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㉖ LA 인터네셔널 에어포트
하동현의 양망일기 ㉖ LA 인터네셔널 에어포트
  • 하동현 소설가
  • 승인 2020.04.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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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엉망진창 위선적인 편력과 성추문 때문에 막장으로 추락해버린 문제적(?) 노 시인. 한참 옛날 이 양반이 방송에서 들려준 일화가 있다.

젊은 날 ‘살아있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항구도시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했고, 그를 구조한 어느 일본선장이 ‘항구는 죽는 곳이 아니라 떠나는 곳이다’라는 말을 들려줬다던가.

피식 웃음이 난다. 상당히 멋있게 들렸었는데 그의 이중적 행태가 겹치면서 그저 현학적으로 언어를 다루는 기발한 재능으로만 읽힌다.

기능적인 표현만이라면 항구와 공항은 단지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해야하는 끈질긴 검문과 감시,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확인하는 집요한 질문이 이어지는 곳.

코로나 바이러스로 몇 번이고 연기되었다가 겨우 스케줄이 잡힌 국제옵서버 동기를 배웅하러 공항에 들렀다. 썰렁하다. 70년대 유행했던 번안가요 ‘이별의 국제공항’이 떠오른다. 원곡은 ‘LA International Airport’.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친과 헤어져 눈물을 감추고 보잉 747로 이륙하는 과정을 그린 가사다.

시대가 너무 달라 약간 촌스러운(?) 뮤직비디오에서, 이제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가수 Susan Raye는 영락없는 시골여교사 이미지다. 순박한 표정에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진지하게 노래한다. 애달픈 이별을 담은 가사지만 가볍고 경쾌한 컨트리풍 리듬을 흥얼거려본다.

LA International Airport

Where the big jet engines roar

LA International Airport

I won't see him anymore.

-LA국제공항, 귓전을 울리는 제트 엔진소리,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네.

현역시절 내가 올라야 할 배로 향하던 비행의 기억들이 함께 떠오른다. 기억의 저편에서 두 여자가 걸어 나온다. LA공항에서였다. 스쳐가듯 아주 짧았던 마주침, 모국어와 외국어가 뒤섞였던 애잔한 기억들이.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로 가는 비행에서 마주친 스리랑카 여자와의 기억. 졸작(拙作) ‘아디오스 땅고(Adios Tango, 탱고여 안녕)’라는 소설에 끼워 넣었던 부분인데, 앞 뒤 차포 다 떼버리고 만남 부분만 잘라내 본다.

(중략) LA국제공항, 대합실에 퍼져앉아 흡연구역으로 왔다갔다 두 시간 남은 환승 대기 시간을 뭉개고 있을 때였다. 나그네는 나그네를 알아보는 법이다. 몇 번 눈이 마주쳤던 갈색 피부에 세련된 청바지차림의 인도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틸라카(Tilaka : 이마의 선홍색 표식)는 없었다. 왜소한 몸집에 영어가 유창했다.

“……실례지만 담배 한 대 얻을 수 있겠는가?”

개방된 서양여자도 아니고 동양여자가 웬 담배. 조금은 의아스러워하며 담배를 건넸다. 흡연구역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이 여자는 우울한 표정으로 내 곁에 앉았다.

언제나 나그네는 나그네에게 묻는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당신은 누구인가. 말문이 터졌다. 수랑그니, 스리랑카 여자였다. 호주 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윤택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대학을 미국에서 유학으로 마칠 만큼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으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후 가세가 형편없이 기울어 곡절 끝에 지금 하우스키퍼(Housekeeper)로 팔려간다네.

말이 좋아 하우스키퍼지 식모나 가정부 수준이 맞는 말일 것이다. 아마도 이 여자는 세상천지 어느 외딴 곳에 훌쩍 던져져있는 지금의 상황과, 결코 다시는 만날 일 없을 뱃놈 아저씨의 방랑의 냄새가 묻어나는 분위기에 경도되어,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사연을 열어 보이는 것이리라.

