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보트 어항 슬립웨이(slipway) 이용에 어업인과 갈등 고조
레저보트 어항 슬립웨이(slipway) 이용에 어업인과 갈등 고조
  • 최정훈 기자
  • 승인 2020.03.2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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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인들, 어항의 본질 훼손해선 안 돼
▲ 트레일러 위 탑재된 레저보트
▲ 트레일러 위 탑재된 레저보트

[현대해양] 개인용 레저보트 소유주들이 늘어나면서 보트를 내릴 수 있는 어항·포구을 찾는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기존 어항을 이용하던 어업인들과 마찰이 불거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손을 못 쓰고 있어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부쩍 늘어난 자가 레저보트

레저보트란 해양레저 활동에 이용되는 보트를 통칭하는데 몇백만원대 고무보트에서 몇억이 넘는 호화요트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해양수산부 조사자료에 따르면 국내 레저보트 등록대수는 2007년 2,391척에서 2017년 2만272척으로 대폭 늘었다. 조종면허 취득인원도 2007년 6만5,758명에서 2017년 20만 6,725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사치품으로 인식되던 요트와 모터보트 등 레저보트도 국민 취미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취등록세 중과대상 보트가격을 기존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완화해 레저보트 문화 저변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전용 선석이 있는 마리나에 정박한 레저보트들 외에도 최근에는 SUV 등 자가용에 트레일러(선대)에 보트를 탑재한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마리나선석이 현재 2,400여개소인 점을 감안한다면 등록된 수만 2만여대, 무등록까지 합하면 5만여대로 추산되는 레저보트들이 대부분 육상에서 이동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레저보트를 끌고 다니기 위해서 트레일러에 대한 번호판을 별도로 받아야 하는 수고를 감수한 소유주들은 이미 고정된 마리나뿐만 아니라 원하는 전국 곳곳의 해안에서 보팅(Boating)를 즐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 슬립웨이
▲ 슬립웨이

문 걸어 잠근 어항 슬립웨이

몇백키로그램에서 몇톤하는 보트를 바다로 내리려면 통상 비행기의 활주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슬립웨이(Slipway, 선양장)가 요구된다. 바다를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진 이곳으로 트레일러를 후진시켜 보트가 물에 자연스럽게 진수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항포구에 설치된 카고크레인 등을 활용해 보트를 해상에 띄우기도 한다.

이에 레저보트 소유주들은 이런 시설들이 구비된 어항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어업인들의 불만이 거세다. 서산 삼길포항의 박원국 화곡리 어촌계장은 “근래 2~3년전
부터 주말이면 어항이 혼잡해진다. 마을 주차장으론 불충분해 항내 여기저기 길게 트레일러들이 주차되면서 도로가 마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막상 차주에게 전화하면 이미 바다에 나가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고 토로했다.

이어서 “주차를 하지 말라고 하면 싸우려고 덤벼드는 사람도 있다. 인심 사나워질까봐 슬립웨이를 열어두고 있지만 이대로 방치하다간 통제 불능상태가 될 것 같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국의 어항에서는 돌, 폐어구, 쇠사슬로 슬립웨이를 원천봉쇄하고 어업인들이 필요시에만 배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 많다.

어업인들은 레저보트가 어항부근에서 출항을 하고 나서도 골치덩이로 전락한다고 아우성이다. 충남 장항항 박 모씨는 “레저보트들이 빠른속도로 출항하는데 우리 어선에게는 대단히 위협적이다. 특히, 고급보트가 노후어선 옆을 활개치며 지나가는데 괜히 사고가 날까봐 우리가 먼저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레저보트들이 작아서 육안상 잘 보이지 않는데 해상에서 멈췄다 갑자기 빠르게 질주하는 바람에 본선도 긴박하게 방향을 트는 등 바다 위에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정박하려는데 계류선석에 버젓이 레저보트가 계류하고 있어 어획물 운반에 차질을 빚는 등 당황했던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게다가 레저보트들의 주된 낚시활동도 어업인들에게는 반갑지가 않다. 화곡리 박 어촌계장은 “최근 어선보다 레저보트가 더 많이 눈에 띄고 있고 마구잡이로 어획한 수산물을 불법으로 팔아버린다”며 “정부, 지자체에 어항내 레저보트 통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반응이 없다”고 밝혔다. 더욱이 어업인들은 목숨을 담보하고 생계를 목적으로 바다에 나가는데 옆에서 나발 불고 있는 레저보트에 고운 시선은 가당치도 않다는 입장이다.

봉쇄된 슬립웨이에 당혹하게 된 레저보트 소유주들의 강변도 만만치 않다. 엄연히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구축된 시설을 이용하겠다는데 어업인들이 얼토당토않게 고자세인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고무보트를 소유한 부산의 이 모씨는 “국민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다양한 레저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는 커질 텐데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어항을 국민 모두가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 지자체, 해경에 이러한 불법점거 단속을 요청했지만 모두 담당이 아니라며 손 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어항이나 마리나가 아닌 곳에서 레저보트를 내리려는 시도를 하다가 요트에 데미지를 입거나 심지어 인명사고로 번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부산 기장에서 요팅을 하는 김 모씨는 “험지에서는 발을 물에 담가야 하고 늪 같은 곳이라면 저도 모르는 새 빠질 수도 있다. 할 수 없이 아무데서나 보트를 내리게 방치만 하는 것이 정부의 도리냐”고 꼬집었다.

