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24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24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0.06.0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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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와 두꺼비 이야기의 현재성

[현대해양] 동화의 힘은 상상력이다. 그런데 그 상상력이 펼쳐내는 세계는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다. 상상력이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는 현실을 향한 비판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향파 선생이 1930년 《신소년》에 발표한 「개고리와 둑겁이」는 그런 류의 동화 중 한 편이다.

세상에 여러 물고기와 생물들이 생겨날 때, 개구리도 함께 생겨났는데, 그들이 힘있는 생물들에게 잡혀먹히기만 하여 떼를 지어 마을 앞 질펀한 논으로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로 이 동화는 시작된다. 이곳에서 개구리들만 살게 됨으로써 한 동안은 개구리들이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 그런데 점차 자손들이 늘어나고 먹을 것이 적어지면서 서로 싸움이 계속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땅을 갈라서 살기로 했다. 이 논에서 저 논으로 건너갈 수 없도록 되었다. 이렇게 구획을 정하면 평화가 계속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못했다. 나뉘어진 곳에서도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싸움이 또다시 계속되었다. 이래서 한 경계 안에서도 내것 네것으로 나누어졌다. 결국 약한 놈들은 강한 놈에게 빼앗기고 살 수밖에 없었다. 강한 놈들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종일토록 가만히 앉아서 주먹 한 개면 넉넉하게 배를 불리고 살 수 있었다. 강한 놈들은 제 욕심대로 잘 살기 위해, 약한 놈들을 계속 힘들게 해서 병들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약한 놈들은 조금이라도 얻어먹기 위해서는 강한 놈들의 지시에 따라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강한 놈들이 생각하기를 힘도 힘이지만 먹을 것을 많이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강한 놈들은 고방에다 먹을 것을 저장하기 시작하고, 약한 놈들에게는 먹을 것을 조금씩만 주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강한 놈들은 고방에 쌓인 먹을 것 때문에 즐겁게 지낼 수 있었지만, 약한 놈들은 굶어서 병들어 죽게 되었다. 약한 개구리들은 갈수록 팔다리가 여위고 살이 빠져 갔다. 대신 강한 놈들은 살이 찌고 몸에 기름이 흐르는 듯했다. 이 강한 놈들이 지금의 두꺼비인데. 그때에는 큰 개구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큰 개구리들이 고방을 새로 더 많이 지어 자기 새끼들에게 주고는, 그곳에 약한 개구리들 중에 가장 순하고 어리석은 놈을 뽑아 약한 놈들 일터에 가서 감독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도 만족스럽게 먹을 것을 받지도 못하고 죽도록 일만 하게 했다.

하루는 그 감독 개구리의 어머니가 하도 배가 고파 큰 개구리의 고방 속으로 들어가 몰래 먹을 것을 훔쳐 먹었다. 그런데 그 고방에서 나오면서, 이 어머니 개구리가 아이들을 생각해서 먹을 것을 훔쳐나오다가 고방직이한테 들켜 그 자리에서 물려죽고 말았다. 감독 개구리가 자기 어머니가 죽은 것이 마음 아프고도 억울해서 항의를 했더니 고방지기가 다시 이 감독 개구리를 죽였다. 이 소식을 듣고 죽은 감독 개구리의 동생이 수십 마리의 동무 개구리들을 데리고 가서 다시 항의를 했다. 그러나 약한 개구리들은 힘이 없어 모두 다 죽음을 당했다.

그러자 이 소문이 모든 개구리들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약한 개구리들이 이곳 저곳에서 모두 몰려들었다. 이들이 힘을 합쳐 큰 개구리들을 없애버리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때가 이미 가을로 접어들어 개구리들이 땅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큰 개구리도 고방을 잠가놓고는 흙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겨을을 흙 속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다음 해 봄이 오자 개구리들이 잠을 깨고 흙속에서 일어났다. 큰 개구리들도 깨어나 고방 뒷간에 있는 화려한 방 속에 자리했다. 그리고는 작은 개구리 감독들을 불러 전에처럼 지휘를 하였다. 그러나 그 지휘를 들을 개구리는 없었다. 모든 개구리들이 몰려와 큰 개구리들에게 달려들었다. 힘없는 약한 개구리들이었지만, 죽을 힘을 다해 큰 개구리들과 싸웠다. 이 바람에 결국 큰 개구리들은 견디지 못하고 쫓겨났다. 이리하여 힘없는 개구리들이 사는 논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쫓겨난 큰 개구리는 육지로 쫓겨난 이후에 먹을 것이 귀해서 배를 곯았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놀고만 먹다보니 일 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몇십 년이나 굶은 듯한 얼굴로 밭고랑이나 돌 덤불 속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힘없고 약했던 개구리들이 큰 개구리들을 쫓아낼 때 부르짖던 그 소리만 들어도 큰 개구리는 간이 콩알만 해져 논으로는 내려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논둑만 보면 겁을 내는 놈이라고 ‘둑겁’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이런 두꺼비도 재주가 있어, 바깥으로 나와서 하늘만 쳐다보면 비가 오게 되어, 개구리들이 입을 벌려 울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꺼비가 보이면 비가 온다는 속설이 생긴 것이다. 두꺼비가 이런 재주를 부리니, 약한 개구리들은 이를 알고, 담대하고 날쌘 놈을 뽑아가지고 육지로 보내어 두꺼비의 행동을 지켜보게 했다. 그 개구리들이 소위 청개구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꺼비가 하늘을 쳐다보고 비를 내리려 하면, 청개구리가 나뭇가지에 올라가서 미리 비가 올 것을 알려주고 논에 있는 개구리들은 미리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향파 선생은 생김이 비슷한 두꺼비와 개구리를 통해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약자와 강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생물 세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사회 속에서도 강자와 약자 관계는 생기기 마련이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좋은 관계로 진전되지 못하고 악화되면, 약자들은 할 수 있는 방안을 다 동원해서 강자와 약자 간에 형성된 주종관계를 허물기 위해 최악의 상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작품의 경향은 1930년대 당시의 사회주의 사상을 반영한 점도 무시하기는 힘들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주권을 빼앗아간 일본은 강자의 힘으로 약자인 우리 국민들을 얼마나 괴롭혔는가? 이러한 민족적 저항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기에 동화라는 매개를 통해 그 울분을 드러내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의미는 시대에 관계없이 언제나 인간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강자와 약자 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갑을관계를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되는 이야기를 향파 선생은 90년 전에 이미 동화로 들려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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