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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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송우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0.08.0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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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파의 연극활동과 인문교육 정신

[현대해양] 향파 선생이 해방 이후 서울 생활을 마무리하고 1947년 부산으로 내려와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곳은 경상(慶商)이었다. 그러나 곧장 동래중(현 동래고등학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서 평생 지인이 될 김하득 교장을 만나게 된다. 향파 선생은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김하득 교장에게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연극 활동을 요청했다. 여기에 공감한 김하득 교장은 향파 선생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향파는 아동문학,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작업과 함께 연극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1930년대부터 활동해왔다. 부산에 와서도 그 연극운동을 통해 학생들의 정서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래중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연극반을 결성하고 연극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 동래 중학교에서 무대에 올려진 작품은 「청춘기」, 「대차」, 「탈선춘향전」, 「봄없는 마을」, 「아버지는 사람이 저래」, 「호반의 집」 등이었다. 동래중학교에 부임한 지 1, 2년 사이에 이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니, 그 때의 열정이 어떠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모든 희곡작품을 향파 선생이 직접 마련하고 전체 연극연습과정을 지도했으니, 그 때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때 향파 선생의 연극지도를 받았던 학생 중에 연극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향파 선생이 기록에 남겨놓은 학생의 이름은 박재용, 장수철, 김용길, 최원식, 배준호, 박해식 등이 있다. 이들은 후에 향파 선생이 학교를 부산수산대학으로 옮겼을 때에 수대로 와서 부산수산대학 극예술연구회 멤버로 활동한 자들이 되었다. 향파 선생이 수대에서 극예술연구회를 만들어서 학생들을 지도한 결과 전국대학생 연극대회에서 최우수팀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향파 선생은 당시 부산 지역의 다양한 중등학교에서 연극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연극반들을 결성해서 연합체를 이루기도 했다.

향파 선생의 생각으로는 당시 해방 이후, 곧 6.25로 이어진 혼란한 한국사회 속에서 학생들의 정서교육에는 연극 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연극이 지니는 교육적 의미는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교육연극 체험의 실천적 성격은 언어적 소통의 한계를 극복하는 체험적 측면과 교육어로서의 매체 측면에서 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교육연극의 과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지식을 전달하는 표현적 언행이 아니라 비표현적 언행 및 표현달성적 언행을 사용하게 된다. 또한 드라마는 표정, 손짓, 행동표현 등 이성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표현 형식으로 교육활동의 매체 기능을 수행하는 넓은 의미의 ‘교육어’이다.

둘째, 드라마적 상상력인 ‘만일 그렇게 된다면’은 배움과 가르침의 활동에서 다른 모습으로 작용한다. 배움의 과정에서 드라마적 상상력은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지식의 오류를 가정하고 미래에 체득할 지식을 향한 도약의 출발로서 불신을 유보하는 것과 제자가 스승의 권위를 믿고 교육활동에서 이루어지는 극적 허구과정에 참여하는 데 작용한다. 가르침의 활동에서 드라마적 상상력은 교육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셋째, 예술적·미적 체험의 특성과 놀이로서의 특성을 갖는 교육연극 활동은 교육활동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교육적 체험의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즉흥성’은 교육연극 실행들의 공통된 기반이며, 참여자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 즉흥성과 더불어 교육의 내재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 교육연극의 활동은 ‘놀이’로서의 교육활동이다.

넷째, 연극은 자신이 역할을 맡은 대상에 몰입하여 동일시하고 표현해 내는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을 비교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데서 교육적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또한 가상의 역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극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지는 모방이 협업능력과 대인관계 능력, 의사소통능력 등 사회적 관계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의 교육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연극 활동은 개인이 모여 연극 공연이라는 하나의 완결된 경험을 만드는 과정이다. 하나의 완결된 경험 구성 과정을 ‘학습 과정’으로 볼 때, 경험을 공조하는 과정은 공동체적 학습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즉 개별적인 경험세계를 가진 학습자들이 ‘어떻게 기존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구성하는지’, 상이한 경험 구성 방식을 가진 학습자들이 ‘어떻게 서로 접촉하고 소통해 공동의 경험을 구성하는지’, 이 과정에 내포된 ‘학습 방식과 학습 내용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체득함으로써 통합적인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연극이다. 다시 말해 전인적인 인격을 만들어 나가는 데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향파 선생의 대표적인 희곡 중 한 편인 「탈선춘향전」은 이런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교육용이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탈선 춘향전」은 방자가 서사적 화자 및 극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이몽룡을 비롯한 양반 사회의 위선적인 모습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극중 인물과 배경은 춘향전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극중 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사는 모두 현대적인 상황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각종 역설과 상스런 대사가 삽입되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마당극으로도 명명되고 있다.

1948년 희곡이 창작되고 1949년 동래중학교에서 초연이 된 이후 1960년에는 영화화되기도 했으며, 2006년 향파 선생 탄생 100주년 때에는 연희단 거리패에 의해 부경대학교 대학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이후 전국 무대에 다시 선을 보였다. 언제 보아도 해학적 웃음을 선사하는 「탈선춘향전」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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