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㉘ 제주의 황금어장, 비양도에서 차귀도까지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㉘ 제주의 황금어장, 비양도에서 차귀도까지
  • 김준 박사
  • 승인 2020.06.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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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항
한림바다의 중심 비양도
한림바다의 중심 비양도

[현대해양] 1002년(고려목종 5년) 6월 어느 날, 제주 서쪽 바다에서 붉은 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산 위에서 네 줄기의 붉은 물이 닷새 동안이나 흘러나왔다. 이때 큰 해일이 일어 마을을 덮쳤고, 물에 잠기고 모래언덕이 생겼다. 많은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모여 들어 모래언덕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바다밭에서 물질을 하며 마을을 이루니 그곳에 한림이다. 한수리 설촌과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한림의 옛이름은 ‘ᄌᆞ물캐’다. ‘ᄌᆞ물다’는 잠기다는 제주어다. ‘ᄌᆞ물캐’라는 포구에 ‘ᄌᆞ물’이라 부르는 우물이 있었다. 산물이라 부르는 용천수이며, 바닷물이 들어오면 잠기는 우물이다. 한수리 주변에는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우물이 큰물, 생이물, 돈지물, 개물, 솔패기물, 엉물, 쇠물, 중이물, 모시물 등 많다. 모두 바닷물이 들면 잠기는 물이다. 한수리는 한림이 커지면서 나누어진 마을이며, 이후 사람들이 더 모여들어 수원리로 분리되었다. 이곳을 한수풀이라고도 하는데 큰 수풀이라는 의미로 한자로 ‘대림’이라 했다. 바다가 비옥하고 낮은 구릉을 일궈 밭농사를 짓기 좋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림읍과 한경면에 18개 어촌계가 있으며, 섬 안에 섬으로 한림읍에 속한 비양도와 한경면에 속한 차귀도가 있다.

한수리 마을포구와 한림항과 비양도
한수리 마을포구와 한림항과 비양도

제주 최대의 어항과 마을포구

한수리는 제주 서쪽에 위치한 한림항의 중심 어촌이다. 한림항은 애월항, 추자항, 성산포항, 화순항과 함께 제주특별자치도의 연안항이다. 수산물 위판규모가 제주에서 으뜸이며, 감귤과 모래와 시멘트 등 연안화물처리량도 크다. 한림항 안에는 한림수협과 위판장이 있으며, 한수리 마을포구와 비양도를 오가는 도항선 선착장도 있다.

먼저 한수리는 ‘생이언덕’과 ‘대섬’과 ‘톤대섬’ 안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선창이 있다. 일제강점기 한림항을 만들기 전의 모습이다. 생이언덕에 새들이 모여 살았고, 대섬에는 바람신인 영등신이 머물렀다. 톤대섬에는 물꾸럭(문어), 우미(우뭇가사리), 메역(미역), 오분재기, 전복 그리고 구젱기(소라)가 지천이었다. 왜 한수리를 선유한수라 칭송했는지 알 듯하다. 자연선창에 돌을 쌓아 만든 곳이 지금의 한수리 마을포구다. 한수리와 수원리를 잇는 도로 안쪽으로 ‘솔패기물(하물)’과 원담 그리고 마으신이 모셔져 있다. 해안도로를 만들면서 원담은 사라졌지만 물이 빠지면 그 흔적은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한림항을 공사를 하던 중 모래언덕 밑에서 농사를 짓던 밭의 흔적과 사람이 살았던 집과 화덕이 발견되었다. 1970년대에도 밭과 집 자리에서 그릇 등 생활도구가 발굴되기도 했다.

