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14] 폭풍 때 귀항명령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14] 폭풍 때 귀항명령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 김한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0.05.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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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항명령 위반 사건

<열네 번째 여행의 시작>

김한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김한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현대해양] 바다는 육지보다 사납고 거칩니다. 법은 이런 바다에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육지에서보다 많은 제약을 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배를 나가지 못하게 하거나, 나갔던 배도 돌아오게 하고, 심지어는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형사처벌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형사처벌을 하는 법률 규정들은 또 다른 법률 규정까지 함께 보아야만 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예를 들어 수산업법 제97조 제1항 제2호는 41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 제42조 또는 제57조 제1항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아니하거나 등록을 하지 아니하고 수산업을 경영한 자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만으로는 41, 42, 57조에 따른 허가나 등록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므로 결국 제41조나 제42조 또는 제57조를 다시 확인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법률 문장만으로 어떤 행위를 처벌하는지를 규정할 수 없다 보니, 두 개 또는 세 개, 많게는 다른 법률들까지 넘나들면서 확인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행위를 벌하는지가 불분명해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런 법률의 숙명과도 같은 복잡성 내지 불명확성으로 인해 대법원까지 진행된 형사사건하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사건에서 A1985. 12. 8. ㅇㅇ항 동북방 약 20마일 해상에서 ㅇㅇ호에 승선하여 다른 선박 3척과 함께 선단을 편성하고 조업을 하였습니다. 이후 어업무선국으로부터 폭풍주의보가 내렸으니 귀항하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선박 3척은 ㅇㅇ항으로 입항하였는데도 A는 입항하지 않고 단독으로 조업을 하였습니다. 과연 A는 귀항명령 위반으로 처벌되었을까요?

 

<쟁점>

수산업법상 벌칙규정과 함께 기재된 적용규정은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요?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1988. 8. 9. 선고 861582 판결>

() 수산업법 제20조 제1항 제4, 90조 제1호 등의 규정에 의하면 어업의 면허 또는 허가를 받은 자가 수산업법 또는 같은 법에 의한 명령, 처분, 제한이나 조건에 위반한 것만으로는 같은 법 제90조 제1호의 벌칙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같은 법 제20조 제1항 제4호의 규정에 의하여 행정관청으로부터 위 명령, 처분, 제한이나 조건의 위반을 이유로 어업의 제한, 정지, 어선의 계류 등 처분을 받은 다음 다시 이러한 처분에 위반한 경우에 비로소 같은 법 제90조 제1호의 법칙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

 

<판결의 의의>

구 수산업법 제90조 제1호는 15, 20조 제1·1·3호 내지 제5, 46조 또는 제65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제한·정지 또는 계류처분에 위반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역시 이 벌칙규정만으로는 어떤 제한이나 정지 또는 계류처분을 위반하면 처벌되는지가 명확하지가 않아 다시 15, 20, 46조 또는 제65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제20조 제1항 제4호였는데 당시 해당 규정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20(공익상 필요에 의한 어업의 제한등)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할 때에는 행정관청은 면허·허가 또는 신고한 어업의 제한·폐지, 어선의 계류, 어업의 면허 또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4. 어업의 면허 또는 허가를 받은 자가 이 법 또는 이 법에 의한 명령·처분·제한이나 조건에 위반한 때

 

, 구 수산업법 제20조 제1항 제4호는, 수산업법에 따른 처분이나 제한에 위반을 하면(위 제4호의 해석), 그 위반(위 제1항에서 다음 각호의 1에 해당’)으로 인해 다시 어업을 제한, 폐지하거나 계류처분을 할 수 있다(위 제1)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수산업법에 따른 제한, 처분에 위반하면 다시 어업을 제한, 계류처분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제한’, ‘처분이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되는 것입니다.

결국 앞의 제한이나 처분은 수산업법상 내려진 1차적 제한 내지 처분을 의미하고, 뒤의 제한이나 처분은 그러한 1차적 제한 내지 처분을 위반하면 다시 내려지는 2차적 제한 내지 처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데, 다시 벌칙규정인 구 수산업법 제90조 제1호를 보면 20조 제1항 제4호의 규정에 의한 제한·정지 또는 계류처분에 위반한 자를 처벌하게 되어 있으므로, ‘20조 제1항 제4호의 제한 또는 처분이 무엇인지가 또 다시 문제됩니다.

분명 제20조 제1항 제4호란 ‘4. 어업의 면허 또는 허가를 받은 자가 이 법 또는 이 법에 의한 명령·처분·제한이나 조건에 위반한 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벌칙규정상 제한 또는 처분은 바로 이 수산업법상 내려진 ‘1차적 제한 내지 처분을 의미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러나 법은 일반적으로 해당 법률에 따른 1차적 제한 내지 처분을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위와 같이 20조 제1항 제4를 위반하면 처벌한다와 같이 재인용을 하지 않고, 바로 이 법 또는 이 법에 의한 명령·처분·제한이나 조건에 위반한 때형사처벌한다는 식으로 직접 규정을 하게 됩니다.

대법원 역시 같은 취지로 해석하면서 귀항명령 위반에 대하여 구 수산업법 제20조 제1항 제4호의 규정에 의한 어업의 제한, 정지 또는 계류처분을 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위 귀항명령 위반에 대하여 곧바로 같은 법 제90조 제1호의 벌칙규정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열네 번째 여행을 마치며>

얼핏 보면 구 수산업법 제20조 제1항 제4호의 제한 또는 처분은 정확히 그 제4호에 규정된 제한 또는 처분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법을 만들어내는 기법과 관행, 우리 법원이 쌓아온 법률의 해석 방식들을 종합해 보면 위 대법원의 판결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렇듯 조문을 위 아래로 옮겨 다니면서 하는 법률의 해석은 쉽지 않은 면이 있어 A는 기소가 되었지만 다행히 법원에서 무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A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처분으로 어업면허나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폭풍주의보에 귀항명령이 내려진 것은 A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법이 하는 보호이므로 꼭 따라야 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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