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㉘ 슬픈 적도제(赤道祭)
하동현의 양망일기 ㉘ 슬픈 적도제(赤道祭)
  • 하동현 소설가
  • 승인 2020.06.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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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대양항해, 적도를 지날 때 배에서 일어났던 가슴 아픈 기억 하나.

- 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

1 파나마를 버리고 태평양을 사선으로 내리지른다. 출발지와 도착지 이동거리를 최소화한 대권항법(大圈航法, great circle sailing), 적도를 지나 긴 항해로 날짜변경선을 통과하면 새로운 어장 뉴질랜드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날치 떼의 비상 외에는 해와 달, 그리고 적막 속에 드러누운 바다뿐, 열대의 땡볕에 갑판 판자가 쩍쩍 갈라진다. 동키호스(해수공급용 호스)로 틈틈이 물을 뿌려 적신다. 서쪽으로 해를 등진 항해다. 사흘에 한 시간 꼴로 늦추는(당기는) 시차조정이 있어야한다.

대항해시대 이후, 시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며 약속된 조정을 필요로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국제자오선협약에서, 적도기점 위도(緯度)는 남북 90도 씩, 경도(經度)는 지구 둘레를 360도로 산정해 15도에 1시간씩 값을 매겼다. 이를 동서로 180도씩 구분해 이 경도 180도 선이 날짜변경선이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중심을 본초자오선(경도 0도)으로 정하고, 인구밀집지역과 토지가 거의 없는 태평양상에 이 선이 위치하게 해 지정 후 혼란을 최소화했다. 북반구 알라스카 열도와 남반구 뉴질랜드 부속 섬들은 본토와 같은 시간대로 묶었다. 그러다보니 이 지역들은 예외로 돌출된 지그재그 식 선이다.

동에서 서로 항진해 이 선을 통과하면 하루를 건너뛰어 다음 날짜로 당기고, 반대 항로라면 하루를 반복한다. 이 선이 지정되기도 전이지만,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이 현상을 재미있게 그린다. 여행방향이 줄기차게 동쪽이라 시차누적으로 하루를 절약하는 바람에, 주인공 자신도 모르게 내기에서 이기게 된다는 반전결말이 그것.

뉴질랜드어장 조업 때 가끔 이 180도선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번거롭게 날짜조정은 하지 않았다. 결국은 본전 아닌가. 그저 하루 더 늙었다, 아니면 하루 더 덤으로 젊어졌다 하는 농담을 했다. (사실은 ‘오야’ 마음이다. 첫 선장 대양항해 때 당직시간변경이 귀찮아 미적거리다 한꺼번에 서너 시간 조정해버린 기억도 있다.)

적도는 지구의 허리띠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나누는 위도 0도가 되는 가상의 선이다. 더워진 기류가 상승하며 진공상태 빈 공간처럼 형성되는, 바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해역을 적도무풍지대(Doldrums)라 부른다. 범선들에게 절대적인 동력을 제공하던 바람이 소멸해버리자, 그 자리서 표류하다 굶어죽기가 다반사였다는 섬뜩한 이야기도 전해져온다.

바람 한 점 없이 무서운 고요 속에 갇히는 게 두려워, 살아 있는 말을 제물로 바치며 바람을 소원했던 의식이 적도제(Neptune’s revel)의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믿어야 할 것은 자신들 몸과 용기뿐인 시절이었으니, 해신의 아량에 간절히 기대고 싶었으리라.

증기기관 발명이 항해 동력에서 바람의 중요도를 약화시켜버렸다. 선원들 개개인의 종교나 인식변화로 적도제니 출항제니 고사에 대한 절실함도 크게 퇴색되었다. 현대에는 항해에 지친 선원들을 위로하며 진정한 뱃놈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우리식 표현인 용왕제 같은 성격이 짙어졌을 것이다.

고전적인 방식은 적도를 가장 많이 통과한 선원이 해신으로 분장하고, 그로부터 적도를 여는 열쇠를 넘겨받은 선원들이 즐겁게 잔치를 벌이는 것이라 네덜란드 선장에게 들은 적이 있다.

 

2 장음 기적을 한 번 울리고 돼지머리를 삶아 정갈한 음식으로 적도제를 지낸다. 직급순서대로 절을 올리고 음복을 했다. ‘용왕님께 안전과 만선을 기원 합니다’하는 축문을 중얼거리며, 갑판장이 배 구석구석을 찾아 술을 뿌렸다. 고사상 앞에 둘러 선 선원들 사이에 왁자한 웃음이 터졌다.

