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네줄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야’
‘강을 건네줄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야’
  • 이준훈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4.06.02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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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 산업은행 부장
정치란 무엇일까요.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요.

중국의 춘추시대 정(鄭)나라에 자산(子産)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자산은 여느 날과 같이 수레를 타고 출근을 위해 개울을 건너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한 아낙이 다리를 걷고 살얼음이 언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자산은 그 아낙을 자신의 수레에 태워 건네줬습니다. 그러자 다시 그 곳에서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기에 역시 수레에 태워 건네줬습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사람들을 건네주다 보니 정작 자신은 출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공자(孔子)는 자신보다 한 세대 전의 정치가인 자산에 대해 말했습니다.
“자산은 군자의 도(道)를 갖추고 있다. 몸가짐이 공손했고,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 공경스러웠고, 백성들에게 은혜로웠으며, 그 부림이 의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자산이 당시 여느 재상과는 달리 백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으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자산의 인물됨을 묻는 이들에게 공자는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맹자(孟子)의 평은 달랐습니다. 맹자와 제자 공명의(公明儀)가 어느 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산이 강에서 수레로 사람들을 건네준 대목에 이르렀습니다. 공명의가 말했습니다. “자산이야말로 참으로 어진 분입니다. 일국의 재상이 되어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맹자가 말했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자산이 어질긴 하다마는 그러나 정치는 전혀 모르는 인물이구나.”

선생의 이 말에 대해 공명의는 “아니 선생님, 자산을 그렇게 평하심은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잘 들어보게. 만일 자산이 진정 장치를 잘 하는 인물이었다면 농한기를 이용해 백성들로 하여금 미리 강에다 다리를 만들었어야 하네. 만일 강에다 다리를 만들었다면 어이 추운 겨울날 아낙네들이 찬물에 발을 담그고 일국의 재상이 출근치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정치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일에는 선후경중(先後輕重)이 있으니, 후(後)보다는 선(先)을, 경(輕)보다는 중(重)에 무게를 두고서 수혜자를 극대화함이야 말로 정치의 요체임을 맹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맹자는 이어서 설명합니다.
“11월에 도강(徒杠)이 완성되고, 12월에 여량(輿梁)이 만들어지면, 백성들이 강을 건너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네.”

도강은 사람이 도보로 건너는 널빤지로 만든 작은 다리고, 여량은 수레가 건너다닐 수 있는 큰 규모의 다리입니다. 11월에 우선 임시로 널빤지 다리를 만들고 농사일이 모두 끝난 12월에 백성들은 동원하여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정치가 자산이 백성 개인에게 베푸는 은혜의 이면에 놓인 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래, 그것은 은혜로운 일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에게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아닐까?”
하여, 맹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군자가 제대로 된 정치를 한다면, 길을 갈 때 행인을 물리치고 가도 무방하다. 어찌 사람마다 모두 강물을 건네 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가 사람마다 모두 기쁘게 해 주려면 날마다 그렇게 해도 모자랄 것이다.”

지난 5월 6일 조계사 법요식에 대통령이 참석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죄송스럽다’고 사과했습니다. 또 5월 18일엔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해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를 외쳤습니다. 4월 29일에는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습니다. 5월 19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로써 사과했습니다.

공무용 수레로 하루 종일 강을 건네주는 것은 ‘인정있는’ 일이듯, 꽃을 들고 조문을 하고 누차에 걸쳐 사과하는 것 또한 ‘인정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송이 국화꽃을 바치고 매뉴얼을 다시 만들며 시스템을 ‘개조’하듯 새 판을 짠다고 한들, 한 번 강을 건네주는 식으로 한다면, 이는 ‘정치를 잘 모르는’ 일일 것입니다.

모름지기 현실에 맞는 실천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즉 ‘강을 건네줄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야’ 할 것입니다.

농한기일지라도 백성을 동원하는 것은 민폐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추운 날의 고통을 덜기 위해선 그 민폐를 무릅쓰고라도 다리는 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다리를 놓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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