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운항선 시대 선도할 항해·통신 장비
자율운항선 시대 선도할 항해·통신 장비
  • 신일식 중소조선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0.05.0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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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2조원 규모 시장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서양은 탐험과 무역을 위해 15세기부터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으나 동양은 이미 2세기가 앞선 13세기부터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중국 명나라 시대 환관 정화(鄭和)는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아시아, 아리비아 반도, 아프리카 등으로 해상원정을 통해 30여 개 국가에 조공을 바치게 하였을 만큼 이 시기 바다를 지배했던 명나라는 가장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처럼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세계사에 족적을 남겼다.

항해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거친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잔존하던 시대에 명나라의 해상 대원정이 가능했었던 이유는 나침반이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2세기 후 나침반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서양의 대항해 시대가 개막되었다. 대항해 시대에 적극적이었던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해상 무역 활동을 통해 전성기를 누렸듯 작은 나침반이 바다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열쇠였던 것이다.

오늘날은 나침반을 대신해 자이로컴퍼스, 무선통신장비(VHF/MF/HF),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전자해도표시장치(ECDIS), 항해자료기록장치(VDR), 선박용 레이더 등의 항해·통신 장비가 망망대해에서 안전한 뱃길 안내를 도와주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최소한의 항해·통신 장비를 탑재하지 않은 선박은 바다에 나아가지 못하게 국제법으로 의무화하고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은 한층 강화되었다.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은 크기와 용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약 10억 원의 항해·통신 장비가 1척의 선박에 탑재된다. 평균 2,000여 척의 선박이 매년 건조되어 약 2조 원의 세계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어선 및 레저선박에서 활용되는 해양 전자장비 시장은 약 1조 원 규모로 형성되고 있다.

 

높은 해외 의존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건조 기술력을 보유하고 조선기자재의 90%를 국산화하였으나 유독 항해·통신 장비분야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산 장비의 품질과 기술력이 우수하지만 외산을 대체하기 어려운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주들은 항해·통신 장비 선택 시 신기술이 적용된 장비보다 선박 탑재 실적이 풍부하여 안정성을 검증받은 장비를 선호한다. 항해 중 장비 고장은 선박 및 선원의 안전 위협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이 검증되고 항구에서 즉시 수리가 가능한 글로벌 A/S 네트워크를 보유한 특정 업체의 장비를 지속해서 고집하는 것이다. 이처럼 충성 고객들로 인해 3~4개의 일본과 유럽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국산 장비는 당장 외산 장비의 브랜드 인지도와 A/S 네트워크를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제품 자체의 우수성을 보유한 것도 많기 때문에 항해·통신 장비의 공동 브랜드화를 통해 시장에 대응한다면 브랜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한다.

둘째, 항해·통신 장비는 국제표준에서 정의한 시뮬레이션 시험시설에서 테스트해야 하지만 국내는 정규화된 시험시설이 없다. 장비 개발업체는 시험을 위해 시험시설을 추가로 구축하거나 해외 시설을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경비와 시험 기간이 추가 소요되는 등 개발 과정에 애로점이 많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9종의 항해·통신 장비를 시험할 수 있는 ‘선박 ICT 장비 기술센터’를 구축 중이며, 이 센터를 통해 상기 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센터는 장비를 개발하는 중소기업들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 및 선급에서 요구하는 시험인증 기능과 기업의 애로사항을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항해·통신 장비 시험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법·제도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셋째, 국내 항해·통신 장비 개발인력이 부족하다. 해당 개발인력은 전기·전자, 소프트웨어 설계 능력뿐만 아니라 해양 환경과 국제해사기구(IMO)의 정책, 4년마다 갱신되는 장비의 국제표준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며 선박 운동 특성과 항해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이처럼 항해·통신 장비 개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전문기술 습득 기회가 필요하지만 열악한 중소기업의 근무환경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전문 개발인력 양성을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즉, 해양 SW, 임베디드 SW, 선박 운동 특성, 국제표준 동향 등 온·오프라인으로 특화된 교육 환경을 개발인력에 제공하면 항해·통신 장비 분야뿐만 아니라 스마트·자율운항 선박 등 고부가가치 해양 IT분야도 선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최근 조선업의 화두는 자율운항 선박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미래시장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자율운항 선박이 주도할 것이므로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유럽과 일본 또한 자율운항 선박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대응하고 있어 우리 또한 한시바삐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수출 규제, 코로나 19로 인한 해외 기업의 셧다운 등 외부 환경에 따라 기자재 수급이 불안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항해·통신 장비 등의 핵심기자재 국산화 등 기술자립화는 필연적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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