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㉙ 봄 미역으로 시작해 멸치로 여름을 맞는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㉙ 봄 미역으로 시작해 멸치로 여름을 맞는다
  • 김준 박사
  • 승인 2020.07.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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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변항

[현대해양] 처음에는 멸치회를 먹기 위해 갔고, 두 번째는 미역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갔다. 그리고 세 번째는 친구의 초대로 동해안별신굿을 보려 그곳에 머물렀다. 이젠 봄이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회유하는 물고기마냥 그곳을 찾았다. 봄이면 의례를 하듯 찾는 곳이 됐다. 그곳이 대변이다. 지명을 풀면 큰 바다쯤 될까. 그곳에서 큰 멸치를 만날 수 있다. 멸치밥상을 받을 수 있다. 이른 봄에 햇미역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대변항은 기장의 중심 포구다. 기장은 부산의 어업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며, 대변은 그 중심이다. 특히 멸치 생산량은 전국의 60%를 차지한다. 그뿐이 아니다. 붕장어·미역·다시마도 유명하다. 대변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조에 대동고(大同庫)가 있어 대동고변포(邊浦)라 부르다가 오늘의 지명이 되었다. 조선후기에 기장현에, 한말에 기장군에,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동래군에 속했다. 그 후 경남 양산군을 거쳐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속하고 있다. 자연마을로 무앙, 새마실, 용암, 홀구디이가 있다.

 

기장의 홍보대사 멸치

멸치구이
멸치구이

오뉴월이 되면 대변항에는 김장젓갈을 준비하려는 주부들로 붐빈다. 멸치밥상으로 몸을 추스르고 김장용 멸치젓으로 일 년 밥상을 준비하려는 알뜰 어머니들의 나들이다. 이 시기에 멸치젓을 준비를 해두면 김장철에 사용하기 좋다. 이때 잡은 멸치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좋다. 오전에 항구 옆에서 경매한 대멸과 천일염을 섞어준다. ‘요리 보면 붉은색이 많다 아닙니까. 새우를 먹어서 이런 색깔이 나옵니다. 지금이 제일 좋심더. 담궈드릴까요’라며 지나는 어머니를 불러 세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상자에서 가득한 멸치를 보니 정말 터진 배 사이로 붉은 새우가 보인다. 유자망으로 잡아 포구에서 그물을 턴 대멸이다. 수더분한 주인은 멸치와 소금을 섞다 말고 상태가 좋은 멸치를 한 봉지에 가득 담아 손님에게 건낸다. 멸치조림과 멸치회로 먹으라며 덤으로 주는 것이다.

기장멸치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한국수산지>에는 일본인이 들어와 조기, 갈치, 복어와 함께 멸치(정어리)를 잡았다고 했다. 일본은 정어리와 멸치를 구분하지 않고 ‘온(鰮)[いわし]’이라 한다. 우리 수협의 역사에 등장하는 ‘온망어업조합’도 정어리와 멸치를 잡는 일본인들 중심의 어업조합이다.

멸치회무침
멸치회무침

멸치를 잡는 방법은 자망, 유자망, 낭장망, 권현망, 죽방렴 등 다양하다. 기장의 멸치잡이는 유자망어법이다. 멸치 어군을 찾아 조류를 따라 그물을 흘려보내 멸치를 잡는 어법이다. 이 유자망의 꽃은 ‘멸치털이’이다. 하지만 선원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힘든 일이다. 거친 바다에서 그물을 내려 멸치를 잡는 것보다, 포구로 돌아와 멸치를 터는 것이 더 힘들다. 기장에는 모두 9척의 유자망 배가 있다. 배 한 척에 10여 명이 타기 때문에 약 100여 명이 멸치잡이에 나선다. 모두 30년 40년 멸치잡이 배를 탄 베테랑이다. 그들의 가족은 물론 멸치를 둘러싼 식당과 상인들까지 생각하면 작은 멸치가 대변항은 물론 기장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멸치 경매가 이루어지는 위판장 맞은편은 신암항이다. 기장의 유일한 섬 ‘죽도’가 파도와 바람을 막아 주는 어항이다. 이곳 포구에는 소라, 멍게, 해삼 등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해물포장마차촌이 있다. 갯바위 낚시객들을 배를 타는 곳이다.

대변항에서 송정방향으로 신암마을과 서암마을이, 포항방향으로 월전과 죽성으로 이어져 있다. 이곳 갈맷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에 많은 부표를 볼 수 있다. 미역양식장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동래현조에 미역을 진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양식미역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이지만 본격화 된 것은 1980년대이다. 기장 미역이 유명한 한 것은 한류와 난류의 교차와 거센 조류가 만들어낸 풍부한 먹이들이다. 기장에는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하는 곳도 있다.

