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㉗ 거친 바다에 기대다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㉗ 거친 바다에 기대다
  • 김준 박사
  • 승인 2020.05.0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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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조도 어류포

[현대해양] 1817년 9월 어느 날, 키가 큰 금발의 외국인들이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봉우리에 오른 이들은 발아래 펼쳐진 다도해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 지구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라며 탄성을 질렀다. 푸른 바다에 백여 개의 섬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다투어 모두 섬의 수를 셈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120개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136개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170개라고 말했다. 너무 많은 섬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헤아리기 쉽지 않았다.

영국 선적의 ‘라이러 호’ 선장 ‘바실 홀’ 일행이 항해 중 진도군 조도면 돈대봉(도리산)에 올라 조도군도의 모습을 보고 이런 반응을 했을 것이다. 바실 홀의 항해기는 1818년 영국에서 <조선 서해안 및 류큐 제도 발견 항해기>(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and the Great Loo-Choo Island)’로 출간되었다. 그 중 조선과 관련된 내용은 <10일간의 조선항해기>(삶과 꿈)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조도면은 35개의 유인도와 119개의 무인도 등 모두 15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실 홀 일행만 아니라 지금도 동서남북으로 탁 트인 돈대봉에 올라 조도군도의 섬의 숫자를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다.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의 모양새가 새떼 같고 섬의 모양도 새와 비슷해 조도라 불렀다고 한다.

도리산(돈대봉) 전망대
도리산(돈대봉) 전망대

거친 바다가 준 선물, 진도곽

이렇게 많은 섬이 뭍에서 떨어진 바다에 모여 있으니 들고 나는 물이 섬 사이를 지나면서 얼마나 거칠게 울었겠는가. 진도는 울돌목(명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도군도를 휘감고 도는 조류는 더 거칠고 무섭다. 진도 몸섬과 조도 사이 장죽수도, 동거차도와 서거차도 사이 거차수도,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 맹골수도 등 거칠기로 유명한 곳이다. 오죽했으면 이름도 거차도, 맹골도라 했을까. 모두 거칠기가 울돌목 못지않다.

조류가 거칠어 미역과 톳과 뜸부기 등 최상품의 해조류가 생산되는 곳도 조도지역이다. 해조류만 아니라 섬과 섬 사이 한때는 고기반 물반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맹골도, 병풍도, 독거도, 내외병도 등은 손맛을 즐기려는 태공들로부터 인기가 좋다. 대신에 하조도와 상조도 사이 조도수도는 평수역이다. 폭풍주의보가 내려도 다른 곳에 비해 호수처럼 잔잔하다. 이곳에서는 톳양식, 전복양식, 다시마양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도 특산품은 ‘멸치’, ‘돌미역’, ‘톳’, ‘대파’, ‘무’, ‘쑥’ 등이다. 멸치는 낭장망을 이용해 죽항도, 청등도에서 많이 잡으며, 돌미역으로 독거도, 맹골도, 곽도, 관매도의 거친 바다에서 자란다. 친정어머니가 시집간 딸의 혼수품으로 준비한다는 ‘진도곽’이 이곳 미역이다. 미역국을 끓이면 사골이 물러져도 조도미역은 뻣뻣해 양식미역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맛을 모른다. 몇 번이고 우려먹어도 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조도에서 쌀농사를 지을 만한 곳은 하조도 창리와 육동리, 상조도 동구마을과 율목마을 간척지 정도다. 지금은 쌀농사를 하는 주민은 없다. 대신에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대파, 쑥, 무를 밭에 심는다. 논도 밭으로 바꾸어 이용한다. 조도 겨울무는 ‘나주배’보다 달고 사각사각하다. 밭에서 그대로 겨울을 나는 무는 쑥과 함께 겨울철 섬사람들의 소득원이다.

잘 갈무리하여 말린 조도 무말랭이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도시민들의 눈높이 맞는 멋스러운 포장과 브랜드를 갖추지 못했지만 입소문으로 제법 알려져 있다. 쑥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따뜻해 1월부터 쑥을 생산한다.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이 약효가 좋아 한약방과 가정식용은 물론 찜질방에 이르기 까지 수요가 많다. 조도만 아니라 조도군도에 대부분 섬들은 바다에는 톳을 밭에는 쑥을 키워 생활하고 있다. 자루에 넣어 배에 보내면 겨울에는 비싸게 봄에는 싸게, 사정대로 통장으로 입금이 된다. 특별한 판로 걱정도 없이, 밑천도 들어가지 않고 얻는 소득이다.

