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㉚화양연화(花樣年華)
하동현의 양망일기 ㉚화양연화(花樣年華)
  • 하동현 소설가
  • 승인 2020.08.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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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1 오래된 장면 하나. 첫 선장 발령에 출국을 며칠 앞둔 날, 무전취식으로 붙들린 선원을 풀어내려 들른 경찰서였다. 취조형사 왈,

“선생이 신병인수자요? 직업은요, 선장? 흠. 선장이란 직업은 없고 배 안 타고 있으면 무직이지. 안 그래요? 그냥 ‘지인’이나 ‘동료’로 기입합시다.”

두 번째 장면도 IMF 사태 때니 이십년도 더 전이다. 외국계 합작회사(Joint venture)에 몸을 담았다. 현지 어선을 운항하는 ‘노가다 업무’는 그쪽이고, 전체 경영과 어획물 수입판매는 한국측 권한이었다. 우리가 컨트롤 타워라는 자부심에다 통상과 무역에 대해 제법 공부깨나 했던 시절이었다.

나라꼴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해외주재원 친구들 통화로는 한국경제상황이 벼랑 끝이라는데, 정권과 언론은 닥치고 ‘노 프러브럼’이었다. 결국 일은 터졌다. 환율이 두 배로 뛰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반입대금과 갑작스레 들이댄 규제로 결국 판을 엎어야했다. 낭만파 이상주의자였던 선배사장께서 소주잔을 앞에 두고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차장(次長)직함까지를 다르게 부르신다.

“하선장, 천재지변에 준하는 횡액이야. 안타깝네. 털고 각자도생의 길로 가야겠네.”

아, 바다가 다시 나를 부르는 구나. 내 운명은 거기 있구나. 어렵사리 그리스 선주대리점 면접을 통과하고 남미쪽 냉동운반선 감독관 자리를 얻었다. 승선일자가 코앞인데 수사기관 출두명령이 떨어졌다. 발등에 불 떨어진 정권이 면피용으로 외환관련 업체들을 족쳐댈 때였다.

선배는 괘씸죄 반틈까지 덤터기 쓰고 억류상태였다. 조사과정에서 항변조로 첨예한 외환비즈니스세계를 열강(?)하시다 그들의 지적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무사출국을 위해 작전을 짰다. 자신의 위급한 상황도 제쳐두고 내 처지부터 생각한 선배께서 비밀리에 쪽지로 하달한 각본이었다.

무역에 ‘무’자도 모르는 뱃놈출신 핫바지 땜빵직원이라야 했다. 정수기 물통 갈기와 잡상인 출입통제, 쇼핑백에 현찰을 들고 다니던 시절이라 외화입출금 담당 여직원을 경호하는 보디가드임무가 주였다 진술했다. 다행히 딱 맞아떨어지는 출중한 외모 덕을 톡톡히 보고, 가벼운 유예죄목으로 풀려나 가까스로 출국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름을 분명히 기억해 낼 수 있는 수사관이 물었다.

“곧 배 타러 가신다고? 외국 배던데, 말도 안 통하는 데서 뭐하는 사람이요? 밥 합니까? 아니면 핸들 잡는 그런 사람……?”

배라고는 자갈치 통선정도나 아는 수준이었다. 줄기차게 무식해야하는 불꽃연기 중이었다. ‘핸들’이 아니라 ‘조타륜’이란 정정도 못하고 그저 어리버리 앉아있어야 했다.

“말을 잘 듣네……. 자, 당신은 뭐 아는 게 없는 것 같아 대충 정리했으니 진술서에 지장 찍으슈.”

그때 마주쳤던 선배님의 안도에 서린 눈빛. 지금도 어쩌다 선배와 술 한 잔 자리에서 되씹는 씁쓸한 기억이다.

내 분야가 아닌 곳 까지 언급하기에 좀 미안하지만, 배를 탄다는 것, 그리고 시인과 연극배우는 왠지 측은한 마음에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는 농담은 그나마 양반 축이다. 도대체가 공항에 근무한다면 죄다 유창한 외국어에 세련된 신사를 떠올리고, (물론 우리 탓이 백번 크다만) 바다, 부두, 항만이라면 잘해야 애꾸눈 선장 ‘캡틴Q’에 밀수나 연상하는 정도가 당시 눈높이들이었다.

