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건진 미역에 얽힌 기억
바다에서 건진 미역에 얽힌 기억
  •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선장)
  • 승인 2020.08.25 2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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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선장)

[현대해양] 미역만큼 우리 국민들에게 친근한 것도 없다. 출산한 산모에게 미역국은 필수 음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일날에도 우리는 미역국을 먹는다. 나는 미역에 대하여 일반 국민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미역을 산출하는 바닷가 출신이라서 먹기만 하는 입장에 더하여 미역을 만드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5월이 되면 바다에서 따온 미역이 동네 곳곳의 발에 펼쳐진다. 특별한 기술은 필요없다. 가는 대나무로 만든 발에 폭 50센티 길이 2미터 정도가 되도록 생미역을 펼쳐둔다. 5일 정도 지나면 생미역이 다 마르게 된다. 이렇게 하여 말려진 미역을 오리라고 부르는데, 미역은 한 오리에 얼마씩으로 판매된다. 

동해안의 미역은 맛이 좋아서 예나 지금이나 대중에게 인기가 높다. 우리 동네에서 나는 미역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연산 돌미역이고 하나는 양식미역이다. 돌미역은 소위 짬이라는 돌바위에 자연적으로 미역이 만들어져서 자란다. 어촌계가 해안가 바위 등 관련 해산물의 채취권을 가지는데,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연산은 해녀들이 자멱질을 해서 미역을 물밑에서 따서 방태기에 넣어서 뭍으로 가져온다. 자연산은 줄기 등이 좀 딱딱한 편이다. 이에 반하여 양식으로 미역을 생산하기도 한다. 가까운 바닷가에 줄을 쳐서 그 줄에 포자를 심으면 미역이 자란다. 남정네들이 조그만 배를 타고 나가서 줄에 자란 미역을 잘라서 배에 싣고 뭍으로 온다. 양식미역은 부드럽다. 식성에 따라서 자연산 혹은 양식미역을 택하게 된다. 맛은 별반 차이가 없다. 

내 고향 축산항에서는 미역을 공짜로 얻을 기회가 주어진다. 파도가 크게 치고 나면 모래사장으로 미역이 떠내려온다. 바위에 붙어있던 미역이 큰 파도에 떨어지며 이것이 모래사장으로 밀려온다. 아침에 먼저 모래사장에 나간 사람이 이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주물(無主物) 선점(先占)인 셈이다. 긴 장대에 갈고리를 달아 모래사장에 미치지 못한 미역을 건져 올리기도 했다. 이는 우리 동네사람들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미역건조의 부산물로 미역 꾸다리라는 것이 있다. 미역은 몸체 부분인 미역귀와 미역 줄기로 나누어진다. 우리가 먹는 것은 미역 줄기뿐이다. 그렇지만, 산지에서는 미역귀를 따로 모아서 꾸다리라는 것을 만들어 반찬으로 먹는다. 미역귀에는 찐득한 액체가 나오고 식감이 좋아서 인기가 높다. 기름에 튀겨서 설탕을 쳐서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5월이 되면 우리 가족들 생일 때 먹을 수 있도록 미역 두 오리를 보내주시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다섯 식구의 생일에 사용하기에 충분하다. 쌀뜨물에 소고기를 약간 넣고 끓인 미역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는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미역을 해마다 보내주시는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셔도 어머님은 잊지 않고 해마다 이 은혜를 베푸신다. 

미역을 널 때, 우리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된다. 9월, 10월의 오징어 건조 때와 비교가 된다. 9월, 10월의 오징어 철은 모든 식구들이 총동원되는 큰 사업이라서 누구도 여유를 가질 겨를이 없다. 그렇지만, 미역을 산출 할 때는 그렇게 바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동원되는 것도 아니다.

천방의 왼쪽 공간에는 미역을 너는 어머니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우리 같은 학동들은 여유롭게 천방을 거닐 수 있다.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면 5월의 바다는 잔잔하기 이를 데 없다. 모래사장은 더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위로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날아다닌다.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는 어머니들의 흥얼거리는 노래소리가 파도에 실리어 우리 귀에 들린다. 우리도 덩달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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