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19] ‘선박교통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는 장소’가 너무 불명확한 개념일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19] ‘선박교통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는 장소’가 너무 불명확한 개념일까?
  • 김태건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0.07.0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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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항질서법 위헌 사건
김태건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열아홉 번째 여행의 시작>

[현대해양] 소송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크게는 민사소송, 형사소송과 행정소송, 가사소송, 헌법소송 등이 있고, 그 아래에도 조정, 가처분, 집행정지 등 다양한 절차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 신체가 구속될 수 있는 형사소송일 것입니다. 그런데 형사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간혹 형사처벌 조항이 조금 불분명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헌법상 보장되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르면 ‘법이 처벌하려는 행위가 무엇인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원칙에 위배되면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을 위헌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사건에서 A는 연안선망 어선의 소유자인데, B 무역항의 항계 안인 방파제 약 0.5마일 해상에서 어로행위를 하다가 구 개항질서법 제37조 위반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 개항질서법 제37조(현 ‘선박의 입항 및 출항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는 ‘누구든지 개항의 항계안 등에서 선박교통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는 장소 또는 제11조제2항에 따라 해양수산부장관이 지정·고시한 항로에서는 어로(漁撈)(어구 등의 설치를 포함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A는 이 ‘선박교통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는 장소’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불분명하여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구 개항질서법 제37조를 위헌무효로 선언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습니다.

과연 A는 헌법소원에서 승소하고 형사소송에서도 이길 수 있었을까요?

 

<쟁점>

‘누구든지 개항의 항계 안의 선박교통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는 장소에서 어로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구 개항질서법 제37조(이하 ‘이 사건 규정’)가 죄형법정주의상 명확성원칙을 위반하는 것일까요?

 

<헌법재판소의 판단- 헌법재판소 2004. 11. 25.자 2004헌바35 결정>

헌법 제12조 및 제13조를 통하여 보장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은 범죄와 형벌이 법률로 정하여져야 함을 의미하며, 이러한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처벌규정에 대한 예측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때는 당해 특정조항 하나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고, 관련 법조항 전체를 유기적·체계적으로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하며, 각 대상법률의 성질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 어로제한위반죄의 특성과 관련규정들을 유기적으로 고려할 때 이 사건 규정이 금지하는 어로는 내·외국적의 선박이 상시 출입할 수 있는 항구 또는 항만의 경계 안에서 선박이 구 개항질서법에서 정하고 있는 항행방법에 따라 운항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항만 내에 설치한 시설물을 그 목적에 따라 이용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곳에서의 어로로서 선박교통의 안전과 질서에 위험을 줄 수 있는 어로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하는 바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거나 불분명하여 어로 단속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판결의 의의>

A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전에 먼저 형사소송이 진행 중인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습니다.

해당 형사 법원은 ‘이 사건 규정의 장소는 내·외국적의 선박이 상시 출입할 수 있는 항인 개항의 항계 안의 수역 중에서 정박선박의 인근수역, 항로, 정박지, 선회장, 방파제내 수역 및 기타 선박이 항행할 수 있는 수역으로, 선박을 이용한 어로행위가 그 곳을 운항하는 다른 선박의 안전 운행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는 장소를 일컫는다 할 것이므로 그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해상여건의 다양성, 가변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규정을 더 구체화한다는 것은 입법기술상 곤란할 것이어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한다 할 수 없다’고 하여 A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여야 한다고 하여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서술적 개념으로 규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소 광범위하여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면 헌법이 요구하는 처벌법규의 명확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우선 전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어로 단속이 이루어지는 해상은 계절, 시간, 기상, 조류 등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그 조건이 달라질 수 있고, 그밖에 선박의 항행방향이나 어로행위 당시의 선박통행현황, 당해 어로행위에 수반된 선박 및 어구의 규모 등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선박교통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는 어로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사정도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점도 이 사건 범죄의 구성요건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될 것이다. 이 경우 만약 일일이 금지되는 행위유형을 열거하거나 아주 구체적으로 단속되는 어로행위를 명시하게 된다면 해상이라는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이 사건 범죄의 구성요건을 정함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의 사용이 부득이 할 것이므로 이러한 전제 하에서 구체적인 규정의 의미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시하면서 이 사건 규정은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열일곱 번째 여행을 마치며>

헌법상 원칙인 죄형법정주의, 그 중에서도 명확성 원칙에 따르면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기술상 모든 행위를 구체적으로 기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의 사용은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앞뒤 문맥을 따져보아서 파악할 수 있으면 역시 불분명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게 불분명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는 정도라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명확성 원칙 위반으로 형사 처벌 조항이 무효화된 사례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 스스로 무엇을 지켜야 할 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불명확하여 억울한 면이 있다면 명확성 원칙 위반을 한 번은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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