적도에는 바다 위에 붉은 색 수성페인트로 줄이 그어져있고, 제일 먼저 발견한 선원에게 돈을 모아 상금을 줄 거라는 고참선원의 농담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신규선원들 앞에서, 적도제를 수도 없이 치렀다는 경험을 과시하며 조리장이 거들고 나섰다.

“옛날에는 소나 말을 제물로 바쳤다카던데 갑판장 행님, 일 못하고 밥만 축내는 놈 하나 제물삼아 물에 집어던집시더.”

갑판장 영감이 유쾌하게 되받는다.

“좋지. 제물은 그게 최고다. 사망보험금은 다 같이 분빠이(나누다)해묵고.”

합판을 깎아 만든 윷놀이 같은 여흥에 뒤풀이 술자리까지 이어졌는데, 야간 당직 중에 배가 왈칵 뒤집히는 사건이 터졌다.

순시를 돌던 실항사가 주방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조리장을 발견했다. 등에 서너 군데 칼에 베인 핏자국이 선명했다. 비상사태에 전 선원이 눈을 부비며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응급조치 후에 조리장이 거친 숨을 내쉬며 ‘삼식이’라 범인을 지목했다. 갑판장의 불호령에 모두가 그를 찾아 식당을 뛰쳐나갔다. 천애고아로 염전과 공사판을 떠돌았다는 말더듬이 신규선원. 뺀질이보다 순둥이가 백번 낫다며 갑판장이 직접 면접해 태운 사람이다. 식사 때 마다 밥을 세 그릇씩 퍼먹어 별명이 ‘삼식이’였다.

눈동자가 휑하니 풀리고, 밤 서리를 맞은 듯 벌벌 떨며 그가 식당에 끌려왔다. 조명등 불빛이 닿지 않는 갑판 뒤쪽에서 바다로 뛰어 내릴 듯 위태롭게 선 그를 간발의 차로 붙들었단다. 눈물만 흘리며 묵묵부답이라 일단 침실에 감금하고 감시당번을 붙였다. 피해자인 조리장의 진술도 횡설수설이니 시간을 두고 전말을 파악해야할 상황이었다.

그의 가방을 열어 낡고 구겨진 수첩을 뒤져봤다. 의외로 굵고 힘찬 글씨체였다. 날짜별로 선원들에게 돈을 빌려준 기록들이 나왔다. 죄다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 날짜다. 사회생활이 서툴렀던 그는 승선 전 마지막 노가다 판에서 모은 돈을 은행에 맡기지도 않고 가방에 넣어 들고 다녔단다. 이제 한 식구가 됐다며 으레 벌어지는 안면 익히기 겸사 술자리에서, 몇 선원들이 어리숙한 그를 꼬드겨 술값 명목 따위로 돌려 쓴 것 같았다. 조리장의 액수와 횟수가 가장 크고 많았다. 반지를 한 번 껴보자고 빌리듯 가져간 조리장이 잃어버렸다며 돌려받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같은 고향이랍시고 안쓰러웠던지 감시당번을 자청한 선원 입을 빌린 그의 진술이 나왔다. 사관들과 갑판장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자신보다 어린 선원들이 예사로 반말 짓거리에, 화장실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떠맡겼다는 억울함에 대한 토로가 먼저였다. 게다가 담합을 했는지 단순한 말장난이었던지, 돈을 빌려 간 모두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은근슬쩍 입을 맞췄다했다.

혼자 속을 앓다 전 선원들이 다 모일 적도제 날을 늦었지만 차용증이라도 받아낼 기회로 잡았다. 흥겨운 술자리를 깨는 확인요구에 모두 엄벙덤벙 발뺌이라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낮에 들이킨 술이 덜 깬 상태로 밤새 뒤척이다 발뺌무리의 좌장 격인 조리장과 결판을 내기위해 새벽시간 주방에 들른다. 아니나 다를까 오락가락 엉뚱한 핑계만 늘어놓다 그의 울컥하는 표정에 조리장이 움찔했다. 또 어떤 회유를 할 속셈이었던지, 적도제 중에 술만 마시고 식사도 하지 않았던 그에게 간단한 음식을 차려주겠다 했단다. 그 때 벌어진 순식간의 참사였다. 그를 흘끔거리며 국솥에 조미료를 떠 넣는 조리장을 향해 갑자기 주방으로 달려들어 손에 잡히는 대로 식칼을 휘둘렀다.

이 대목 진술에 모두가 아연실색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리장이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독약을 탔고, 선원들이 합심해 낮에 이야기한 적도제 제물로 자신을 바다에 던지려 계획한 것 같았다는 말이었다. 제정신이 돌아온 그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놀라고, 두려움에 떨다 바다에 뛰어내리려 했다는 것이다. 갑판장이 꺼질듯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미친 놈 아니가. 술도 약한 촌놈새끼가 헛것에 눈깔이 돌아뿌맀는가베. 이 지경이 되도록 내가 왜 몰랐을꼬. 내 이 놈들을 전부…….”

