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되풀이되는 세계 1위 조선 현장
사망사고 되풀이되는 세계 1위 조선 현장
  • 최정훈 기자
  • 승인 2020.05.0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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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주체 역량 강화돼야
▲ 선박 건조 현장
▲ 선박 건조 현장

[현대해양] 지난 십수년간 세계 1, 2위에 자리매김한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노동현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올초 안전관리책임 강화를 골자로 하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마련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안전관리체계의 실체가 없다는 반응이다.


재해율 높은 주력 산업

지난달 21일 울산 현대중공업 도장 7공장서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정모씨가 운행중인 도장공장 빅도어 사이에 협착, 두개골 파열로 사망했다. 지난달 16일 특수선사업부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직원 김모씨가 머리와 경추가 끼이는 중대한 사고를 겪은 불과 5일 뒤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서 조선업 현장의 미흡한 안전관리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조선업은 재해율이 높은 산업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산업별 재해만인율’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선박건조 및 수리업 노동자’ 총 16만9,455명 중 재해자는 1,848명, 사망자 수는 26명으로 집계됐다. 노동자 100명당 재해자 비율인 ‘재해율’은 1.09, 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수인 ‘사망만인율’은 1.53으로 산업 평균인 재해율 0.54, 사망만인율 1.12 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국내 수출품목 중 1위 반도체(17.8%), 2위 자동차(6.9%), 3위 석유제품(6.8%) 이어서 선박해양구조물 및 부품(4.3%)이 4위로 조사된 가운데 조선업은 이들 주력산업 중에서도 재해율이 높았다. 앞선 ‘재해율’ 통계자료에 따르면 제조업이 0.66, 화학 0.59, 석유정제품 0.58으로 모두 재해율이 1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선종 불문 전 건조과정에서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것으로나타났다. 특히, 우리 조선업체가 주력으로 하는 고부가가치선박인 ‘LNG운반선’ 건조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월 29일 한국가스기술공사 안전품질처는 ‘삼성중공업 LNG통합실증 설비건설공장 현장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안전벨트·안전화 등 개인보호장구 착용 미비, 노동자 추락위험 가능성, 자재정리 미흡 등 부실한 안전관리실태에 대한 시정조치를 내린 바 있다.

▲ 시운전 중인 협력업체 직원들
▲ 선박 시운전 중 협력업체 직원들

 

안전 무방비, 위험의 외주화

길이 수백미터, 높이 수십미터의 선박을 건조하는 야드 현장에서는 고소작업, 옥외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밀폐공간에서의 용접 등 화기작업, 소음작업량도 상당하다. 이 가운데 선박건조는 수주량, 프로젝트에 따라 건조작업 공정의 변동이 잦고, 날씨 등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선주들의 요구를 다 반영하여 선박을 인도하려면 가능한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복잡한 조선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미흡한 안전관리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조 각 파드별 설계사, 생산자, 현장감독관, 책임관리자 등 대부분노동자들은 협력업체 직원 비율이 높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대형조선 3사 원청/협력업체 직원 수는 삼성중공업이 1만1,500명/2만5,000명, 대우조선해양 1만300명/2만명, 현대중공업 1만5,000명/1만8,000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금 가동이 중단된 군산 현대중공업의 경우 원청과 협력업체 비율이 20대80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재해율도 높게 나타난다.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사고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업무상 사고 사망자수는 총 324명으로 그중 하청노동자가 79.3%(257명)였다.

한 조선소 도장협력업체 노동자 A씨는 “비교적 쉬운 일에 원청직원들이 투입되고 위험한 일은 우리들이 하다보니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피해를 많이 본다”고 털어놨다. 조선업 하청업체로 갈수록 노동자들은 파트를 자주 옮겨 다녀 기술에 대한 경험칙을 쌓기 어렵고 안전인식도 낮다.

 

지속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고기량자를 제외한 대부분 현장노동자들의 안전교육 수준이 낮아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가 나기 쉽다. 지난 2017년 삼성중공업 야드에서 골리앗크레인과 지브형크레인의 충돌로 인해 크레인부속물 등이 낙하하면서 아래쪽 메인데크 위에 있던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해 STX조선해양에서는 스프레이 도장 작업 중 화재폭발사고로 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사고조사 결과 피해가 컸던 이유는 원청의 좁은 공간에 많은 사내도급 노동자가 동시에 투입됐다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었다.

