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물 진입 막는 정체된 수산단체
새 인물 진입 막는 정체된 수산단체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0.05.06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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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버려야”

[현대해양] 해양수산단체가 새 인물 진입에 빗장을 걸어잠궈 스스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해양수산계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행태가 심하다는 평이다.

※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련 없음

(특)한국원양산업협회 J 전회장은 16년간 회장직을 수행했다. 2년 임기에 연임에 연임을 거듭한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협회는 변화와 개혁에서 멀어지고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J 전회장은 재작년에 더 이상 연임하지 않고 물러났지만 장기 재임에 따른 폐해가 J 전회장 퇴임 직후 벌어졌다.

원양산업협회 홍보업무를 담당하던 L차장이 지난해 8월 급성백혈병 합병증으로 인한 급성폐렴 사망한 것이다. 문제는 고인이 남긴 문서에 직장 내 갑질이 매우 심했음을 고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족들은 “고인의 사인이 직장에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발병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장기 재임의 그늘

유족측은 이처럼 스트레스가 과중해 급기야 급성 백혈병이 발병했고 사망에까지 이르렀다며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런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목되는 K상사에 대해 협회는 자체조사를 벌인 뒤 2개월 감봉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상사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징계 구제신청을 내면서 승복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인의 죽음을 접한 이들은 한 부서에, 그것도 16년간 같은 상사 밑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P노무사는 “조직을 책임지고 대표하는 CEO부터 바뀌지 않고 늘 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으니 순환보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변화를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P노무사는 “게다가 늘 보는 장면들이니 갑질이 갑질로 보이지 않고 마냥 익숙한 풍경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4연임 회장

한국수산무역협회 B회장은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3년간 4선째 연임하고 있다. 그동안 조직은 어떻게 됐을까? 언제부터인가 사업과 예산이 줄고 있다는 평이다. 협회가 기존에 해오던 사업과 예산이 수협중앙회, 한국수산회 등으로 이관되면서 협회의 역할과 비중이 작아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무, 상무 등의 실무간부들은 일정 임기를 마치고 퇴직하고 새 인물이 들어온다는 것. 조직의 수장인 회장이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무 책임을 전무, 상무 등의 상근임원들이 분담하고 있어 CEO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적은 조직이다. 하지만 회장이 고령인데다 10년째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듯 외부인사와의 접촉은 매우 적고 신규사업 발굴에도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년간 바뀌지 않는 회장

(사)한국해양수산신지식인중앙연합회(신지식인연합회)는 M회장이 2012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16년 12월 부산 해운대 모 호텔에서 신지식인연합회 임시총회가 열렸다. 임원 선출을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M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 회장이 독단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M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날 뜻을 비쳤던 것. 그러나 회원들은 회장 할 사람이 없다며 그를 다시 추대했다. 이 자리에서 M회장은 “한 번만 더 하겠다”며 의사봉을 다시 잡았다. 그는 “한 번만 더하는 대신에 임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늘려주면 연합회를 본궤도에 올리고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3년 뒤 지난해 12월 대전 모처에서 열린 총회에서 그는 다시 회장에 선출됐다. 회장 지원자가 없으니 한 번 더 맡아달라는 주문을 받았고 그는 수락했다. 3년의 임기가 연장된 것이다. M회장은 2012년 12월 제5대 회장에 선출된 뒤 8대 회장으로 2022년까지 임기가 예정돼 있다.

당시 총회에 참석했던 한 회원은 “다른 사람이 지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회장단 그룹이 한 번 더 추대한다는 분위기로 몰고 가고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원은 “3년 전 총회 때도 M회장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회장 지원자가 없었던 것은 서로 얼굴 붉히기 싫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불미스럽게 물러나는데 ‘대신 내가 하겠다’고 나선다면 밀어내는 것과 같이 보이기 때문에 정리(情理)상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총회에 참석했던 또 다른 회원은 “회장이 물러난다고 말만 하지 본인이 그 자리에 있는데 뻔히 아는 사람들끼리 누가 손들고 지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그 자리에서는 지원할 수도 없고 앞서 늘 지원자 공고를 하긴 하지만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 진입(지원)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로 임원(회장, 수석부회장, 감사) 지원자격요건을 보면 ‘임원이 되려면 입회 후 만 2년 이상이 지난 정회원 중 중앙회장, 부회장, 감사, 이사, 사무총장 등을 역임한 경험이 있는 자’로 제한되어 있었다. 아무리 능력이 특출해도 2년 미만의 회원, 임원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할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변하지 않는 조직

