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㉗ 아디오스 까날 데 파나마
하동현의 양망일기 ㉗ 아디오스 까날 데 파나마
  • 하동현 소설가
  • 승인 2020.05.0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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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첫 대양항해로 파나마운하를 지날 때의 기억들. - 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

파나마운하에 관한 한국어버전 농담이 하나있다. 개통을 앞둔 중남미 산신령들이 톱클래스 한국 신선에게 작명을 의뢰했단다. 죽어라 산을 깔아뭉개고 땅을 파헤치는 인간들 소행에 열 받아 ‘그거 파나마나야. 헛일이지’라 꾸짖으셨다는데, 통역 필터링 미숙으로 그대로 ‘파나마운하’로 명명되었다는 썰렁한 아저씨 개그 같은 우스개.

1 대서양을 가로지른 긴 항해 끝에 육지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다. 가슴이 뛴다. 멀리서 손짓하는 신천지를 발견한 탐험가의 심정이다.

카리브 해를 질러 대서양쪽 입구인 크리스토발에 접안해 관제소를 호출한다. 무조건 기다리란다. ‘기둥서방’ 하나를 물고 가듯, 파나막스급(Panamax, 확장 전 운하 통과 가능한 대형선규모, 대략 폭 32미터, 흘수 12미터, 최대 7만 톤 급 정도)대형선박이 통과할 때 곁다리로 뒤따르게 하는 방식이다.

파나마(Panama)의 어원은 토종 파나마나무, 나비가 많다는 의미, 그리고 물고기가 지천에 깔렸다는 뜻에서 유래했단다.

이 나라는 1903년 운하건설지대 획득을 노린 미국의 지지로 콜롬비아로부터 분리 독립했다. 운하통과료와 선적(Flag convenience, 편의치적선박 국적등록)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프랑스가 운하 건설을 포기하고, 미국이 주도한 긴 공사기간에 무더위와 해충의 창궐에 따른 말라리아에다 산사태로 수 만 명이 희생된 아픈 역사가 있다.

칠레남단 혼곶(Cape horn)의 거친 해류와 유빙의 출몰을 감수하며 8천마일 넘게 걸리던 항로를 획기적으로 단축한, 미국토목학회가 지정한 20세기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되는 대공사였다.

‘A land divided, A world united’, 땅을 갈라 세계는 하나가 된다는 운하 개통식 슬로건이다. 이 또한 개발에 따르는 산업화의 상반된 두 얼굴을 가진다. 파나마의 낙후된 경제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고마운 존재지만, 1999년 운영권을 완전히 넘겨받기까지 한 세기 가까이 미국의 간접통치를 받는 굴욕이 뒤따라야했다.

82킬로미터 길이에 카툰, 페드로미구엘, 미라플로레스, 인공호수 지명을 딴 세 곳에 개폐식 갑문(閘門, Locks, 유속, 유량을 조절하기 위해 여닫는 철물구조시설)이 있다. 호수의 수위가 각기 달라, 수로에 물을 채워 배를 띄워 올렸다가 다시 하강하는 방식으로 통과시키는 현대 해양토목기술의 결정판이다.

통항료는 선박종류, 크기, 화물적재량을 기초로 복잡한 산정기준이 있다. 해마다 1만 5,000여 척 정도 배를 통과시키고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미국인 할리버튼이 맨몸으로 운하를 헤엄쳐 지났을 때 지불했다는 단돈 36센트가 최소고, 노르웨이 초호화 대형유람선에 40만 달러 가까운 통과료를 부과했다. 통과 순위로 미국, 일본, 중국과 칠레, 캐나다 등과 경합하는 한국이 5위권 정도를 형성한다는 통계는 왠지 우리를 뿌듯하게 만든다(숫자와 통계는 1984년 당시 기준).

초대형 LNG선이 등장하며 현재 파나마는 운하 규모를 더 확장했다. 또한 물류전쟁을 예고한 중국자본이 인근 니카라과에 길이가 세 배, 통과선박 규모도 두 배가 되는 대운하 건설계획을 진행했지만, 환경훼손을 포함한 국제적 반대여론과 경기침체로 유야무야 난항을 겪고 있다.

 

당시는 미국이 운하소유권을 두고 반발하던 파나마의 통치자 ‘노리예가’ 장군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불안한 정정이 계속되고 있을 때였다.

기둥서방으로 낙점된 일본 컨테이너선과 동반통과를 기다리는 통에 상륙허가를 받고 하루 휴식이 주어졌다. 대리점 직원은 치안이 엉망이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를 했다.