배물질을 하고 돌아오는 비양도 해녀들
배물질을 하고 돌아오는 비양도 해녀들

한수리에 위치한 한림수협의 수산물위판장은 추자도 일대에서 잡히는 참조기와 제주 서남쪽 바다에서 잡히는 갈치의 잡산지이다. 이 외에도 옥돔, 고등어, 민어, 새우, 한치 등 수산물이 위판되고 있다. 이곳에 조업하는 어선들은 갈치, 고등어, 오징어를 잡는 채낚기어선, 옥돔과 갈치를 잡는 연승어선, 참조기와 고등어를 잡는 유자망어선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자망, 저인망, 선망, 정치망, 들망, 통발 등 다양한 어선들이 조업 중이다. 한편 해녀들은 해녀들이 물질해서 채취하는 수산물은 전복, 오분자기, 소라, 해삼, 성게, 문어, 톳, 미역, 우뭇가사리 등이다.

제주해녀는 제주의 어머니이며 제주의 상징이다. 가장 제주스런 문화를 찾다보면 모두 해녀와 연결되어 있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제주에서 바다밭을 일구며 제주를 지켜온 이들이다. 이들을 제주에서는 좀수, 좀녀, 잠수라고 하며, 바다에서 어패류를 채취하는 것을 총칭해 물질이라고 한다. 해녀어업은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질의 기술과 전통지식을 전수하며 이어오고 있다. 한림항을 개발하면서 많은 바다밭(바당)과 할망당과 불턱 등 해녀문화가 사라졌다. 대신에 한수리를 비롯해 한림리, 수원리, 옹포리, 금능리, 귀덕리 등 한림수협 관내 9개의 해녀들과 함께 배를 타고 비양도로 나가 배물질을 나간다. 심지어 통영이나 흑산도 심지어는 일본 미에현 등으로 출가물질을 나가기도 한다.

방조제로 바뀐 톤대섬에서 본 한림항
방조제로 바뀐 톤대섬에서 본 한림항

제주의 수산물 대표축제 ‘한림수산물축제’

몇 년 전 가을, 비양도 선착장에서 배에 오르는 10여명의 어머니들을 만났다. 모두 짐을 한 보따리씩 들고 올라왔다. 포대 자루에 소라가 가득했고, 얼음박스도 실려 있었다.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한수리 수산물대축제에 참여하는 비양도 해녀들이다.

이 축제는 전국 최초로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FPC·Fisheries Products Processing & Marketing Center)를 설치한 것을 기념해 시작된 수산물대축제이다. 한림수협은 2015년 4월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산지에서 수산물을 매입하거나 위탁받아 전천리, 가공과정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 상품화하고 대형소비처 등에 공급하는 유통시설이다. 2019년 4회째를 맞이하여 ‘제주風, 제주수산물’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오롯이 한림바다에서 잡은 수산물로, 19개의 지역어촌계가 참여해 한림항을 수산관광지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시작된 축제다.

축제의 꽃은 먹을거리이다. 더구나 수산물축제가 아닌가. 소라(구젱기)구이는 마을마다 내놓는 흔한 식재료다. 가장 주목을 받은 먹을거리는 멸치튀김이었다. 비양도 해녀들이 준비한 음식이다. 정치망으로 잡은 싱싱한 색줄멸을 바로 밀가루를 입혀서 튀겨준다. 색줄멸은 멸치와 비슷하지만 몸에 청색을 띤 은백색의 폭이 넓은 세로띠가 한 줄 있다. 그래서 ‘꽃멸’이라 부른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비양도를 색줄멸을 잡아 젓갈을 담는다. 멸치보다 살이 단단하다. 비양도 바다가 내준 선물이다. 그 선물을 가지고 나왔다. 바삭하고 고소하기가 끝판왕이다.

‘제주 참조기 두 마리 3,000원, 고등어 세 마리 2,000원, 삼치 2,000원, 문어 1만원, 민어 한 마리 3,000원, 뱅고도 한 마리 3,000원, 백조기 한 마리 5,000원, 오징어 두 마리 3,000원’

물 좋고 값싼 명실공이 산지직판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판매대에 올려놓기가 바쁘게 동이났다. 모두 비양도에서 차귀도에 이르는 한림바다에서 어민들이 직접 잡은 것들이다. 제주사람들만 아니라 소문을 듣고 온 여행객들도 많았다. 알뜰주부들은 수산물을 구입해 포장한 후 택배로 붙이기도 했다.