여자는 ‘빛나는 섬’이라는 스리랑카의 어원, 그리고 조국의 아름다움과 인연과 윤회를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의 우월성을 말했다.

나는 이 막내동생뻘 여자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젊은 날을 다 바쳤던 바다와 줄기차게 이어지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 인생은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라고. 우리를 두고 뒤틀린 것들을 향해 무심히 파도 속에서처럼 출렁거리며 가는 것이라고.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신이 내게 주신 운명…….

총명한 여자였지만 몰락과 다름 아닌 타국 땅에서의 식모살이 밥벌이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 잘난 운명을 겸허히 수용하겠노라 당당한척 또박또박 말하는 여자가 안쓰러웠다. 허공에 눈을 주고, 저는 영어가 능통해 보수를 더 받는다는 말을 할 때는 젊은 여자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련했다.

탑승시간이었다. 남은 담배 반 갑을 쥐어주고 일어서야 했다. 그녀는 고개 숙여 공손히 인사하며 신의 가호를 빌어줬다. 당분간 호주에서는 이런 동양식 인사를 할 기회는 드물 것이리라. 나는 환승 트랩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래, 나도 기도해주마. 얼굴의 반을 덮을 것 같은, 촉촉이 젖은 큰 눈을 가진 아가씨야. 운명은 거역하는 자 질질 끌고 가고 순응하는 자 편안히 태우고 간다했거니, 너에게 주어진 운명을 잘 추슬러라. 이제 나도 내 갈 길을 가마.

여태 나는 방랑의 길, 파도와 바다 위를 떠다녔고 목적지는 언제나 바뀌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다시 새로운 바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체도 없는 바람이 되어 떠돌고 싶었던 젊은 날, 뛰거나 걸어서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대한 동경으로 가슴앓이 했던 그 바다가. (하략)

 뒤엣것은 아르헨티나로 가던 여정에서 마주친 한국인 수녀님과의 기억이다.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야하는 머나먼 여정에 먼저 LA에 도착한다.

아니나 다를까 TWOV(Transit without Visa, 무비자 환승), 밀입국방지차원에서 다른 목적지로 가는 경유승객들을 격리호송 한단다. 네 시간이다.

우리 팀(?)은 나포함 다섯 명, 남편만 미국비자가 있어 생이별이 된 새댁, 한국인 촌에서만 살아 스페인어를 아예 못한다는 나이 드신 칠레 이민자 부부, 그리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생각나게 하는 젊고 예쁜 수녀 한 분.

수녀님은 피난보따리 같은 짐이 세 덩어리다. 하나가 굴러 떨어져 내 수레에 옮겨 실어주자 미안한지 희미하게 웃으며 묻지도 않은 말씀을 한다.

-고맙습니다. 멕시코 빈민촌 아이들에게 쓸 구호약품들입니다.

이런 우연이 있나. 중남미 이민자출신이 분명한 콧수염 호송경호원이 새댁과 수녀님 이름이 같아 ‘미경 윤’과 ‘미경 박’이 헷갈렸다. ‘JORGE’ 어쩌고 되어있는 명찰을 보고 스페인어로 ‘호르헤’라 부르며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일러줘야 했다.

당분간 달러 쓸 일도 없을 터, 남은 돈으로 콜라 한잔씩 돌리고 나니 10달러 지폐와 동전 몇 닢이 남았다. 지켜보던 경호원이 히죽거리며 저에게 줄 수 없겠냐 한다. 아메리카의 어두운 단면이여, 이 녀석 또한 부국의 그늘아래 눈물 젖은 빵을 씹고 있구나. 에라, 너 가져라.

머뭇거리던 수녀님이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한인 성당으로 LA에는 무사히 도착했고 곧 환승할거라는 연락을 드리고 싶단다. 공중전화를 넣었으나 응답이 없었다. 준 게 있으니 오는 것도 있는 법, 뇌물(?) 먹은 경호원 녀석이 눈을 껌벅대더니 나중에 자신이 그 내용으로 연락을 취해주겠단다.

