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가 만든 빈 교실
빈 자리가 만든 빈 교실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4.05.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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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보며 슬픔에 잠겨있다. 국민들은 세월호가 바다에 잠기면서 국가의 품격도 함께 침몰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그 사이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조원(선박직원)들은 누구보다 먼저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승객을 버리고 퇴선한 선장과 승조원의 직무유기와 비도덕적인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세상에 승객보다 먼저 탈출하는 선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책무를 다하지 못해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선장과 승조원뿐일까?

세월호 침몰 하루 전날인 지난달 15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식품위원회(농해수위) 회의실에서는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을 비롯한 산하기관 업무보고가 있었다. 이날은 신임 해수부 장관의 첫 보고가 있는 날이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임시국회 상임위원회 보고를 위해 가까이는 서울, 인천에서 멀리는 세종, 부산, 여수 등의 지방에서 공무원들이 아침 일찍부터 달려왔다. 전날 상경한 이들도 있었다.

반면 위원(의원)들은 보고가 이뤄지는 동안에 연신 자리를 비우거나 아예 참석조차 하지 않은 이가 대다수였다. 이런 연유로 18명의 상임위원 중 평균 3~4명만이 회의장을 지키는 풍경이 종일 만들어졌다. 업무보고를 듣겠다고 바쁜 공무원들을 불러 모아놓고 정작 자신들은 다른 볼 일을 보러 다닌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업무보고는 김빠진 맥주마냥 싱거웠다. (장관 취임을) 축하한다, 인사청문회 때는 행사 때문에 참석 못했다 등 덕담이나 ‘거꾸로 보고’ 수준의 발언이 위원들에게서 나왔고, 질의시간이 남는데도 서면으로 답변을 받겠다고 하는가 하면 다른 위원에게 시간을 양보하겠다고 하는 등 긴장감이나 진지함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집중할 만한 질의가 있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종국에는 자기자랑 혹은 지역구 민원을 늘어놓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만약 평시 업무보고와 법안심사, 국정감사 등의 국회 일정에서 꼼꼼한 질의와 질타, 청취, 책임추궁 등이 이뤄졌다면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발생했을까 돌아보게 된다. 세월호 참사를 불러일으킨 청해진해운은 4년 연속 고객만족 우수선사로 선정됐었다. 해수부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선원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손자 같은 어린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자기네만 살겠다고 도망쳐 나오는 선장 따위는 애초부터 걸러내는 제대로 된 자격·면허시험이 있었다면 이렇게 부끄러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수부의 업무를 파악하고 감사(監査)하고 선원법 등 관련 법규를 제정하는 것은 농해수위가 할 일이다. 농해수위가 제 기능을 하고 해수부가 제 역할을 했다면 이토록 자격 없고 형편없는 선장과 승조원들은 해운업계에 발을 디디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비(歲費)를 받아 사는 사람들, 국가의 녹(祿)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기 의무를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 빈 자리가 텅빈 단원고 2학년 교실과 무관하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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