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20]침몰선박에 대한 제거명령, 무조건 따라야 할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20]침몰선박에 대한 제거명령, 무조건 따라야 할까?
  •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0.08.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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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미터 해저 침몰선박 사건

<스무 번째 여행의 시작>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현대해양] 전복되거나 침몰된 선박(이하 방치선박)이 공유수면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거나, 수질오염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해양수산부 장관 등 공유수면 관리청은 그 소유자 또는 점유자에게 방치선박의 제거를 명할 수 있습니다(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 제6조 제1).

그런데 공유수면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거나 수질오염 발생만으로 무조건 제거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유수면법은 제거명령을 내리려면 해당 방치선박의 상태, 발견 장소, 해당 방치선박으로 인한 해양사고 및 수질오염의 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6조 제2).

만약 선박 제거명령을 내린 후, 공유수면 이용에 문제가 없거나 수질오염 발생 우려가 적어진다면 해당 제거명령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이 사건에서 A회사 소유의 선박 B2010. 4. 21. 충돌사고로 침몰되었는데 C의 책임이 일부 인정되었습니다. B가 침몰한 곳인 D시의 시장은 2014. 4. 3. A회사에게 B에 대한 제거명령을 하였습니다. 이후 수년간 그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행정대집행이나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D시의 조치도 없었습니다. AC를 상대로 B 침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B의 제거를 위한 선체 인양 비용 상당도 함께 청구하였습니다. 과연 C는 아직 인양되지 않은 B의 선체 인양 비용까지 지급하여야 할까요?

 

<쟁점>

제거명령이 장기간 이행되지 않고 그에 대한 제재도 없었던 경우 제거명령의 이행에 따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 위해서는 제거명령의 이행가능성과 이행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할까요?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20. 7. 9. 선고 201756455 판결>

불법행위를 이유로 배상하여야 할 손해는 현실로 입은 확실한 손해에 한한다. 따라서 가해자가 행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제3자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게 된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그 채무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채무의 부담이 현실적·확정적이어서 실제로 변제하여야 할 성질의 것이어야 하고, 현실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가해자가 행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어떤 행정처분이 부과되고 확정되었다면 그 행정처분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 무효로 되지 아니한 이상 행정처분의 당사자인 피해자는 이를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행정처분의 이행에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처분 당시에 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처분 이후 행정처분을 이행하기 어려운 장애사유가 있어 오랫동안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해당 행정관청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참작하여 그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불이행된 상태를 방치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손해가 현실화되었다고 인정하는 데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 행정처분의 이행에 따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현실적·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 위해서는 행정처분 당시의 자료와 사실심 변론종결 시점까지 제출된 모든 자료를 종합하여 행정처분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 행정처분의 이행 가능성과 이행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당사자에게 부과된 행정처분을 이행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며, 행정처분 발령 당시와 달리 사실심 변론종결 시점에는 그 행정처분의 이행을 강행하여야 할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의 예외적인 상황이 존재한다. 실제로 행정관청에서 장기간 행정처분이 불이행되고 있음에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반사정에 비추어 볼 때 부과된 행정처분이 취소나 철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경우라면, 행정처분을 받은 당사자가 가까운 장래에 그 행정처분을 이행할 개연성을 인정하기 부족하여 이행에 따른 비용 상당의 손해가 확정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판결의 의의>

위 대법원 판결은 2020. 7. 9. 선고된 최신 판결로, 요약하면 CA에게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은 현실적으로 확실히 발생한 손해여야 하는데, 아직 들어 올리지 않고, 또 들어 올릴 필요도 없는 B의 인양 비용은 현실적으로 확실히 발생한 손해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A의 입장에서 보면, D시장의 B 제거명령이 유효하게 존재하고, 제거명령이 무효가 아닌 이상 언젠가는 이를 이행하여야 할 것으로도 보입니다. 따라서, 제거명령에 따라 언젠가는 이행하게 될 B 인양 비용은 손해배상으로 보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B는 수심 90미터의 해저 모래에 파묻힌 상태로 침몰되어 있고 B가 침몰한 수심으로부터 여유 수심이 최소 50미터 이상 남아 있으므로 다른 선박의 항행 안전에 위험을 줄 우려가 없다는 점, B의 침몰 이후 선박으로부터의 유류나 아스팔트 화물의 누출흔적이 없고, 해저의 온도를 고려할 때 연료유와 아스팔트는 선체 내에 점성화 또는 고형화되어 안정적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며, 디젤유는 침몰 직후 해수 등에 흩어지고 증발하여 현재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보이므로 오염물의 유출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발생시킬 우려도 없다는 점, 이처럼 장기간 해저에 파묻혀 있는 선박을 인양할 경우 상당한 부하가 가해지게 되어 선체가 부서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내부에 안정적으로 고착되어 있던 유류나 아스팔트가 해저에 비산되어 추가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B가 침몰한 지점의 해류가 거세고 가시성이 매우 떨어지며 깊은 수심에서의 인양 작업에는 고도화된 잠수기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선박의 인양을 시도할 경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박이 부서질 위험이 있는 등 B를 인양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반면, B 침몰 지점과 유사한 깊이의 해저에서 실제로 선박이 인양된 사례도 거의 없어 인양에 필요한 비용이나 위험의 정도가 상당히 높지만 이를 실제로 산정하는 것도 사실상 쉽지 않다는 점을 들어, 제거명령 자체가 취소 또는 철회될 여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스무 번째 여행을 마치며>

일반적으로라면 제거명령이 내려진 이상 그에 따라 선체 인양이 될 것이고, 인양 비용은 손해배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의 특성상 선체 인양 자체가 쉽지 않고, 또 인양을 할 필요도 많지 않다면 제거명령의 실효성이 사라져 결국 제거명령이 철회될 가능성이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제거명령이 유효하고 또 이행될 것을 전제로 한 선체 인양 비용은 손해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위 판결의 취지로 보입니다.

이처럼 현재에 유효한 행정처분이라고 하더라도 이행 가능성이나 필요성이 없다면 취소되거나 철회될 수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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