미역은 이른 봄에 채취를 시작해 오월이면 마무리한다. 마지막 미역을 채취해 갯바람에 자연 건조하는 모습이다. 뒤로 보이는 곳이 대변항이다.
미역은 이른 봄에 채취를 시작해 오월이면 마무리한다. 마지막 미역을 채취해 갯바람에 자연 건조하는 모습이다. 뒤로 보이는 곳이 대변항이다.

7년마다 열리는 동해안 별신굿

‘초여름이었다. 어느 날 밤, 멸치 후리막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여름 들어 첫 꽹과리 소리다. 마을은 갑자기 수선대기 시작했다. 멸치 떼가 몰려온 것이다.’. 단편 해양문학의 진수 오영수의 <갯마을>에 나오는 대목이다. 주인공 해순은 첫 남편 성구를 바다로 보내고, 또 재혼한 상수마저 일본으로 징용을 보냈다. 바다가 보고 싶은 미친 듯 돌아다니는 해순을 보고 귀신에 들렸다며 굿을 한다. 굿을 하던 날 해순은 두 번째 남편 상순의 고향인 산골마을에서 빠져나와 멸치떼가 기다리는 갯마을로 돌아와 물질을 한다. 그곳이 기장바다다. 대변항과 가까운 곳에 오영수문학관이 있다.

꽹과리 소리가 대변항을 흔들었다. 멸치가 온 것이 아니라 별신굿을 알리는 소리다. 마을 제당에서 골메기굿을 시작으로 길굿, 용왕굿 등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포구로 모여들었다. 긴 대나무를 잡은 어머니 손이 몹시 흔들렸다. 이어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소설의 해순으로 보였다.

대변항 물양장에 마련된 별신굿 제당, 이곳에서 4박5일 동안 큰 곳이 펼쳐졌다
대변항 물양장에 마련된 별신굿 제당, 이곳에서 4박5일 동안 큰 곳이 펼쳐졌다

동해안별신굿은 부산 동래에서 강원 고성에 이르는 동해안 지역에서 행해지는 마을굿이다. 별신굿은 3년에서 5년 주기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이다. 풍어제나 벨신굿이라고도 하는데, 짧게는 2박3일에서 길게는 4박5일 동안 진행된다. 기장읍에 속하는 대변, 궁수, 두호, 학리, 이천, 칠암이 돌아가면서 동해안별신굿을 연행했다. 그리고 중단되었다가 2000년대 들어와 김석출 가계 무집단에 의해 다시 전승되고 있다. 대변항에서 연행된 별신굿이 연행된 것은 7년 만이다. 굿은 대변항 주변의 자연마을 골매기할배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골매기할배’에게 인사를 드리는 당맞이굿이다. 골매기는 ‘고을막이’를 의미하는 마을신으로 당산신이자 서낭신이다. 나무나 돌을 신체로 모신다. 대변항의 골매기당은 다섯 곳이었지만 지금은 세 곳으로 줄었다. 어둠은 내리면서 어장 배 앞에 상이 차려지고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무녀는 마른 명태 한짝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한두 명씩 나와 축원을 드리고 명태의 입과 단골의 옷에 돈을 찔러 넣었다. 순식간에 명태는 돈 옷으로 치장했다. 이후 대변항 물양장에 마련된 제당에서 나흘 밤을 자지 않고 별신굿이 이어졌다.

 

기장척화비
기장척화비

열린 바다에 세운 ‘척화비’

대변항에 왔으면, 초등학교에 세워진 흥선대원군 척화비도 살펴볼 일이다. ‘기장척화비’로 알려진 이 비는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겪은 뒤 서양과 일본 등 제국주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할 굳은 결의를 나타내어 백성에게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1871년(고종8) 4월 서울과 전국이 중요한 곳에 세운 비석의 하나다. 대변항 방파제 안쪽에 세워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항만을 축조하면서 바다에 버린 것을 1947년 무렵 마을청년들이 건져 용암초등학교 화단에 있다. 비석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아니하고 화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니 우리 자손만대 경계한다. 병인년 만들어 신미년에 세우다 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라고 적혀 있다.

 

기장의 바다맛은 멸치, 갈치, 붕장어, 곰장어 그리고 다시마와 미역이다. 기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으로 기장멸치는 코스요리로 맛 볼 수 있다. 기장미역은 ‘앙장구’라 하는 성게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 유명하다. 멸치를 잡아 먹은 기장갈치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외줄낚시로 잡아서 은빛으로 반짝인다. 붕장어는 신암항과 칠암항에서 축제가 개최되기도 한다. 기장 앞 바다에서 잡는 곰장어도 유명하다. 대변항에서 나가는 길에 꼭 기장시장을 찾아야 한다. 대변항 가까운 기장읍 대라리에 있다. 대변항은 부산에서 갯내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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