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근의 되짚어보는 수산학⑦ 우리나라 거짓 수산학의 뿌리
정석근의 되짚어보는 수산학⑦ 우리나라 거짓 수산학의 뿌리
  • 정석근 제주대학교 해양생명과학과 교수
  • 승인 2020.08.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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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우리나라 수산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 엉터리 기사가 많다. 가령, 2018년 3월에 ‘어린 고기인 풀치를 많이 잡아서 갈치 씨가 마른다’고 보도한 뒤 그 해 9월에 ‘30년 만에 대풍이 들었다’고 보도를 했다. 그 해 추석 무렵에는 똑같은 참조기를 두고 한쪽 기사에서는 ‘씨가 마르고 있다’고 하다가, 일주일쯤 지나 다른 기사에서는 ‘대풍’이라고 보도를 했다. 이듬해 3월에는 ‘목포수협에서 조기와 갈치가 최고 위판고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오징어의 경우 잘 안 잡히면 북한 해역에서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 때문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그러다가 잘 잡히면 수온 상승 때문이라고 조용히 보도를 한다.

이렇게 상반되는 기사가 불과 몇 달 사이를 두고 나오지만 정정 보도를 본 적이 없다. 기자들이 상상으로 소설을 썼을 리는 없을 거고, 분명히 수산 관련기관이나 연구소에 문의를 해서 들은 것을 적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시시각각 변하지만 감성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요인들을 수산생물 어종 풍흉 원인으로 대충 지목하면 담당 공무원도, 언론사 기자들도 서로 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과학적 근거니, 관련 연구 따위는 별로 필요하지도 않다. 이렇게 수십 년을 똑같은 패턴으로 엉터리 기사가 반복되고 있다.

 

거짓이 통하는 수산 분야

옛 수산청이나 지금 해양수산부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온 수산 관련 대형 사업들도 내가 보기에는 다 구호만 요란한 세금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담당 공무원들을 보면 뭔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고 사명감도 있는 것 같다(지난 호 글 참조).

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수산정책을 거의 본 적이 없지만 그 정책을 만들었다고 정부에서 주는 상을 받는 것은 자주 보아왔다. 요즘에는 수산생물을 가지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다가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여 정무직으로 승진도 하고, 퇴직하고 나서는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생계형 공무원도 생기고 있다. 거짓이 통하는 곳이 수산 분야이다.

수산 분야에 이렇게 만연한 거짓의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본다.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해방 직후 현 국립수산과학원의 전신인 수산시험장 초대원장으로 부임한 정문기(1894~1995) 씨에게서 눈이 멈춘다.

 

형질 차이를 인식하고 기록한 정약전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자체적인 자연사(自然史, natural history) 연구 역량이 있었다. 내가 미국 유학중일 때 교수 한 분이 정약전이 1814년에 펴낸 자산어보에 청어 척추수가 동해와 황해(서해) 사이에 차이가 난다고 기록한 것을 어디서 듣고는 출처를 정확히 알려달라고 해서 관련 내용을 번역해주고 인용도 해주었는데, 흔히 수산학에서 계군(系群, stock)이라고 하는 집단 사이 형질 차이 개념을 재정립한 해당 논문은 1999년에 출판되었다.

이런 해역에 따른 형질 차이를 처음 인식하고 기록한 정약전은 서양에서 청어를 대상으로 이 차이들을 최초로 밝힌 과학자 하잉커(Heincke) 보다 약 100년 앞섰다고 한다. 따라서 세계 최초로 수산생물 계군 차이를 기록한 것이 자산어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시대를 앞서갔던 수산 분야 자연사 업적도 조선시대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후대에 계승되지 못했고, 더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맥이 끊겼다.

해방 직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찾기 힘든 시절, 일본 도쿄대학 수산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산하 수산시험장에서 직원으로 일한 정문기 씨와 같은 인재는 불모지에서 시작하는 우리나라 수산분야를 이끌고 갈 적임자였음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문기 씨가 계승한 것은 정약전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물고기 관찰과 연구에 몰두했고, 일제강점기 중앙수산시험장 상사이자 도쿄대학 스승이었던 일본 자연사학자 우치다 게이타로(內田惠太郞, 1896~1982)였다. 그것마저도 거짓이 잔뜩 들어간 계승이었다.