한편, 이런 뜨거운 신경전 중에도 불법으로 슬립웨이를 임대차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얌채족도 나오고 있다. 이 모씨는 “레저보트가 절대적으로 많은 부산 등지에서는 불법 브로커가 어촌계와 계약을 맺고 슬립웨이를 임차해 레저보트인들이 사용할 때마다 10만원 정도 돈을 받고 있다”며 “해경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고무보트
▲ 고무보트

 

어항의 본래 목적 훼손해선 안돼

이렇듯 어업인과 레저보트 소유주들이 슬립웨이 공유와 관련해 팽팽히 맞서며 양쪽 모두 정부, 지자체가 중재자로서 규제를 요구하지만 요지부동의 태도에 불만만 쌓이고 있다.

어항은 <어촌·어항법>에 의해 어업 종사자의 어선어구 등 재산의 관리보호, 생산물의 판매 등을 위한 용도로 구축된 인프라이다. 해수부 담당자인 홍성현 사무관은 “어항을 만들 때 어촌 주민들이 사유재산화된 권리를 포기하고 시공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어민들에게 불법행위라고 추궁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항만구역에서 <항만법>에 의해 허가되지 않은 레저보트가 운항될 수 없는 취지와 동일한 맥락이다.

전문가들도 어항의 특수한 목적이 있다는 측면에서 만에하나 공유재산인 어항을 이용하더라도 어업에 방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관광문화연구실 관계자는 “서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눠 쓰지 못하는 것이 논쟁의 핵심이다. 어항은 본래 수산생산이라는 목적에 의해 구축됐기에 원 목적을 배제시켜선 안된다”고 밝혔다.

레저보트를 위한 슬립웨이를 만드는 방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겠지만 쉽지 않다. 레저보트만 전용으로 하는 마리나가 전국으로 2018년 기준 수도권 왕산마리나, 김포마리나 등 5개소, 전남권과 경북권이 각각 4개소 전국 34개소에 그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 계획된 마리나가 전국 곳곳에 있지만 민간투자자 유치 등에 가로막혀 진전이 더딘 실정이다. 하물며 시공이 진행된다하더라도 급격히 증가하는 레저보트 증가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마구잡이로 만들게 되면 안전상 문제도 발생할 소지가 생긴다. 이에 내릴 데가 없는 레저보트인들은 당장은 슬립웨이, 방파제, 여타 부대시설 등 보트 인프라가 구축된 어항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문화충돌, 소통의 장부터 마련돼야

슬립웨이 공유는 단순히 시설을 사용하는데 그치는 문제가 아닌 위 사례와 같이 문화가 충돌하는 상황인데도 사실 그간 이용주체 간 소통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1차(어업), 3차(레저)산업이 동시에 충돌되다보니 불편함과 어색함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데도 갈등 봉합을 위한 세미나, 토론, 회의 등이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소통의 물꼬만 틀어도 갈등이 해결되는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고령화로 동력을 잃은 일부 어촌지역에서는 레저보트인들이 어촌계와 자율적으로 협약을 맺어서 어항을 개방하는 곳들이 있다. 특히, 일부 몇몇 레저보트를 즐기는 어촌 전문가들이 어업인들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자가 보트를 띄우기 위해 자유롭게 어항을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쓰레기를 줍고 치우는 자발적인 환경정화활동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어촌지역은 드세고 지역적 힘이 세다보니 여전히 레저보트 원천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어업인들의 인식 전환없이는 이런 사단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5월  <현대해양> 주최한 ‘어촌어항과 레저산업의 상생방안’ 포럼이 레저문화가 어촌어항에 안착하기위해 어업인들의 발상을 전환하는 한 차례 계기가 됐다. 권영환 어촌체험마을연합회장은 “부가적인 산업을 통해 어촌마을에 일자리 및 수입이 창출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국가적으로는 자원도 회복하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다”며, “틀린 것이 아니고 차이가 있다고 인식하고 스킨십을 늘리고 소통하니까 상생이 되더라”며 어촌어항의 해양레저 성공사례로 양양 수산항 어촌체험마을을 소개했다.

또한, 어촌에 해양레저를 접목하는 사업을 한다면 어촌주민부터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고 주민들도 침체된 어촌어항에 새로운 동력을 받아들이도록 인식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남광훈 한국어촌어항공단 어촌어항재생지원단장은 “기존에는 역량, 지식 정보가 부족한 어민들이 해양레저 도입에는 대한 판단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금전적 보상 요구만 줄곧 진행됐다. 이에 역량강화교육이 중요하다. 해양레저가 어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자주적인 인식과 적극적인 의지가 사업 초기부터 수반돼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어업인과 레저보트 소유주가 상생을 논의할 자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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