협력업체 직원들도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나 기계획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안전’ 규정을 위반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일을 완수하고 다음 일을 확보하는 것이 협력업체측에서 무엇보다 중요해 노동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한 조선소에서 신조인수팀에 참여했던 일등항해사 A씨는 “전날 시정조치를 하라고 하면 그 다음날 바로 조치돼 있고, 바쁜 스케쥴에도 품질관리자(QM)가 어떻게든 재검사를 할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는 듯 했다”고 말했다.

이러니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선실인테리어 하청업체 직원 B씨는 “휴일이라도 선주측 관계자들이 오는 그 전날까지는 이유 불문하고 선주사에서 걸고 넘어온 결함사항들을 클리어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경남본부는 하청노동자 253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5일 선거일 휴무 관련 설문조사 결과 하청노동자 71%가 선거일 당일 출근했다고 밝혔다. 유급휴무자도 4%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조선경기가 예전만치 못하게 되면서 ‘후계약관행’이 증가해 협력사들의 작업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노동자들은 일하다 다쳐도 작은 사고들은 은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사고가 발생한 업체로 낙인이 찍히면 차기 계약에 불리하기 때문에 사측에서 피해노동자들에게 산재신청을 하지 말라고 회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조선업 재해율 통계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대목이다.

▲ 선체 내 노동자들
▲ 선체 내 노동자들

 

실체 없는 안전관리시스템

조선업체들은 외주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경기변동에 민감한 산업의 특성상 건조물량의 변동 등락이 심해 조선소들은 1990년대 이후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늘려왔다. 글로벌 조선업 침체로 인해 다단계 하도급 생태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복잡해진 구조에 따라 위험관리체계도 덩달아 복잡해지는 데 현재는 고용노동부, 원청업체, 하청업체가 각각 따로 진행하고 있어 사고 발생시 책임주체가 불명확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관계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조선업재해예방부에서 안전관련 기술검토, 현장지도를 일년에 1번 실시하고 있다. 그것도 업체들 전수조사하는 것은 아니며 등급별, 업체별로 선별해서 진행한다. 조선업재해예방부 관계자는 “올해기준 조선소별 4~6번 갈 예정이다. 처음에는 통보를 했고 이후에는 불시적으로 찾을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그간 크고 작은 재해에 대한 정부의 행정처분은 비교적 관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사고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행정처분은 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수준이었으며 처분 건수가 2,000여건, 금액은 1건당 130만원, 총 25억2,0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위는 업체 입장에서 과태료가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며 오히려 작업중단으로 인한 수익악화를 더욱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청업체의 경우 안전관리책임을 강화한다는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실체가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 2014년 국내 대형 조선 3사 및 오일메이져, 선주사 등 총 33개 업체가 참여해 총 7개의 HSE(보건, 안전, 환경) 표준으로 구성된 한국조선소안전표준화(KSSS)를 마련하는 등 종합적인 안전관리체제 구축에 경주해 왔다. 안전문화 구현이 기대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원청 소속 안전관리자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안전관계자는 “안전만 담당하는 감독관을 많이 배치하면 좋지만 업체들도 경영상 문제로 최소한도로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 예전보다 증가시키려는 기류는 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지난 1월 16일부터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 원청의 책임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추세에서 사고당사자에 대한 법적 조치로 당사자의 안전의식 제고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아차사고(당사자의 실수 등으로 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고)’가 많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작업자 스스로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이에 작업자들에게도 일정한 법적 책임을 물어 의식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편, 계약관계에 벗어난 독립된 안전관리사가 안전감독업무를 일임하는 방식도 대두되고 있다. 대부분 현장관리자 밑에 안전관리자가 배치되다 보니 안전관리가 부실해도 공사를 중단시키기가 쉽지 않은 구조를 염두해 고안한 대안이다.

지난 2017년 기준 산업재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규모가 무려 18조원을 넘어섰다. 안전사고는 조선소에도 악재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안전관리가 미흡한 작업환경에서 반복적으로 근무했던 발전사 협력업체 직원 故 김용균씨와 같은 사례가 조선소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가운데 실질적 방패가 되어줄 안전관리체계가 시급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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