짧은 소나기가 더위를 잠시 누그러뜨린다. 야자수가 늘어선 부두입구에 택시기사들이 손부채질로 더위를 쫓고 있었다. 인구태반이 메스티소(Mestizo, 원주민과 유럽계 혼혈)라 했다. 흑인기사들 몇 까지 섞여있으니 외모들이 다양해 인종전시장 같다. 얼굴은 동안인데 시원하게 머리가 벗겨진 백인 친구를 불렀다.

“10불만 내라. 하루 종일 에스코트 하겠다.”

하지만 고물승용차는 부두를 벗어나 오 분도 못가 퍼져 앉았다. 둘은 땡볕에 차를 끌고 밀고 정비소까지 가야했다. 기사는 내가 휑하니 돌아가 버릴까 걱정이 무너졌다. 간단한 수리비(화폐단위 ‘발보아’로 나왔으나 5달러정도)까지 지불해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윙크를 했다. 이 땅에 남자로 태어나 밥벌이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라시아스(고맙다). 오늘 공치는 줄 알았다. 마누라한테 쫓겨 날 뻔했다.”

시내로 들어서자 찜통 날씨에 엉망인 교통체계로 짜증이 났다. 쓰레기가 나뒹구는 도로에 중앙선 구분도 없는지 알아서 눈치껏 가야했고, 교통순경격인 선글라스의 군인은 아무런 통제도 없이 담배를 물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성당입구 좌판에서 운하사진을 담은 엽서묶음을 골랐다. 파나마모자(중절모)도 하나 집어 들었다. 엉성한 모조품이다. 원래 에콰도르가 원산지로 또끼야(Toquilla)라는 열대식물에서 추출한 섬유로 만든다는데, 파나마를 통해 수출되면서 엉뚱하게 주객이 전도된 호칭을 얻은 모자다.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하고 싶어 노천카페에 들어섰다. 흔들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주인인지 종업원인지가 먹고 싶으면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먹으란다. 벽에는 당시 네 체급을 석권하며 당대를 풍미했던 복싱영웅 ‘로베르토 두란’의 전신 브로마이드가 걸려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구경이고 뭐고 샤워가 하고 싶어 기사에게 배로 돌아가자고 했다.

믿고 기다리지도 않았지만 좋은 술집을 안내하겠다며 기사는 저녁에 다시 나를 태우러 왔다. 동갑내기 기관사관 L이 따라나섰다. 구 시가지를 10분정도 달려 조악한 네온이 번쩍거리는 주점에 들어섰다.

이 더위에 호텔 도어맨 복장으로 중무장한 친구가 기사와 반가이 인사를 하고 몇 마디 수군거리더니 구석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맥주 몇 병에 반바지 차림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가씨가 따라 나왔다. 영어도 제법 한다. 에어컨도 켜지 않아 방은 후덥지근했다.

이제 열아홉 먹었다는 착한 인상의 아가씨는 탭댄스 같은 전통춤 동작으로 노래를 흥얼대더니, 친구라며 매부리코 뚱보 아가씨까지 불러들였다. 착하기도하지 친구까지 배려하고. 기관사 L은 그게 아니란다.

“여자들이 저보다 나은 여자 소개하는 것 봤나? 할 만 하니까 했겠지.”

L이 두 여자에게 브라보를 외치며 술을 권하자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 술 못해요. 아기 우유 값 벌려고 나왔는데…….”

맥주에 사래가 걸려 기침을 뱉어낸 L이 펄쩍뛰었다.

“그라믄 이 사람아, 니 아줌마란 말이가? 얼라가 있다꼬?”

천진하게 웃던 그녀가 뒷주머니에서 손지갑을 뽑아 가족사진을 우리 앞에 내밀었다. 맙소사, 돌 지난 듯한 사내아이를 품은 채 그녀와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신랑이란 작자는 다름 아닌 이 술집 문지기였다. 술맛이 확 달아났다.

“아이구야, 참말로 개판이네. 이것들이 여기서 맞벌이 하는가베. 어이 때리치우고 빨리 일어서자 그마.”

당황한 여자들이 따라 나왔지만 L은 기사와 문지기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돌아오는 길에 기사 녀석은 낯을 붉히는 우리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다리랄 때는 언제고 갑자기 배들이 밀렸다며 앞당겨 미드나이트(자정)에 운하를 통과하라는 오더가 났다. 화장실이 비행기식 분해형인지, 배설물 임시보관함을 만들었는지 확인을 위해 검사관들이 배에 올랐다. 담배선물을 한아름 들고 건성으로 대충 둘러본 그들이 배를 떠나며 농담을 했다.

