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이 가야 할 길
선장이 가야 할 길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4.05.09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버큰헤드 함 병사들의 장렬한 최후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빨리 잊어버리자. 세월호라는 이름과 그 배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다. 그들이야말로 악마요, 지엄한 법의 잣대로 처단되어야 할 살인자들이다.

젊은 시절 외항선 선장을 한 필자는 도무지 치밀어 오르는 울분과 부끄러움을 억제할 수 없었다. 자기희생으로 승객의 안전을 도모하여야 할 선장과 승조원들이 책무를 저버리고 맨 먼저 도망친 야만적 행위를 보고 나서다.

보도가 이어지는 동안 필자는 50여 년 전 미래 선장을 꿈꾸며 해기사 교육과정을 밟고 있던 지난날을 몇 번이나 떠올렸다.

처음 바다를 배우던 중 선원법(船員法) 가운데 11조 ‘선장의 재선의무(在船義務)’ 조항에서 이런 구절을 목격했다.

- 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

문장이 다소 난삽한 것은 법조문 그대로를 인용한 탓이다.

이어서 교수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아 주었다.
“이를 달리 ‘최후 이선(離船)의 의무’라고도 한다. 만약 자신이 지휘하는 선박이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면 선장은 마지막 한 사람의 퇴선까지 확인한 다음에라야 비로소 배를 떠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여객선 경우 수백 내지는 수천 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는 만큼 모두 퇴선하기까지는 실로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이므로 따라서 선장은 살아남을 생각일랑은 아예 접고 선체와 함께 장렬히 침몰하라는 뜻에 다름 아니라고 겁을 주었다.

아직 바다가 뭔지의 정체도 모르던 필자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다면 내가 탄 배가 가라앉을 때는 미련 없이 죽으라는 말 아닌가. 그 순간의 충격을 필자는 항해하는 동안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교수는 그 역사적인 사례로,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인근에서 좌초로 침몰한 버큰헤드 함(1852년)과 타이타닉 호(1912년)를 들었다.

타이타닉 호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그 화면을 통해 스미스 선장의 최후를 기억하고 있지만, 특히 버큰헤드 함장인 세튼 대령의 장렬한 마지막 모습은 지금까지도 세계 선장들이 귀감(龜鑑)으로 여기고 있는 시맨쉽(Seamanship)의 전형이면서, 전통적으로 약자(弱者)를 배려하는 영국사상 ‘버큰헤드 정신’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을 정도다.

당시 버큰헤드 함에는 해군에 더하여 육군 보병대원 등 472명의 군인에다 호주로 이주하는 162명의 일반승객이 혼승해 있었다. 그런데 배가 침몰 위기에 처했을 때 함에는 각각 60명씩이 한계인 구명보트가 세 척뿐이어서 전원이 퇴선하기에는 절대부족인 형편이었다.

순간 함장이 전 병사들을 갑판에 집합시킨 다음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조국과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한 군인이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퇴선은 어린아이와 부녀자가 먼저니 그에 합당한 행동을 보이도록 하라!”

그 명령에 거역한 병사는 하나도 없었고, 일반승객을 도와 질서정연하게 퇴선을 이끌었다.
일반승객의 퇴함이 끝났을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여기 몇 사람이 더 탈 수 있소!”

그러자 함장이 소리쳤다.
“됐소! 그대로 떠나시오! 그 보트에 병사들이 탈 공간은 없소!”

함장이 거수경례를 붙이자 모든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고, 다음 순간 거대한 함체는 400명도 넘는 병사들과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 <로드 짐>에서도 사관의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배가 낡아 침수가 시작되자 선장을 비롯한 사관들은 승객을 내버린 채 구명보트로 도망쳤는데, 그 배를 육군장교가 무사히 끌고 가면서 도망친 사관들은 모두 해난심판에 회부되어 형사상 심판 말고도 다시는 배를 탈 수 없는 자격정지의 혹독한 처벌을 받는다.

무책임한 언론의 보도태도

그런데 군인도 아닌 고등학교 수학여행단 등 수백 명의 승객을 객실에 가둬둔 채 세월호 선장은 맨 먼저 도망을 쳤다. 따라서 그 선장은 앞서의 선원법 11조 말고도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는 인명, 선박, 화물 순으로 필요한 구조 수단을 다하여야 한다’는 12조 ‘선박 위험시에 있어서의 선장의 조치’ 조항까지 현저히 위배한 것이 된다. 그는 더욱 항해학의 기본 상식 말고도 ‘선박직원법’과 ‘선박안전법’ 등 관련 모든 법규를 위배하는 희대의 살인자 반열에 든다. 그래서 필자는 세월호 경우를 보고 예전 젊은 시절, 30여 명의 선원들과 함께 온갖 풍파 휘몰아치던 세계의 바다를 누빈 당시를 회고하며 부끄러움에 몸을 떠는 것이다.

며칠이나 이어진 방송이나 신문보도에도 문제가 많았다. 방송을 보면 이 나라에는 해설가와 평론가 등 전문가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첫날 등장한 어느 전문가(?)는 처음부터 사고 원인이 좌초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좌초라는 사고는 수중에 암초 등의 장애물이 있거나 아주 얕은 사주(砂洲)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가령 평생 그물을 끌어온 어민들의 증언이나 해도(海圖)에 의하더라도 그 해역에는 어떤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음에도 그 전문가 주장은 전파를 탔다. 만약 사고가 암초에 의한 것이었다면, 빙괴에 의해 우현 뱃전이 종잇장처럼 찢겨져나간 타이타닉 호처럼 세월호 역시 배 밑바닥이 흉하게 망가져 있어야 옳은 일 아닌가.

이참에 해양용어(海洋用語)의 무책임한 오용(誤用)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 나흘째인 19일, C일보는 5면에서 주먹만한 활자로 ‘세월호 의문의 전타(全舵)’라는 제목을 달았다. 전타란 배의 침로 변경을 위해 타(舵 ; Wheel)을 돌리는 것(轉)을 말하고, 영어로는 ‘휠링(Wheeling)’이라 한다. 그럼에도 ‘全舵’와 ‘힐링’ 등 당치도 않은 용어가 춤을 추었다.

어느 방송은 도망친 선장 등 사관들을 육법전서에 존재하지도 않는 ‘어선법에 의해 처벌한다’라는 당치도 않은 자막을 달았고(정확히는 선원법이다), 다른 방송은 ‘추천항로’라는 용어는 놔두고 ‘권고항로’라는 말을 무수히 반복했다. 경사(傾斜)면 경사지, 또 ‘외방경사’는 무언가. 게다가 사전에도 없는 낯선 용어 ‘선박직’에 이르면 까무러칠 지경이 된다. 이의 정확한 용어는 ‘선박직원’ 혹은 ‘승조원’임을 왜 모를까. 그 모든 혼란은 너무 나서기 좋아하는 전문가(?)들과 무책임한 방송인들에 의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침몰선 인양은 물론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 달도 더 걸리리라는 당국의 예상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아직도 몇몇 생존자들이 에어포켓의 의지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