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바다의 날’에 바란다
5월 ‘바다의 날’에 바란다
  • 손재학 부경대학교 교수 (전 해수부 차관)
  • 승인 2020.05.0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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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시론을 쓰기에 너무 어수선한 시기이다. 정치이야기도 그렇고, 경제이야기도 그렇고, 사회이야기도 그렇고, 기댈 곳은 그래도 문화이야기인데 요즘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모두 휴관 중이어서 마음 둘 곳을 찾기가 어렵다.

영국의 시인 T.S.앨리엇은 1922년에 발표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황폐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왠지 우리가 직면한 코로나19 상황과도 대비된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 겨울은 따뜻했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렸다.

사실 기후적으로 대한민국의 4월은 이미 잘 녹아있는 대지에 온갖 생명들이 돋아나고 나무 가지가지마다 형형색색 봄꽃의 향연을 벌어지는 계절이다. 계절의 여왕이 5월이어야 하는 이유를 다툴 법도 하다. 이 아름다운 시기에 우리는 바다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년 4월초는 수산인의 날로, 5월말은 바다의 날로 거창한 기념식을 거행하고는 있지만 우리 국민에게 바다는 얼마나 더 가까워졌을까?

지난해(2019)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8명은 해양수산 부문이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해양이 영토 수호와 식량 안보는 물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크게 이바지한다고 평가했다. 국민들은 ‘해양수산’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바다/바닷가’(29.0%), ‘수산물/수산자원’(19.0%), ‘배/선박’(18.0%) 순으로 꼽았다. 또한 국민들은 해양수산 부문에서 ‘수산물 요리, 맛 집’(40.9%)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수한 분야로는 ‘수산물 먹거리 다양성’, 열세인 분야로는 ‘해양 생물종 보호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현재 시급히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는 ‘해양환경 생태계 보호’(34.7%)와 ‘해양재해 대응체계 강화’(31.4%) 순으로 응답했다.

반면, 지난해 부경대학교가 실시한 한국인의 바다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바다 안보와 정책에 대한 국민의식이 갈수록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양수산 정책 평가 및 순응도를 나타내는 정책지수가 100점 만점에 53.1점으로 낮았으며, ‘수산물 안전 관련 제도 강화가 필요하다’ 응답자가 68.5%, ‘해양환경 보호를 위해 적극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62.0%로 나타났다. 또한 수산물 음식 선호도, 섭취 필요성, 만족도를 나타내는 먹거리지수도 51.4점에 불과하였으며, 수산물의 ‘건강’(62.1점)과 ‘맛’(61.5점) 측면에서는 비교적 높이 평가되었으나, ‘가격 경쟁력’(54.7점)과 ‘안전’ 측면(55.1점)에서는 낮게 평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쉬운 것은 올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수산인의 날’(매년 4월 1일) 행사가 취소되었고, ‘바다의 날’(매년 5월 30일) 행사도 개최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물론 행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행사를 통하여 우리 해양수산계의 현안을 알리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국가 권력자로부터의 메시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7일에는 ‘판문점 선언’ 2주년을 계기로 동해북부선(강릉∼제진 구간 복원) 추진 기념식이 열렸다. 이 행사와 관련, 문 대통령은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갈 것”이라며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동해선과 경의선 연결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판문점 선언’과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로 합의한 것인데 한강하구 조사 이외에 더 이상 진전이 없고, 메시지도 없다.

최근(2020년 1분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실시한 ‘통일여론조사’에서 남북관계 역점 추진과제로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최우선해야 한다고 나타난 것은, 2018년 KMI에 의한 ‘남북협력 국민인식조사’와 비슷한 인식을 보이고 있으나, 다만 철도·도로·항만 중 항만이 보이지 않는다. 동해북부선 추진 기념식에 참석한 통일부 장관이 기념사에서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중심축 중 하나인 환동해 경제권이 완성돼 대륙과 해양을 잇는 동해안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한 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국제보존협회가 매년 전 세계 221개 연안 국가를 대상으로 해양발전의 종합적인 잠재력을 평가해 발표하는 해양건강성 지수를 보면 지난해 북한은 212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우리나라는 85위). 향후 5년 동안 전 지구의 해양발전 잠재력은 현재보다 6% 상승하겠지만, 북한은 8%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고, 북한의 낮은 해양발전 잠재력은 미래에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KMI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향후 북한이 남한의 30% 정도로 해양 역량을 강화할 경우 남북한의 해양력이 세계 5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해양수산 투자는 국가해양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남북한 공동 경제 협력이 추후 우리나라의 해양 역량 강화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4월이 지나가고 5월을 맞은 작금의 상황은 우리 해양수산계가 더욱 힘을 내야할 때이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미래를 전망하고 설계해 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판문점 선언’ 이후, 여기저기서 남북 해양수산 협력의 과제들을 제안하면서 우선순위도 정하는 등 많은 관심과 노력이 있었지만, 남북 관계는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명분과 실리에 입각한 호혜적인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부디 올해 ‘바다의 날’에는 반가운 메시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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