 주로 동죽이다. 양식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경운기를 이용해야 한다.

대죽도 주변에서 가만히 양식한 바지락 채취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바지락을 채취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고압분사기로 갯벌에 물줄기를 쏘아 파헤치면 삼태기처럼 생긴 바구니로 바지락을 쓸어 담는다. 이 도구를 ‘솟대’라고 부른다. 그 원리는 과거 새만금 갯벌에서 개불을 잡기 위해 뽐뿌배의 작동방식과 흡사했다. 그 당시 갯벌생태계의 파괴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바지락을 채취했던 것은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호미와 갈퀴를 사용했다. 솟대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채취한 바지락은 호미나 갈퀴로 채취하는 것과 달리 꼼꼼한 세척과정과 알맹이가 없는 껍질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어민들이 나이가 많고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고안해낸 채취방식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지락 양식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맨손어업에 해당하는 채취방법은 아니다. 더구나 세계자연유산 등재의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선정이 된다면 반드시 채취방법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적절한 채취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바지락 양식장에서 바지락을 채취하는 어민
바지락 양식장에서 바지락을 채취하는 어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살꾼’이었다

그물이 설치된 갯벌에서 어마어마한 갈매기 떼를 만났다. 곰소만의 갈매기는 모두 모인 듯했다. 갈매기들은 모두 고기가 갇힌 그물을 털어내는 주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펼쳐질 어마어마한 만찬을 떠올리고 있었다. 경운기를 타고 그물의 주인이 들어올 때부터 갈매기는 모여들기 시작했다. 낌새를 알고 있던 것이다.

이 그물을 어민들은 ‘들장’이라 한다. 덤장인들은 들장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서해안의 대표적인 고기잡이인 ‘어살’의 흔적이다. 어살은 어전이라고도 부른다. 연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돌, 나무, 대나무 등을 쌓거나 세우고 발을 쳐서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어구이자 어법이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전국에 총 358곳의 어살이 있었다. 가장 많은 곳은 충청도로 136곳이며 다음은 황해도(127곳), 전라도(50곳), 경기도(34곳), 경상도(7곳), 함길도(4곳) 순이다. 전라도에서는 무장에 34곳이 있었다. 무장은 오늘날 고창군을 말하며 그곳이 곰소만이다. 어살은 조선후기 재정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균역법을 통해 과세체계를 정비할 만큼 조선후기 재정을 확보하는 중요한 재원이었다. 마을에 한 노인이 기억한 어살만도 밤살, 소대미, 꾹전, 목재살, 조갯살, 두루둘, 산기전, 새살, 옆바위, 웃살, 간데살, 아랫살, 회목상 등 10여 개에 이른다. 한국수산지(1910) 난호리(만돌)에 52호가 살고 있으며 어살이 많다고 했다. 어촌계가 만들어지기 전, 1960년대 조기잡이가 성할 때 주민들은 ‘살꾼’으로 생업을 유지했다. 지금도 세 개의 어살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 9개의 어살을 운영했다. 어살은 살만들기, 발엮기 등 개보수와 그물털기, 운반하기, 판매 등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18세기 이곳 어살을 사고 팔렸던 문서도 남아 있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어민들보다 갈매기가 더 기다린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어민들보다 갈매기가 더 기다린다

포도알처럼 잘 붙게 해주세요

지난해 10월 초 조금 물때에 맞춰 만돌마을 선창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 양식을 위해 포자를 붙인 김발을 바다에 넣으면서 양식이 잘 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김 채묘를 위해 중요한 시기이다. 지주식 김 양식을 하는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고창수협의 도움으로 1991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풍어제를 지낸 후 각자 포자를 붙인 김발을 경운기로 운반해 양식장에 설치한다. 이때 고기, 과일, 떡 등의 제물을 차려 놓고 ‘용왕님, 포자가 포도알처럼 잘 붙게 해주세요’라고 부탁을 한다. 어떤 주민은 ‘서해 용왕님, 너울너울 김발에 포자도 잘 붙어 올해 김 농사 풍년들게 해주세요’라고 두 손을 모았다.

마을에 굴뚝 만개의 솟아 흥할 곳이라 ‘만돌’이라는데, 굴뚝 대신 갯벌에 꽂은 김발을 맬 지주가 만 개는 될 것 같다. 풍어제를 마친 어민은 김발을 실은 경운기를 몰고 바다로 향했다. 갯벌을 지나 앞바퀴가 잠길 정도까지 들어간 후 멈추고 김발을 내렸다. 바닷물이 허리춤을 넘어 가슴까지 올라왔다. 그제야 어민들은 김발을 펼치고 줄을 당겨 기둥에 묶었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작업은 오후 2시가 넘어서 끝났다. 바다 위에서 간단한 고사와 고시래로 김 풍년을 기원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어민들의 정성과 서해용왕의 음덕으로 열흘 정도 지나면 붉은 색 포자가 김발에 엉겨 붙는다.

만돌마을에서 하는 김 양식은 물때에 따라 바다에 잠기고 바람에 씻기고 햇볕에 노출되며 자라는 재래식 김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막 구운 고소한 냄새의 재래식 돌김이 떠오른다. 흰쌀밥을 올려 조선장에 찍어 먹는 맛이란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쌀도 귀하고, 김은 더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명절에나 세찬으로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 돼지고기 한 근에 김 한 톳이었다. 김 한 장을 나누는 것도 격식이 있었다. 할머니는 4등분, 아버지는 6등분 그리고 우리는 수저를 덮을 정도로 찢어서 나누어 주었다. 이제 그 김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수산물 한류 1호인 셈이다.

지주식 김을 채취하는 모습
지주식 김을 채취하는 모습

 

이젠 바다와 갯벌도 브랜딩 하는 세상이다. 그곳에서 잡거나 채취한 수산물을 직접 브랜딩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갯벌을 세계유산이나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것만 아니다. 이미 그 효과를 누리고 있는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의 ‘와덴해갯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창군은 고창갯벌을 프리미엄 갯벌이라 부른다. 고급스럽고 특별한 갯벌이란 의미이다. 서식하는 갯벌생물이나 자연경관을 살펴보면 그렇게 부르는 점에 이견이 없다. 욕심을 부린다면, 그 갯벌의 지주식 김, 바지락 양식법도 지속가능한 갯벌을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물론 그 가치에 맞는 유통질서가 만들어져야 하고 구매자의 선택도 수반돼야 한다. 그 일은 어민과 어촌계에서 시작된다.

갯벌생태교육을 위해 만돌갯벌을 찾은 아이들
갯벌생태교육을 위해 만돌갯벌을 찾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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