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불법·탈법사회의 비극
편법·불법·탈법사회의 비극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4.05.09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성욱 본지 발행인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태산과 같은 슬픔이 가슴을 쩌 누르고
강물과 같은 눈물이 가슴에 넘칠지라도
그 슬픔과 눈물이 꽃이 되기까지는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타오르는 분노, 온 몸을 태우는 노여움이
우리들의 오장육부를 콕콕 찌르고
뼈속 깊이 아픔이 스며들지라도
그 분노와 노여움이 산이 되기까지는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슬퍼할 때가 아니다. 아무리 괴로움이
우리의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이 뒤집혀
하늘이 캄캄해 질지라도
그 괴로움과 슬픔이 사랑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참고 견디어야 할 오늘의 고통.
우박과 폭풍우 밑으로 가는
그 피아픈 수난의 땅 위에 엎디어
온몸으로 포복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아,
진정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슬픔은 슬퍼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진실이 되고 신앙이 되고
향기 고이는 자양이 되는 것.
뜨거운 분노가 기도가 되기까지는
모아 쥔 두 개의 상처 난 손이 십자가가 되기 까지는
결코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슬퍼할 동안만큼 아직 더 살아 있을
너와 나의 뜨거운 애증을 안고
천 겹 미움의 껍질 벗기고 벗기어
증오가 보다 큰 사랑이 되기까지는
너와 나의 가슴이 하나가 되기까지는

아직은 슬퍼하지 않는
오! 보다 큰 분노여.
모진 아픔이여.
 

 <민중시인 문병란(1935년 전남 화순생)>

국가개조, 국민의식 개조의 계기로 삼자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허망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로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가 ? 왜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자라나는 젊은이들까지 이렇게 희생되어야만 하는것인가 ? 생때같은 자식을 차가운 바닷속에 뭍어야만 하는 이 엄청난 슬픔을 어떻게 치유해야 한다는 말인가 ?

국민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국민의 생명과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해야할 가치가 없다. 돈만 보고 자라온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우리 자신의 등짝에 스스로 비수를 꽂는 폐악으로 다가왔다. 돈만 벌면 그만이고,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이 참담하고 탐욕스런 세상에서 희망을 찾고, 사랑을 찾고, 배려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짓이다. 돈이 종교가 되어버린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돈이 종교가 되어버린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 질 수가 없다. 고속성장, 일등제일주의가 불러온 물질만능, 인간성 상실이라는 폐해가 우리 모두를 씻을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인문학이 시들고, 철학이 죽고, 문화가 병든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릿광대의어리석은 짓거리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슬픔의 나락에 빠져 분노와 자학(自虐)으로 가슴만 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다 함께 일어서자. 죄인의 심정으로 다시 시작하자. 일류국가, 존경받는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 속죄(贖罪)의 길로 나서자. 그 길이 진도 앞바다에서 억울하게 꽃잎을 떨군 어린 학생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요,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속죄의 길이다. 안전한 국가, 행복한 국민으로 새롭게 탄생하기 위한 국가 개조, 나아가서는 국민의식 개조작업에 나서는 일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죄인들에게 주어진 최후의 과제임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것이 내 탓, 의인(義人)들의 희생 잊지 말아야

지금 우리는 슬픔에만 잠겨, 정치를 탓하고 시대를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온 국민이 죄인이 되어 무기력증(無氣力症)에 빠져드는 집단자학(集團自虐)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슬픔이 분노로, 또다시 분노가 자기학대로 이어지는 사회적 트라우마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한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우리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진혼(鎭魂)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이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들은 그동안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우리 자식들을 올곧게 키우기 위해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는지, 사회적 규범에 따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자신의 사욕(私慾)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세월호 선장과 잘못을 저지른 모든 범죄자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내 탓이오’를 외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2014년 4월16일은 대한민국 국치일(國恥日)이다.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응분의 죄값을 받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단계별로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뿐만아니라 대한민국의 안위가 걸린 위기관리체계에 대한 엄중한 분석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이야 말로 나라를 바로 세우는 구국(救國)의 결단을 해야 할 때다. 대통령만의 결단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 모두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이제 검찰과 경찰의 수사의 칼끝이 세월호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를 비롯한 회사 관계자로부터 정부관계기관의 ‘비정상적 관행’으로 까지 확대되고 있다. 학연(學緣) 지연(地緣)으로 얼룩졌던 해양수산부 산하 해사(海事)관련 기관도 수사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동안 인사독점, 먹이사슬로 형성된 ‘봐주기식 행정’에도 철퇴를 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낡아빠진 세월호를 수입하고, 보수하고, 증축하고, 운항하고, 그리고 마침내 침몰하면서 살인적 범죄까지 저질렀던 일체의 과정을 조사함으로써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편법, 불법, 탈법과 극단적 이기주의를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2014년 4월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영혼들에게 참회하는 길임을 다시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차고 어두운 맹골도 앞바다에서 오늘도 목숨을 걸고 생존자를 찾아 물속으로 뛰어드는 의인들의 희생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린 제자에게 구명복을 벗어주고 스스로 희생된 선생님의 유훈을 잊어서도 안된다. 조난현장으로 맨먼저 달려가 인명구조에 헌신했던 우리 어민들과 생업을 포기한 채 밤바다를 밝히는 오징어잡이 어선과 트롤어선, 그리고 유가족들을 내 가족처럼 돌보는 시민들의 헌신적 봉사활동을 사회적 귀감으로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다시 일어서자. 경제대국에 걸맞는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온 국민이 떨쳐 일어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