신지식인 연합회는 조직에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곳이다. 회장, 수석부회장, 부회장, 이사, 감사, 사무총장 등의 여러 직책이 있지만 M회장 취임 이후 2012년부터 조직에 변동에 없다. 매년 새로운 지식인이 선정되는데도 같은 회장, 같은 부회장, 이사, 감사, 사무총장 등 사실상 8년간 변화가 없었다.

이에 대해 한 회원은 “다들 CEO들이고 이런 저런 단체의 대표를 해본 사람들인데 직무가 맡겨지면 못할 사람이 있겠냐”며 “그런데 오래된 회원들끼리 성을 쌓아 새로운 회원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어 그 성을 부수고 임원 하겠다는 사람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회원은 “단순히 수장 임기가 길다는 것만을 가지고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물이 고이면 썩듯이 한 사람이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나태해지고 고착화 돼 새로운 시도, 변화를 주지 않게 된다. 그럼 그 때부터 그 조직은 변화, 발전이 없고 퇴보하게 된다”며 “한 사람이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신지식연합회 홈페이지
신지식연합회 홈페이지. 홈페이지에는 2017년 인재육성의 날 보도자료 이후 소식이 게시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신지식인연합회는 최근 3년 사이 활동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지식인연합회 홈페이지만 봐도 이런 분위기를 단박에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는 2017년 인재육성의 날 보도자료 이후 소식이 게시되지 않고 있다. 행사사진도, 공지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일정표(달력)도 2017년 이후 모두 비어 있다. 올해도 일정이 없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의욕이 상실된 느낌이다. 올해 사업계획을 묻는 질문에 M회장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이런 모습에 대해 그를 잘 아는 한 임원은 “3년 전에 회장 그만 두려고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회장에 선출되니 안 한다고는 못하고 그냥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새 인물 등판 막지 말아야”

특정인에게 일이 집중돼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신지식인연합회의 경우 회장 1명이 사실상 모든 일을 다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회장 개인사업장에서 회사 직원에게 연합회 업무를 맡기고 있어 챙기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 실제로 A기업은 신지식인연합회로부터 외상 거래 대금을 1년 이상 못 받고 있다고 한다. A기업 회계 담당자는 “신지식인연합회에서 거래대금을 받지 못했다. 워낙 소액이라 ‘알아서 주겠지’ 하고 기다리다 연락하면 매번 ‘청구서를 보내라, 세금계산서를 이메일로 보내라’ 하는데 늘 보내고 문자메시지까지 남기는데도 대금 입금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M회장은 “회사 일이 바쁘고 사무국 상근자가 없으니 메일 확인을 제 때 못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이 일은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내 회사에서 연합회 일을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김미애 한국심리전문센터 심리전문가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게 아니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가듯이 다 방법이 생기고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된다”고 조언했다.

또 이상설 조직문화연구소장은 “무보수 명예직의 경우 지원자가 적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한 사람이 계속 같은 자리에 있으면 더 지원자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 자리를 완전히 비워두면 누군가 그 일을 더 홀가분하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럼 다른 분야는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농업계 한 인사는 “농업계 단체장 임기는 보통 2년인데 대부분 단임으로 끝난다. 길면 1연임 하는 정도다”라고 전했다. 또 그는 “임기 초기에는 의욕이 넘치다가 후반부나 연임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농업계에서는 연임을 안 시키려고 하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그는 “사무실을 안 내는 것은 돈을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다른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새 인물 진입에 빗장을 걸고 있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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