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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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0.05.0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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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 뼈다귀 이야기에 얽힌 가난한 이들의 삶의 실체

[현대해양] 1930년 4월 《신소년》에 발표된 「청어 뼈다귀」 는 향파 선생의 삶에 대한 평소 생각이 잘 표현되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어획되는 청어 이야기를 통해 일제 강점기 당시의 가난했던 우리네 서민들의 생활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동네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순덕이 가정 이야기이다. 순덕이 엄마는 병들어 늘 드러누워있어야만 하는 형편이고. 순덕이 동생 3살짜리는 얼마 전에 태독에 걸려 앓다가 죽었다. 집안 사정은 논 서넛 마지기를 소작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그 논도 수해가 와서 논이 전부 개천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개천이 되어버린 논을 다시 일구어 농사를 시작해야 하지만, 순덕이 아버지는 사흘 일을 하고는 지쳐 포기한 상태다. 순덕이는 부역을 나가 일을 하다가 어깨가 퉁퉁 부어 고름이 생겨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형국이다. 돈도 양식도 다 떨어져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기도 힘든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 땅 소유주인 지주가 찾아와 순덕이 아버지한테 수해로 개천이 되어버린 남의 귀한 땅을 새로 개간해서 농사일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호통을 친다. 이 소리를 듣고 있는 순덕이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하다. 나이도 자기 아버지보다 네댓 살이나 적은 사람이 지주라고 마구 해대는 그 소리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기만 하다. 그러나 약자들의 입장에서 어찌할 수가 없다. 이런 형편에도 순덕이 아버지는 누워있는 순덕 어머니를 일으켜 지주에게 밥상을 준비하게 한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밖에 급히 나가 쌀 한 홉과 정어리 한 토막을 구해와서 상을 차렸다.

상을 차리는 동안 순덕이 코에는 고소한 밥 냄새와 청어 굽히는 냄새에 식욕이 동해 참을 수가 없다. 순덕이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순덕이 어머니는 조금만 참아라, 지주 양반이 상을 물리면 남은 밥과 청어를 줄테니 참으라고 한다. 이 소리에 순덕이도 기대를 가지고 지주 양반이 상을 물릴 때까지 기다렸다. 순덕이는 밥은 반만 먹고, 정어는 젓가락만 대이다가 만 밥상이 나올 것을 기다리며 침을 꾹 참고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밥상이 물려졌을 때 보니, 밥 식기 반찬 접시 모두 다 씻은 듯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그리고 접시 밑으로는 청어의 등골 뼈다귀만 소도록하게 추려져 있었다. 또 청어 대가리 뼈다귀가 마치 비오는 날 개날구지 똥처럼 밥낱과 함께 꾸역꾸역 씹히어 있었다.

남은 밥과 청어를 기다렸던 순덕이는 이 물려진 밥상을 보고는 식기 반찬 접시를 내동댕이 치고 상다리를 부셔버리고 싶도록 참을 수 없이 섭섭했다. 순덕이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올해 청어 맛조차 못 본 불행한 사람들” 하고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에라 홧김에 이거나 먹어 봐라” 하고 순덕이는 청어 뼈다귀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여물어서 잘 씹히지 않았다. 그 순간 목으로 넘어가던 뼈가 목에 걸렸다. 지주가 가고 난 뒤에 캑캑거리는 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순덕이 한테로 와서 자기의 머리카락을 잡아 뽑으면서 엉엉 운다. 순덕이는 눈알이 뻘게지도록 허리를 움출거리며 기침을 해보지만 목에 걸린 뼈는 그대로 있다. 손가락을 넣어서 후벼보지만 그럴수록 가시는 더 깊이 박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엉엉 울던 아버지는 더 화가 나서 순덕이를 향해 “이놈의 자식 네까지 사람을 죽이려고 드니, 오늘 김부자가 소작 땅을 떼었다”라고 고함을 친다. 그리고는 순덕이를 보고 힘껏 갈겼다. 그 순간 순덕이의 어깨에 있던 종점이 툭하고 터졌다. 그 순간 까만 피와 노란 고름이 방안에 흩어졌다. 순덕이는 그 상처 때문에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던 아버지는 큰 고름뭉치가 자기의 볼에 부딪힐 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 순간 미친 듯이 순덕이의 어깨 상처를 입술로 빨았다. 아버지는 순덕아! 순덕아!를 부르면서, 볼을 부비면서 울부짖었다. 그 순간 순덕이도 아버지! 아버지! 내가 잘못했어요 라고 부르짖으며 어머니 아버지를 힘껏 안았다. 한 가족의 하나 됨이 비극적 상황 속에서 연출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향파 선생은 다음의 마지막 한 마디를 부연하고는 동화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누구인지 없이 그 어느 모퉁이에서는 주먹이 쥐어지고 이가 갈리고 살이 벌벌 떨림을 느꼈다.”

땅이 없어 소작농으로 살아야 했던 가난한 농민의 삶, 한 해 동안 청어 한 마리도 입에 댈 수 없는 가난한 그들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가진 자들의 횡포가 얼마나 심하였으면 청어 뼈만 남길 정도로 약자들의 삶을 힘들게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진 자가 베풀 수 있는 덕과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본다. 언제 어디서나 이러한 인간 유형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향파 선생의 마지막 메세지는 이들을 향한 분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면서 약자나 가난한 자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의 감염은 약자나 강자, 부자나 가난한 자의 구분이 없다. 이는 인간은 모든 것에서 평등해야 함을 시사하기도 한다. 어느 사회나 시대 속에서 온전한 평등이 실현되는 시대가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가난의 고통을 다시 겪을 수는 없다. 현실 속에서도 약자와 가난한 자, 힘을 가진 자와 힘없는 약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 양 극단의 거리를 어떻게 줄여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 방안은 가진 자와 강자가 없는 자와 약자를 보듬고 나아가는 길임을 「청어 뼈다귀」는 반면교사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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