“운하중간이 호수라고 목욕하고 빨래하지마라.”

육중한 일본 컨테이너선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를 따라야 하는 우리도 엔진을 걸었다. 대형선들은 예인선이나 갑문의 전동 로프 힘을 빌려 전진하지만, 곁다리로 뒤따라가는 어선은 자체 엔진의 추진력도 틈틈이 사용해야한다. 콧수염을 기른 거구의 파일럿은 가톨릭이 대부분인 이 나라에서 특이하게 자신이 무슬림이니, 간식에 돼지고기를 빼 달라 부탁하고 말없이 앞을 응시하며 조타명령만 내렸다.

곧바로 도착한 3단계 계단식 ‘카툰’ 갑문에 배를 가두고 차례로 물을 채워 배를 26미터 띄워 올린다. 그리고는 댐처럼 막아둔 카툰호수를 지난다. 넓은 수역으로 들어서자 위험도가 덜해 긴장이 풀려 무료했는지, 파일럿이 볼트글라스(선회 창)에 팔을 기대고 앞을 견시하고 있던 나에게 불쑥 영어로 물었다.

“젊은 항해사. 너는 왜 우리가 배를 여성대명사(She)로 호칭하는지 아는가?”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웃으며 내 어깨를 툭하고 쳤다.

“무엇보다 그녀(배)를 통제하려면 잘 조련된, 능숙한 남자들이어야 하니까.”

희뿌연 여명이 꿈틀대고 밤이 아침으로 바뀌며 운하지대의 풍광이 펼쳐진다. 열대우림이 뒤덮인 진녹색 수풀언덕으로 둘러싸인 넓고 잔잔한 호수를 전속으로 몇 시간 내처 달린다.

폭 150미터 정도인 ‘쿨레브라’ 인공수로(Culebra cut)로 접어든다. 뱀을 뜻하는 의미로, 정글사이 강을 따라 흘러가는 느낌이다. 조심스런 항해로 ‘페드로미구엘’ 갑문에 도달해 배를 10미터 하강시키고, 1마일 정도를 더 달려 마지막 갑문 ‘미라플로레스’에서 2단계로 다시 16미터 하강하면 갑문통과가 끝난다. 갑문에 갇힐 때면 더위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고, 갑문에 채워지거나 빠져나가는 물은 와류로 인해 흙탕 빛이다.

전망대 뒤로 보이는 초록빛 야산과 벌판이 시원하게 눈을 씻어준다. 육지에 장착된 레일형태 궤도를 따라 동키(donkey, 당나귀)라 부르는 6대의 특수 전동차가 앞선 일본 컨테이너선을 양현 선수, 중간, 선미를 로프로 연결해 좁은 갑문 수로로 예인했다.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손을 흔든다. 광활한 자연에 현명한 인간들이 건설한 조형물들이 어우러져 멋들어진 볼거리였을 것이다.

태평양쪽 발보아 항을 빠져나오며 열여섯 시간 여정으로 우리는 파나마운하를 품에 안았다가 놓아줬다. 파일럿이 돌아가기 위해 육중한 몸을 사다리에 걸치며 눈을 찡긋했다.

“헤이, 젊은 항해사. 아름다운 여인(배)을 잘 다루는 멋진 남자가 되시게.”

이제 눈앞으로 태평양이 뻣뻣이 누워있었다. 운하를 돌아보았다. 주변 중남미 국가들에 비하면 양반이라지만, 미국의 견제와 간섭을 벗어나지 못해 자존과 질서를 상실하고, 날씨처럼 끈적대는 작은 나라의 관문을. 아디오스 까날 데 파나마(운하여 안녕).

2016년 완료된 운하확장공사에 수위조절용 수문(Water valve), 특수칸막이벽과 작동유압장치에 한국 기술이 투입되었다. 개통식 통과선박도 한국에서 건조된 중국국적 컨테이너선이다. 오늘날 세계는 이렇게 지구촌 모두와 씨줄날줄로 연결되어있다. 바다만 보더라도 다국적 선원들이 배를 운항하듯 이제 ‘국지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경계와 분리는 의미가 없어진 세상이다.

뜬금없는 예지만, 불가(佛家)사상을 축약한 의미심장한 문장을 하나 떠올린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지구촌 전체가 몸살을 앓는 지금, 우리 생명과 존재도 대자연을 포함한 무수한 것들과 상호의존관계임을 생각하면서.

Everything is interrelated, it changes, so pay attention.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변한다. 그러니 깨어있으라. 혹은 현재에 충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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