한림항
한림항

바람신을 모신 대섬밧당

제주는 바람의 섬이다. 사람이 사는 집도, 물고기를 잡는 바당도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다. 음력 2월이면 마을 곳곳에서 바람의 신 ‘영등신’을 모신 영등굿을 했다. 이때 모신 영등신은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와, 영등호장, 영등우장, 영등별감, 영등좌수 등이다. 영등달인 2월이 되면 영등신은 강남천자국에서 산과 물을 구경하기 위해 남방국 제주도를 찾는다. 이때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산과 들과 바다에 곡식과 해초의 씨를 가지고 온다. 한림바다에 있는 귀덕리 복덕개로 들어와 한라산에 올라 오백장군을 뵙고 갯가를 돌아 돌아간다.

그곳에는 이런 이야기 전해지고 있다. 옛날 한수리에 사는 한 어부가 고기잡이 갔다가 풍랑을 만났다. 배는 바람과 파도를 따라 떠다니다 웨눈베기(외눈박이)가 사는 나라에 좌초됐다. 웨눈베기에게 잡혀 먹힐 상황이었다. 이때 황영등이 웨눈베기를 따돌리고, 어부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황영등은 용왕국에 사는 바람신이다. 어부들은 황영등이 알려준 대로 ‘개남보살’을 외면서 배를 타고 고향을 향했다. 배가 한수리에 포구에 이르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개남보살’이라는 주문을 외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자 갑자기 폭풍이 일어 배가 웨눈베기 땅으로 휩쓸려갔다. 이번에도 황영등이 나타다 다시 도움을 주어 어부들이 무사히 고향에 도착했다. 이를 안 웨눈베기는 황영등을 잡아 죽인 다음 세 토막을 내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시신은 파도를 타고 머리는 우도에, 팔다리는 한수리에, 몸통은 성산포에 이르렀다. 목숨을 구한 어부들은 ‘2월 초하루가 되면 자신을 잊지 말라’는 황영등의 유언을 기억하고 매년 정월초하루에 영등굿을 치른다. 우도에서도 한수리 전날, 성산포에서는 초닷샛날 이어서 영등굿을 치른다.

한수리 어부들을 살려분 황영등은 용왕국에 터전을 잡고 있다. 영등신은 지역에 따라 바람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수리 대섬밧당의 신체는 숨베기낭(순비기나무)이다. 하르방의 이름은 대섬박 영감또 영감하르방 이라고 부른다. 해녀나 어부들의 안전조업과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주민의 화합을 축원하는 당이다.

제당 가운데에 굵은 순비기나무 줄기가 있고 그곳에 오색천이 산처럼 걸려있다. 그 왼쪽에 영감신위, 오른쪽에 영등신위가 있다. 대섬밧에 모신 신은 남자신이고 고깃잡이 배에 모인 신은 여자 신으로 먼저 영감신위에 제를 지낸 뒤 배에 모신 신에게 제를 지냈었다. 지금은 매년 영등달에 선주, 선원, 해녀들이 함께 제를 지내며 안전조업과 만선, 밭에 풍년, 마을에 화합을 기원한다. 제당 옆에 너른 불턱이 있어 그곳에서 영등제를 개최하고 있다. 2월 초하루부터 나흘간 큰 굿을 하고 보름에 짚으로 작은 배를 만들어 영등대왕을 태워 보낸다. 유네스코인류문화유산인 칠머리당을 비롯해 제주도 여러 마을에서 영등굿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롯이 영등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곳은 한수리 대섬밧당 뿐이다. 이곳이 바람신인 영등신을 모신 본향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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