조도 돌미역
조도 돌미역

 

섬주민의 오래된 문화센터, 등대

돈대봉과 함께 조도의 상징은 하조도 등대다. 지금은 등대 입구까지 자동차가 들어가지만 처음 갔을 때는 좁은 동백숲길을 헤치고 갔다. 등대를 지키는 항로표지원의 생필품은 어류포에서 노를 저어 배로 날랐었다. 등대 밑에는 아직도 선착장이 남아 있다. 그 배가 오갔을 바다는 요즘 상괭이가 노니는 바다다. 날씨가 좋은 날은 수많은 상괭이를 볼 수 있다. 등대 아래 조망대에 만들어진 조형물의 지구를 받들고 있는 것도 세 마리의 상괭이다.

하조도등대
하조도등대

하조도 등대는 1909년 2월 1일 불을 밝혔다. 하조도 등대는 진도와 조도 사이를 지나 서해로 올라가거나 남해로 내려가는 어선, 화물선, 무역선 등에 불을 밝혀 안전항해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또 하조도 등대를 기준으로 서해와 남해가 좌우로 나뉜다. 그러니까 오른쪽은 남해, 왼쪽은 서해가 되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은 추자도는 물론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돈대봉에서 보는 다도해와 함께 조도에서 꼽는 경치는 등대에서 보는 일출이다. 하룻밤을 머물러야 가능한 일이다. 등대는 불만 밝히는 것이 아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TV는 구경도 못한 사람도 많았다. 당시 섬에서 유일한 문화생활인 TV를 시청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TV 드라마 ‘여로’, ‘파도’는 섬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최고였다. 저녁을 마친 주민들은 초등학교에서 의자를 가지고 등대 마당으로 모였다. 또 조도초등학교나 중학교 단골 소풍장소 역시 등대였다. 조도사람은 등대 앞에서 찍은 사진을 한 장 정도는 가지고 있다. 이제는 주민들보다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로 바뀌었다.

조도면에는 하조도 등대 외에도 가사도등대(1915.10.1. 점등), 맹골죽도등대(1907.12 점등, 무인등대)가 있다. 가사도는 목포로 가는 중요한 뱃길에, 맹골죽도는 진도의 서해 끝에 위치해 있으며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뱃길의 중요한 이정표이다. 주변에 맹골도와 병풍도와 거차도 등 섬들이 있다. 바다가 거칠고 암초가 많아 해난사고가 잦은 곳이다. 죽도등대는 해상교통관제센터(Vessel Traffic Service Center, VTSC)가 설치되어 원격조종이 가능한 최첨단 시설이 갖춰진 후 2009년 무인등대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이곳 관할 해역에서 침몰해 304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때 해상교통관제센터가 제 역할을 했는가라는 점이 논란이 되면서 죽도등대의 유인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조도군도 중 관매도, 나배도, 소마도, 상조도 여리미, 동서거차도 등 섬지역 어민들은 닻배(풍선배)를 가지고 칠산바다까지 나가 조기잡이를 했다. 배를 다루는 노련함이나 그물질하는 기술이 서해 어느 지역 어부도 당해내질 못했다. 또 조기가 드는 물길을 보는 눈이 밝아 어디에서나 ‘조도어부’라면 알아줬다. 목포에는 ‘조도’이름을 앞세운 선구점, 횟집 들이 많다. 조기잡이가 성할 때 서해 어느 포구나 ‘조도 갈사람 있느냐’며 태워 갔다고 한다. 그래서 조도사람을 두고 ‘조도가리’라고도 했다. 일제강점기 동력선을 앞세운 안강망과 유자망이 어장을 잠식하면서 조도 닻배는 황금어장을 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에는 어업기술을 재빠르게 익힌 목포, 여수 배들이 이 어장을 점유해 버렸다. 조도 주민들은 그저 장죽수로를 오가는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서는 어선들은 하조도 등대와 함께 지켜볼 뿐이다. 겨우 낭장망으로 섬 주변에 드는 멸치를 잡는 정도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거친바다가 길러낸 톳의 품질을 다른 지역에서 흉내 낼 수 없다는 점이다. 뱃길을 따라 톳양식 줄이 나란히 나란히 정리해 있고, 전복양식장도 늘고 있다.

전복양식장
전복양식장

진도항(팽목항)이 지금처럼 연안항으로서 역할을 하기 전 조도사람들은 대부분 목포가 생활권이었다. 배를 두 번 타고 버스를 두세 번 타는 번거로움 보다는 시간 걸려도 한 번 배를 타는 쪽을 택했다. 이 배는 가사군도와 조도군도 등 20여개 유인도를 목포와 연결했다. 하루에 단 한 번 운항하는 이 배는 조도의 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어 지금도 운항중이다. 미역과 톳은 물론 그물을 털어 말린 숭어, 무말랭이까지 그 뱃길을 이용해 싸서 보낸다. 이제 진도항에서는 조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하루에 몇 차례씩 운항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관매도 해수욕장과 하조도 신전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들을 무시로 싣고 오간다.

돈대봉에서 본 조도군도
돈대봉에서 본 조도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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