우치다 게이타로는 1927~1942년 지금의 부산 영도에 있었던 중앙수산시험장에서 기사로 근무하면서 수산생물들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채집했는지를 1964년 ‘치어를 찾아서’라는 자서전 형식의 단행본에서 생생한 현장 묘사와 함께 느꼈던 주관적인 감상까지 구체적으로 남겼는데, 30년 뒤 1994년 제주대학교 변충규 교수가 한글로 번역하여 현대해양사(現代海洋社)에서 출판했다. 또 우치다는 자신의 연구성과를 수산시험장 간행물을 통해서 적어도 1933년부터 출간을 했으며, 1939년에는 담수 어류를 다룬 ‘선어류지’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정문기·우치다 게이타로·최기철(사진 왼쪽부터)
정문기·우치다 게이타로·최기철(사진 왼쪽부터)

정문기 씨와 최기철 씨

정문기 씨는 평생 물고기 박사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흔히 우리나라 수산학의 효시라고 했다. 최종학력이 대졸이기 때문에 논문 쓰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지만, 그럼에도 그가 어느 바닷가에 가서 무슨 조사를 하고 연구를 했다는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정문기 씨는 1962년 당시 부산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문기 씨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담수 어류학자 최기철(1910~2002) 씨는 1948년 서울대 교수가 됐지만 50대 후반인 1966년에는 박사학위를 받고 1968년부터 만학도로 우리나라 방방곡곡 민물고기를 직접 조사 연구하여 수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정문기 씨 본인은 1930년부터 우리나라 어류를 방대하게 채집했다고 1966년 신동아 3월호에서 주장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가 펴낸 책은 고문서 번역서이거나 기존 자료를 취합한 것밖에 없다. 같은 신동아 기고문에서 우치다가 은어 생활사 연구에 10년 세월을 허송한 적이 있었는데 ‘여지승람’ , ‘전어지’, ‘명물기략’과 같은 우리 고문헌에서 이미 은어에 관해서 밝힌 기록이 있다는 것을 듣고 탄식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정문기 씨는 자연과학자라기보다는 한문을 잘 읽는 한학자에 가깝다. 사농공상 차별 문화가 아직도 만연한 이 땅에 일제강점기에 이 한학자가 우치다처럼 바닷가나 배에서 작업복을 입고 거칠고 힘든 일을 했다고 상상하기도 힘들다.

 

표절의 역사

치어를 찾아서
치어를 찾아서

우리나라 수산학 대부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실린 정문기 씨의 업적이라는 것은 우치다가 조사하고 연구한 자료들을 취합하여 표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1977년 펴낸 [한국어도보]에서는 우치다가 남긴 자료를 활용했다고 인정하고 있지만, 이기복 씨가 쓴 논문 [일제강점기 內田惠太郞의 朝鮮 産魚類調査와 ‘바다식민’의 잔재] (역사민속학회 제19호, 2004.12, 165-217)에서는 우치다가 쓴 ‘치어를 찾아서’에 나오는 쏘가리에 관한 수필을 정문기 씨가 그 글쓴이를 자신으로 둔갑시켜 신동아에 기고하는 희대의 도용을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또 일본 저널리스트 다케쿠니 도모야스가 2014년 펴낸 [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오근영 번역)에서도 이 표절과 도용 문제를 다시 다루고 있다.

모방과 표절은 엄연히 다르다. 악기 연주나 그림 그리기를 처음 배울 때 남들이 해놓은 것을 열심히 모방하여 연습하다보면 실력이 점점 쌓이고 그러다가 어느새 독창력이 생기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무엇을 배우는 데는 누구나 이런 모방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반면 표절은 자기가 하지도 않은 것을 자기가 했다고 속이는 것이고, 결국은 남들이 자기를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속임수이다. 남이 쓴 글을 자기가 쓴 것이라고 속이는 행위는 세상이 아무리 혼탁한 시절이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기’이다. 왜 이렇게 쏘가리 이야기를 가지고 굳이 도용을 할 생각을 했는지 그 이유는 짐작하기 무척 힘들다.

 

단절된 자연사 연구

나는 부산수산대학 석사 시절에 [한국어도보](정문기, 1977)라는 두꺼운 책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어류 자연사를 평생 연구한 학자가 있었나’하고 놀랐고, ‘왜 이걸 진작 몰랐을까’ 궁금해 했다. 또 국립수산과학원에서 5년에 한번 정도 발행했던 [생태와 어장]이라는 간행물을 보면 우리나라 주요 수산 어종에 대해서 회유 경로나 기초 생태에 대해서 그림까지 곁들여서 잘 요약을 하고 있지만 그 자료 출처가 되는 참고 문헌 표시가 하나도 없어서 도대체 누가 이런 조사를 했는지 궁금했다.

