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야 끝나는 것
느리더라도 마라톤처럼 완주하는 것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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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종면 기자
  • 승인 2014.05.08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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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현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

악바리처럼 8년 승선한 1급 항해사

▲ 조소현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
우리나라가 지난해 11월말 영국 런던 국제해사기구(IMO) 본부에서 열린 이사국 선거에서 최상위 10개국이 포함되는 A그룹 이사국에 선출됐다. ‘7연속 A그룹 이사국 진출’이라는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 중심에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조소현 교수가 있었다. 조 교수는 IMO 회의 한국 대표 민간자문단 자격으로 함께 했던 것.

조 교수는 이 행사에 앞서 지난해 3월 부산서 열린 IMO 주관 여성 해기사 국제 컨퍼런스의 한국 측 컨설턴트로도 활약했었다. 국적 해기사 중 현재 관련 업계에서 활약하는 여성의 수는 1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조 교수처럼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해기사 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국내 해운업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조 교수는 경력 8년의 외항상선 1급 항해사이자 선장 면허를 갖춘 고급 해양인력이다. 그러나 그녀가 인정받는 전문인력이 되기까지 항로는 매우 험난했다. 3항사 때는 워낙 실수를 많이 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여자로 보이기를 거부할 정도였다. 머리도 남자들보다 더 짧게 깎고 이를 깨물고 악바리로 살았다. 색조화장 같은 건 처음부터 생각도 안 했다. 

긴 항해를 마치고 교수로 변신한 그녀는 생생한 실전 경험을 토대로 해기사 양성은 물론 국제협약, 여성 해기사의 해상진출을 위한 국제기구의 역량강화와 전략개발 등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해기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떤 계기였나?

선박운항자동시스템학과에 진학은 했지만 사실 당시 정보가 부족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바다가 좋았고 사춘기 때 집에서 떨어져 독립하고 싶었다. 학비가 들지 않고 해양과 관련, 취업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등 막연한 기대와 창피한 얘기지만, 관심 있던 남학생과 CC(캠퍼스 커플)을 꿈꾸며 해양대에 진학하게 됐다.

학교생활이 힘들었을 텐데 후회한 적은 없나?

1~2학년 때 회의가 많았고 방황도 많이 했다.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다 3학년 1학기 때 실습선 타고 실습 나가면서 해기사의 매력을 느꼈다. ‘괜찮네, 해볼 만하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성인으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성취감도 얻었다.

남성 해기사 사이에서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일하는데 남녀 차이는 없었다. 화물 점검, 선창 손상유무 확인, 선창 소재 등을 위해 수십 미터 높이의 선창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곤 했다. 남성 해기사들과 똑같이 당직 서고 하루 3교대로 근무했다.

여자여서 힘들었다기보다 실수를 많이 해서 힘들었다. 3항사 첫 항해 때 에어 드래프트(air draft) 조정 위해 화물창에 물을 채우는데 굴삭기가 빠져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물을 채우는 바람에 대형사고가 났다. 이 때문에 침수 굴삭기, 굴삭기 기사 휴업손해금 등을 보상해야 했다. 사고 책임으로 1항사가 직위해제 되기도 했다. 너무 미안하고 민망했다.

▲ 조소현 교수는 1999년에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후 거양해운에서 3항사로 시작해 거양을 흡수한 한진해운에서 세계 각국을 다니며 다양한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등을 탔다. 오랜 승선 경험을 바탕으로 해양수산연수원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는 조 교수는 한국해양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세계해사대학교(WMU)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크고 작은 실수는 어떻게 극복했나?

굴삭기 침수사고를 계기로 머리를 짧게 깎았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는 것 밖에 없었다. 자꾸 사고가 나니까 오기와 경쟁심이 생겼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3항사 때는 휴가도 안 가고 18개월간 배를 탔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실수를 했지만 더 열심히 해서 2항사, 1항사 승진이 빨랐다.

사고 책임을 지고 물러난 윗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사고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사고의 위험은 늘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던 같다.

선장까지도 할 수 있었는데 왜 계속 배를 타지 않았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좀 더 전문적인 해양인력이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다 동기를 통해 해양수산연수원에서 교관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인재상이 국제협약과 IMO 등에 관심이 많고 풍부한 승선경험을 갖춘 여성해기사여서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하고 지원했다.

지금도 배를 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만날 때마다 배 타러 가자고 하는 해운사 간부가 있는데 그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

연수원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해기사 및 선원 양성과 재교육을 한다. 면허 재취득 3급 이상 항해, 필기시험면제 4,5급 항해, 외항상선 3급 해기사 양성, 내항상선 5급 해기사 양성 등 다양한 과정에, 1일부터 수개월까지 다양한 기간, 다양한 교육생들을 지도한다. 교육과목이 상선을 전문으로 한 선박보안, 화물취급, 해상보험, 해운실무, 선박 복원성 등인데 모두 경험을 토대로 지도할 수 있어 생생한 교육이 되고 있다. 

앞으로 하고픈 일은?

요즘 여성 해기사의 해상진출을 위한 국제기구의 역량강화와 전략개발에 관심을 두고 이와 관련된 논문을 IMO 등 국제사회에 발표하고 있다. 내가 할 일은 여성 해기사를 양성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느리더라도 마라톤이라 생각하고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될 수 있나를 생각하며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가길 바란다.

세계 150만 명의 해기사 중 여성 해기사는 단 1~2% 정도다. 향후 세계적으로 해기사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여성의 해운산업 참여가 절실하다. 해기사야말로 남녀 차이 없는 훌륭한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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