젊고 당찬 여성 항해사들까지 5대양을 주름잡는 시대다. 모쪼록 바다와 뱃님들을 어여쁜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2 피폐한 삶의 풍경을 사실주의 문체로 그리는 ‘신경림’의 시(詩), ‘떠도는 자의 노래’가 있다.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읽자마자 먼저 피식 웃음에, 취했다면 뭔가 흘리기 선수로 ‘분실의 왕자’라 불리던 시절이 떠오른다. 취기가 올라 열 받았던지 술집에서 끌렀다 잃어버린 시계, 만년필, 휴대폰, 수첩들. 끊긴 필름을 복구하고, 술 깬 동행들과 아리삼삼 가물거리는 ‘알리바이’를 추적해 찾으러 다니다 다시 이어지던 해장술판.

웃음을 거두고 다시 새겨 읽어본다. 신경림은 어디선가에서 ‘무엇인가’를 놓고, ‘누군가’를 버리고 왔다 읊는다. 개가 되도록 퍼마신 후의 ‘분실’이 아니라 ‘놓고(두고)’ 왔다는 말이다. 공간이나 영역을 의미하는 좁은 골목, 저잣거리까지 언급하다가, 전생(前生)에 더해 저승길에서도 그 ‘버린 것’을 찾지 못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뱃놈 아니랄까 특히 ‘쓸쓸한 나룻가’가 눈에 꽂힌다.

과거와 미래로 옮긴 시간에서도 찾아 낼 수 없는 그 ‘무엇’은 속수무책, 오리무중인 세상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 자신’을 말함이 아닐까. 우리는 어디에 우리 자신을 두고 와서는 그것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일까.

나보다 세 해 선배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기생이라 그림자도 못 밟는 77학번들이 책을 한권 엮어냈다. 바다에서 맞닥뜨린 청춘의 기록들을 묶은 글이다. ‘빠용77’, 독특한 타이틀이다. ‘바다의 용사 77’을 경상도 된 발음으로 표기한 단어이자 동기들 건배사다. 혹자는 망망대해에서 탈출을 꿈꾸는 나비를 떠올려 ‘빠삐용’의 파생어로 오인하기도 한다.

‘다 지난 일들 아니가’부터 ‘이 나이에 글은 무슨’까지 갔다가, 동기모임 막걸리 판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옳거니, 한 번 해보세. 딱히 물려줄 것도 없는데 자식들에게 아비의 청춘이나 한 번 들려 줘보세.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다. 낡은 비망록을 뒤적이고 아리아리한 기억들을 더듬어 독수리타법 자판을 두들겨댔다. 컴퓨터도 익숙치 못한 양반들이 고생께나 했단다.

기억은 우리 몸속에 숨어있다. 손 안에 쥔 모래같이 서걱대며 흘려버린 기억이 있고,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향수(鄕愁)를 동반한 그리움들도 있다.

시소 맞은편에 젊었던 자신을 앉혀놓고 물끄러미 건네다 보는 기분. 광주의 피비린내와 민주화 학생운동, 언제나 우리를 서늘하게 짓누르던 불안과 알 수 없는 죄의식, 가난과 지질했던 첫사랑을 바다에 묻었다는 사실이 먼저였다. 파도, 침몰, 실종, 나포, 이별, 이런 아픈 기억만도 아니다. 만선의 기쁨, 술, 여자, 돈, 귀항까지 줄줄이 사탕이다.

이런 기억들을 소환해내며 그들은 행복했을까. 분명 몸서리칠 만큼 징글징글했는데도 슬그머니 세월이 개입해 고통을 환희로 탈바꿈시키며, 추억이라는 당의정으로 둔갑되는 희한한 경험을 했을까.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걸치고 제법 일을 도운 것처럼 생색을 냈다. 제대로 된 문장이던 아니던 상관없었다. 예열도 없이 다짜고짜 클라이맥스부터 등장하는 무협지 같은 글들.

갓 구워낸 책을 뒤적거리며 ‘늙은 마린보이’들이 소년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갈피마다 삽 십 오년 전 바다에서의 젊은 날들이 펄떡거리며 뛰어 나온다했다. 자신들 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을 ‘복원’해냈다는 성취감과 쑥스러움이 교차하는 야릇한 낯빛들.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武士)’, 징기스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대하 웹툰 제목이다. 나를 포함한 이 양반들도 ‘바다에서 내릴 수 없는 무사’들에 다름 아니다.