[한국어도보]나 [생태와 어장]을 보면 우리나라 주요 수산생물종에 대해서 제법 연구가 축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어가서 보면 아무 것도 해놓은 게 없어 무슨 신기루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표절의 폐해다. 실상은 일제강점기에 우치다라는 일본 수산학자가 조사해놓은 것이 대부분이고, 해방 이후에는 그것을 계승해서 조사한 것이 거의 없는데, 공무원이나 일반인들은 우치다가 남긴 자료를 취합한 이런 책들을 보면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수산생물에 대한 기초 연구가 체계적으로 잘 되어온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 그 연구는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했던 것이라고 진작 밝혔다면 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런 수산생물 기초 분야에 지원을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를 하면, 정부에서는 연구 잘 되어 있는데 또 무슨 연구가 더 필요하냐고 반문하게 된다. 가장 기초적인 수산생물 분류나 자연사 연구에는 예산지원이 되지 않고, 대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수산자원평가나 수치모델 개발을 하겠다고 하면 이것은 새로운 분야니 정부에서도 지원을 해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우리나라 수산학이라는 것은 ‘자연사 연구’가 빠진 사상누각이 되어버렸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모두 100년 이상 탄탄한 자연사 연구라는 기초를 토대로 하여 수산학이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초도 없이 껍데기만 굴러가고 있는 형상이다.

 

고등어 산란장도 모르는데…

우리나라 담수어류는 최기철 씨와 같은 열정적인 학자가 있어서 그 분류와 자연사 연구가 전국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 망라되어 있지만, 바다 어류 자연사나 생태 연구는 우치다 이후로 거의 단절되었다. 가령, 몇 년 전에 우리나라 고등어 어장을 예측하는 수치모델 개발 연구과제를 내가 맡았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델 초기 조건인 고등어 산란장을 아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고등어 산란장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자료는 제대로 없고 대충 제주도 주변 해역이라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해양 난자치어 조사 결과를 취합해보니 우리나라 영해 안에서 고등어 알이 채집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외적으로 서해 태안 앞바다 바닷모래 채취장에서 유전자를 이용하여 고등어 알을 동정(同定)했다는 연구보고서가 있었는데, 이것도 믿기가 어려웠다. 제주도 근처에서 고등어 알은 채집된 적 없지만 유생이 간혹 채집된 적이 있어서 이걸 보고 산란장으로 여긴 듯하다. 할 수 없이 일본 연구자들이 펴낸 논문들을 찾아보고, 또 해수순환모델을 돌려보니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고등어 주요 산란장은 대만과 제주도 사이 동중국해임을 짐작하게 되었다.

제주도 근처에서 잡힌 고등어 유생은 동중국해에서 산란하여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떠내려 온 것이다. 국민생선이라고 하는 고등어 산란장도 제대로 모르는데, 다른 어종들은 오죽하겠는가? 산란장이 어디인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고등어를 자원평가하여 TAC를 실시하고 금어기도 정하고 또 어장 예측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수산학 현실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수산학자들이나 관련 연구자들이 수산생물에 대해서 다들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그 실상을 한 꺼풀만 벗겨보면 모두 모방과 표절, 그리고 포장하는 잔기술 밖에는 없다. 나는 그 뿌리가 표절과 도용을 일삼은 정문기 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반면, 해방 직후 농업을 이끌었던 우장춘, 담수 어류를 이끌었던 최기철 씨는 구체적인 논문과 연구성과가 있고 표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식민지 영향을 벗어날 수 있는 학문 분야가 어디에 있겠냐마는 수산 분야는 표절과 도용까지 곁들여서 지난 70여 년을 거의 허송세월로 보냈고, 지금은 자체 발전 역량이 거의 없어 사양 학문, 사양 산업으로 나날이 추락해가고 있다.

 

‘바다생물 자연사’ 기초연구에 투자해야

경제적으로 한국이 발전하다보니 몇 년 전부터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수산전용 조사선을 몇 척 투입하여 우리나라 바다 수산생물을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수산학이라는 것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가르칠 사람도 배울 학생도 제대로 없다. 수산 관련 언론보도 단골 표현을 빌리면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이런 국내 현실에도 해양수산부에서 세계수산대학을 유치한다고 하니 정문기 씨가 남긴 거짓의 폐해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개발도상국에서 온 공무원들을 비롯한 외국학생들에게 투자할 몇 백억 원 예산 중 1/10이라도 국내 수산분야 자연사나 어류학 분야 교육에 투자한다면 정문기 씨가 남긴 신기루는 어느 정도 걷힐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 남 도와줄 처지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수산분야에 가장 필요한 인재는 우치다 게이타로와 같은 물고기 연구에 정열을 가진 젊은 학도이다. 우리나라 수산에서 쏙 빠진 바다생물 자연사 분야 기초 연구와 교육에 조금이라도 투자하는 것이 해양수산부가 매년 천억 원대 예산을 탕진한 수산자원조성사업의 실패를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바다생물 자연사 교육과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왜곡된 우리나라 수산업을 바로잡아 살리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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