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제와 제우스신의 방패
가미카제와 제우스신의 방패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4.06.0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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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인간폭탄 가미카제의 탄생

인간폭탄 가미카제의 탄생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4년 10월 20일, 일본 항공함대 사령관 오니시 다카지로 중장은 비장한 작전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어제 15척의 항모로 편성된 미국 기동함대와 마리아나 해에서 공방을 벌인 끝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난 참이었다. 공격기 800여 대 가운데 오전에만 200여 대가 격추당했고, 오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도합 314대의 항공기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피해는 항공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4척의 항모와 10척의 순양함, 그리고 11척의 구축함까지 전력의 절반이 손실되면서 이제 일본 해군은 본토를 방어할 마지막 보루까지도 와해된 최악의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반면 미국은 구축함 ‘사우스 다코다’에 떨어진 폭탄 한 발로 발생한 몇 명의 전사자가 피해의 전부였으니 그 상황에서 일본함대는 옥쇄(玉碎)라는 마지막 선택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형편이었다.

그 해전을 두고 미 함대는 ‘마리아나 칠면조 사냥’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방금 점령한 사이판에서 일본본토에로의 B-29 출격도 가능해짐으로써 이제 3년 가까이 끌어온 태평양전쟁도 막판에 다다랐다는 자축(自祝)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작전회의는 비장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침묵을 깨고 작전참모 사사이 중좌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제 소견입니다만…….”
사령관이 작전참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500대의 제로센(전투기)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비행기 하나하나에 폭탄을 가득 싣고 동체(胴體) 째 적 항모 갑판으로 돌진한다면…….”
사사이 중좌가 꺼낸 그 말이야말로 조종사를 포함한 항공기를 하나의 폭탄으로 구축하여 적함으로 돌진토록 하자는 제의인 것이었다. 역사상 듣도 보도 못한 ‘가미카제(神風)’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가미카제가 촉발시킨 이지스 시스템 개발

항공기마다 각각 250kg씩의 폭탄을 싣고 세키 유키오 대위 등 20대 초반의 다섯 조종사가 탄 ‘폭탄기(爆彈機)’가 민다나오 섬 다바오 기지를 박찬 것은 작전회의 닷새 후인 10월 25일 새벽께 일이었다.

출격에 앞서 사령관은 특공대원들에게 한 잔씩의 정종을 권하며 ‘이는 덴노 헤이가(천황 폐하)께서 직접 하사하신 것이다. 그러니 황송한 마음으로 단숨에 들이켜고, 각기 적함 한 척씩을 맡아 그 갑판을 제군들의 무덤으로 삼으라’고 격려했다. 그것으로 다섯 인간폭탄은 이제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호위기를 앞세운 5대의 항공기는 곧 북쪽으로 비행하여 네댓 시간 후 도달한 마리아나 해 상공에서 구름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미 항모 갑판을 겨냥하고 죽음의 급강하를 감행했다.

적기의 내습을 본 미 항모전단은 곧 수십 문의 대공포를 쏴 올리면서도 난생 처음 보는 일본 항공기들의 공격 방식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항공기의 대함공격(對艦攻擊)은 급강하로 폭탄을 투하한 다음 곧바로 기수를 꺾어 올리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었으나 지금은 아예 죽기로 작정한 듯 항모 갑판을 겨냥하고 똑바로 내리꽂히고 있으니 말이었다.

그 상황에서 미 함대 포술병들은 세 대를 격추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나 포탄을 비켜난 나머지 두 대는 ‘스와니’와 ‘산티’ 등 두 항모의 비행갑판에 정확히 명중(?)하면서 불바다를 만들었고, 이어진 연쇄폭발로 침몰이라는 최악의 사태로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그 날 호위기로부터 일본 항공함대 사령부로 날아든 보고는 다음과 같았다.
- 다섯 특공대원 모두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였음.
그 소식은 곧 동경까지 전해졌고, 모든 신문이 다섯 인간폭탄의 장렬한 죽음을 대서특필하면서 모처럼 일본열도를 들끓게 했다.

이후 가미카제 출격은 일본 함대의 최선의 공격책(攻擊策)으로 자리 잡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려 2,800명의 돌격대원을 제물로 삼으면서 10여 척의 미 항모를 포함한 200여 척을 침몰시키고, 1만 명도 넘는 인명피해를 안기면서 태평양전쟁을 이어갔다고 기록은 전한다.

가미카제 공격에 미 해군은 도무지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이듬해(1945년), 두 발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을 굴복시키기는 하였지만, 도대체 죽음도 불사하는 일본 조종사들의 행태(가미카제)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야만적 공격을 막아낼 방안은 무엇인가. 원론적 개념은 비교적 간단했다. 제아무리 목숨을 팽개친 가미카제라도 아함(我艦)의 갑판에 꼬나 박히기까지는 어차피 원거리로부터 접근해 와야 한다. 따라서 설령 떼 지어 몰려오더라도 조기에 포착하여 집중사격을 가한다면 얼마든지 격퇴가 가능하다는 원칙론이 그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개발해낸 방어체계가 최대 1천km 내의 목표물을 몽땅 포착해낼 수 있는 위상배열 레이더(AN/SPY-1D)와 20대 이상의 적기를 동시에 격추시킬 수 있는 사격통제 시스템 레이시온(AN/SPG-62) 등 몇 가지 최첨단 과학병기가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13년이나 걸려 완성한 그 방어체계를 미 과학자들은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 신의 방패인 ‘이지스(Aegis)’라 이름 붙였던 것이다.

세상의 어떤 창과 화살도 막아낸다는 제우스 신의 그 방패가 새삼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동북아 영토시비와 북한의 도발로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서다. 지난 달 초순,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현재 일본에 배치하고 있는 5척의 이지스함 이외에 2척을 더 배치하겠다고 한 발언이 그것. 두 말할 것도 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북한 도발과 해양패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대응책이다.

현재 일본은 공고급 4척과 아타고급 2척 등 6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한 가운데 2척을 추가 건조 중에 있다. 한국 역시 2007년 취역한 ‘세종대왕’ 함에 이어 ‘율곡 이이(2008년)’와 ‘서애 유성룡(2011년)’ 등 3척을 보유하고 있어서 설령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감행할지라도 능히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 함대에 심대한 타격을 가한 가미카제로 해서 비로소 개발이 촉발된 이지스함이 오늘날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안보환경의 균형유지에 기여하고 있음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더욱 일본에 힘을 실어 주고 있는 것도 주목거리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구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세계 평화 달성을 위한 노력을 지지한다’는 미국의 견해표명이 그것. 집단적 자위권이란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자국도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일본의 새로운 헌법상 해석이니 말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어언 70년을 앞둔 지금, 세계안보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부단히 회귀(回歸)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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