이제 세파에 출렁거리며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지만, 딴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은 알겠다. 바다, 그곳에 젊은 날을 불타오르게 하던 그 ‘무엇’을 두고 온 것을. 그곳에서의 고통스럽고도 황홀한 기억들, 절망과 희열이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던 그 매혹적인 화양연화(花樣年華). 우리는 그 추억들을 먹고 산다.

3 ‘양망일기’가 30회 째다. 내 첫 어기 2년 반 기간과 맞아 떨어지는 묘한 아이러니다.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디 있나. 터벅터벅 작별의 시간이 왔다.

제대로 바다를 알리고 친근감을 심어주겠다는 의도에 한참 못 미쳤다. ‘탐구’하거나 ‘기록’한 게 아니라, ‘현재’를 불러내지 못한 ‘올드보이’가 현장감 떨어지는 ‘라떼(나 때는 말이야)’만 시시콜콜 주워섬긴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제대로 연마하지 못해 질질 늘어지는 문장, 이글 저글에서 몇 구절은 재탕 삼탕 반복되기도 하고, 복고풍 트롯은 꺾어야 제 맛인데 그런 재미도 살려내지 못했다.

영양가 없이 지루한 필리버스터 짓을 마치고 회오리 소맥 폭탄주 한잔 들이키는 기분, 그런데 맛이란 게 또 찝찔하고 미지근한 그런 느낌.

늦은 나이에 글쟁이로 들어서서, 현대해양이 할애한 지면으로 긴장감을 유지해 이러구러 글이랍시고 써온 것 같다. 분에 넘치게 바다를 품은 글로 몇 군데 수상(受賞)하는 영광도 누렸다. 어느 한 글 말미에 바다를 떠올리며 이런 문장도 삽입했다.

그 끝이 너무도 아득하여 번번이 목적지가 바뀌었던 바다에서처럼,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았다.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버티면서, 일과 사람들과 그 버틴 것들을 잊으면서 나이 들어갔다.

더 블루. 푸른색에 약했으므로 어쩌다 다시 바다를 마주하게 되면, 그곳에서 터무니없이 잔뜩 쌓인 은밀한 기억의 편린들이 떠오르고는 했다. 처음과 끝도 분명치 않아, 그 가닥들이 뒤죽박죽으로 엉킨 기억들은 두렵고 비밀스러웠으며, 줄거리는 잊히거나 사라져버리고 그저 선연하게 우울한 느낌만 생생하게 남은, 흑백영화 색조의 한바탕 꿈들 같았다.

소설이란, 여하튼 문장만으로 똥폼을 잡아야하는 구조다. 짧은 밑천에 말인지 막걸린지 이리 주물러댔지만, 두렵고 비밀스럽다느니, 선연하게 남은 우울한 느낌이라느니, 이런 게 사실 고통과 환희가 범벅된 기억들을 ‘셀프테라피’로 뒤집어 치환한 나만의 메타포였다.

 

4 석학 ‘엘빈 토플러’가 설파했다. 미래 4대 가치산업으로 정보통신, 생명공학과 우주산업에 더하여 해양개발 분야가 될 것이라고.

바다를 보자. 우리 수출입 물동량 99%가(물량기준)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고, 항만, 물류산업과 조선업 그리고 원양어업은 이미 세계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피와 땀이 스민, 가치 있는 해양경험과 지혜를 전수해 줄 선배들은 이 땅에 차고 넘친다.

정책수립에 앞서 젊은 청년들의 바다에 대한 인식을 사랑과 긍정으로 전환하고,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하는 바다에 희망찬 도전정신을 그려 넣어야 한다. 역사상 대부분 전투에서 젊은 장수들이 승리했다. 미래 산업은 젊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산업이어야 한다. 젊은이가 선택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부족한 내 글이, 모쪼록 젊은 친구들이 바다에 다가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면 감읍(感泣)할 일이다.

각설하고, 마지막회를 맞아 바다를 존중하고 옳게 이해한다는 신념, 바다를 일구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경해입국(耕海立國)의 창간이념을 가진 현대해양에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모두가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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