일이 이쯤 되자 자발적으로 자신이 편취한 금액의 액수를 대며 깊은 반성을 표시하는 몇 선원들의 자백이 줄을 이었다. 망망대해에서 운명을 같이해야 할 동행들이 한 사람을 희롱한 결과는 참혹했다. 가해자가 누군지 피해자가 누군지 엉망으로 꼬여버린 사건이었다.

3 날짜변경선을 통과하는 날 사관회의에서 도출한 결론은 세 가지였다.

첫째, 뉴질랜드 경찰에 알리지 않고 둘을 귀국시키며, 배에서 작성한 경위서를 토대로 한국 국내법을 따르게 한다는 가장 원론적인 방안.

둘째, 둘을 구슬려 화해시키고 쌍방 합의하에 없었던 일로 사건을 묻어버린 다는 거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 그리고 마지막은, 본사에 조치해 채무선원들 각자 생계비에서 감해 그의 통장으로 입금 조치하고, 한 번 꼭지가 돈 사람이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부득불 그를 귀국시키며, 조리장의 거취는 자신의 결정에 맡긴다는 것.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났다. 그는 이도 저도 다 때려치우고 치러야할 죄 값이 있다면 그마저 달게 감수하며 미련 없이 귀국한다했다. 지난 시절 뜨내기들 틈에서 무수히 속고 살아왔지만, 처음 배를 타며 이 사람들만은 식구처럼 믿었다는 뼈아픈 소리를 더듬더듬 남겼다.

천만다행으로 조리장의 상처가 그렇게 위중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한 조준도 없이 마구잡이로 휘두른 칼이라 큰 힘이 실리지 않은 결과였다. 낯 뜨거운 밑천이 다 드러난 마당에 눈치만 살피던 조리장은, 그를 용서할 테니 고기가 많아 돈이 된다는 뉴질랜드에서 계약어기를 꼭 마치고 싶어 했다. 가난뱅이 주제야 그도 매한가지였다. 갑판장이 도끼눈을 부라렸다.

“아이구야. 족제비도 낯짝이 있지. 지 잘못은 덮어뿌고 뭣이라, 용서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꼴에 돈 벌 욕심은 나는가베, 에라이 인간아.”

조리장에게 원인제공을 인정하고 사건일체를 묻어버린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혹 나중에라도 귀국해 그에게 보복성 해코지라도 한다면, 사기와 절도 등으로 몰아 왕복항공료와 그간의 급여까지 토해내게 하겠다는 전 선원이 날인한 합의문까지 작성했다.

긴 항해로 유창(기름 탱크)이 비워져 배의 무게중심이 솟아올랐다. 남위도로 내려갈수록 바다가 거칠어지며 선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축 저진 분위기가 맘에 걸린 갑판장은 식사 때마다 선원들을 다독거렸다.

“적도제고 지랄이고 두 놈땜시 액땜은 잘했으니 고기 많이 잡을끼다. 모두 힘들 내라.”

미리 전문으로 본사와 조율해 귀국 스케줄을 잡았다. 항해 중 그물보수작업 때 다쳤다는 공상 확인서를 거짓으로 작성하고, 항공료를 공동경비로 돌리는 전문을 날렸다. 그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최대한의 배려였다.

도착 첫날이었다. 청정해역의 평안한 부두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입항수속을 마치자마자 또 한사람 동행을 떠나보내야 했다. 남은 한국 돈을 십시일반 털어 모은 전별금 같은 봉투를 마지못해 받으며, 그가 미안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댔다. 갑판장이 속이 끓는지 가래침을 뱉어냈다.

“동작은 꿈 떠도 손끝은 야물더라. 가서 또 먹고 살 길 없으면 배운 게 도둑질 아니가. 자갈치 항구다방 김 사무장 찾아서 내 이름 대고 국내선 일자리 구해라. 에이 씨바, 제일 좋은 거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뱃놈 노릇 때려치우는 거고…….”

그가 큰 눈망울을 껌벅대면서 공항으로 가는 차에 비틀거리며 올라탔다. 그는 희망의 어장 뉴질랜드에서 첫 조업도 못해보고 중도 하선자 1호로 기록됐다. 다시 속수무책인 육지로 돌아가야 하는 나약한 인간의 뒷모습. 가슴이 아렸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비겁한 폭력으로,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는 그가 바다에 걸었던 희망을 짓밟아버린 가해자들이 아니었을까. 그 아팠던 적도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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