산더미 짐에다 전화는 불통이지, 편치 않은 낯빛의 그녀가 안 돼 보여 말문을 열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런데서 마주친 사람들은 결코 다시 만날 일 없이 스쳐가는 존재에게 쉬 마음을 여는 경향이 있다. 그녀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 물었다. 바다에 뼈를 묻은 뱃놈이라 대답했다. 바다라면 무조건 위험한 곳인 줄로만 알았던지 눈빛에 측은함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해외비행이 난생 처음이란다. 노가다 복장에 텁석부리인 내가 편했을까, 굳었던 표정을 풀고 초급 스페인어 교본을 펼치며 인사말이라도 몇자 가르쳐 달란다. 꽃다운 나이에 어쩌자고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오지로 떠날까. 대화상대는 나였지만, 시선을 피하며 자신을 향한 다짐처럼 나직이 말했다.

-제가 원했습니다. 아이들 사진을 보니 눈이 너무 맑아서, ……그리고 멀리 떠나면 세속이 쉬 잊혀 질까봐서요.

아직 어린 여자다. 이것 보시오, 우리가 잊고자 애쓰는 것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이며, 아이들 눈은 세상 어디에 가나 모두 다 맑습니다. 나는 혼잣말을 속으로 삼켰다.

-3년간입니다만 교대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더 길어 질수도 있겠지요. 아마 더 걸릴 걸로 생각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봉사하기로 했으니 이러한 기회를 주심에 감사해야지요.

어여뻐라. 하지만 나이 드신 마더 테레사의 사진과 이 젊고 어여쁜 수녀님을 오버 랩 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잿빛 제복으로 몸을 가리고 있지만, 불손한 내 눈에는 그저 표정이 수시로 바뀌는 막내동생뻘 아가씨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스페인어 교본을 펼쳤다. ‘베사 메 무쵸’는 ‘리라 꽃 지던 밤’ 나발이 아니라 ‘Kiss Me Much’임을 말해주고, 예쁘다는 형용사는 남자애(치코)에게는 ‘보니토’ 여자애(치카)는 ‘보니타’ 까지. 따라 발음하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왠지 안쓰럽기도 하다.

거기 까지만 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내 딴에 뭔가 울컥 했던지 본데없는 뱃놈 아니랄까 불쑥 밑도 끝도 없이, 어쩌자고 성직의 길을 택했으며 그러한 결심을 하기 까지 마음의 갈등이 없었냐는 개떡 같은 물음을 내 뱉고 말았을까. 곧바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질문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대답이 없었다. 한참 후에,

……운명이겠지요.

그야말로 모범답안이다. 갑자기 이 여자도 그렇게 어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운명이다, 이것은 그녀가 선택한 운명이리라.

-선생님, 아니 선장님도 바다가 운명 아닌가요?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이 말도 쓸쓸한 독백체로 들렸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스케줄에 따라 나를 남겨두고 모두 먼저 떠나야한다. 지루해 졸고 있는 경호원 녀석을 깨웠다. 녀석은 내가 수녀님 짐을 환승트랩까지 끌어다 주는 것도 흔쾌히 허락해줬다.

잠깐이지만 마음을 열어보였던 나에게, 이것도 이별이랍시고 이 마음 약한 수녀님은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몸조심하시라고, 후에 가족의 품안에서 행복하시라고 몇 번이고 손을 흔들며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제트엔진 소리에 휩싸인 활주로를 내려다보며, 흡연구역에서 두 시간 넘게 참았던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항구와 공항, 쉴 새 없이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온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박 미경 수녀님. 이 뱃놈 아저씨도 기도드릴 테니 가시는 걸음 닫는 손길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마더 테레사에 버금가는 희생과 사랑을 베풂으로 훗날 그대가 선택한 운명을 주님으로부터 보상받기를.

오래됐지만 선명한 기억들이다. 그때 그녀들은 나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나는 동행(同行)들이 아니었을까.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세상에 우리를 있게 한 인연들로부터 멀어지는 길에서였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과 주어진 운명 때문에, 언제나 두렵고도 먼, 알 수 없는 세상으로 항해하는 뱃길 위에서의 만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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