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바다 지켜온 선각자들 제2회
쪽빛 바다 지켜온 선각자들 제2회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4.05.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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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두 번 죽다 살아난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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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사단(事端)은 연애편지에 있었다. 첫눈에 반한 여자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게 대유행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전화는 물론 오늘날의 이메일과 같은 소통 채널이 없던 반세기도 더 전의 일이었으니(일제 말기), 편지가 유일한 방법이자 수단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목넘이 이웃마을도 아닌, 현해탄을 건넌 일본 동경에서 날아온 편지라면 받는 사람의 느낌은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랑을 고백하는 연애편지는 그 내용이 감칠맛 나는 시구의 인용과 함께 얼마나 연모하는가를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담은 봉투나 용지가 꽃이나 새를 그려넣은 특별한 지질(紙質)의 것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일본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적을 둔 청년은 흐드러지게 핀 꽃이나 날개를 활짝 편 새도 아닌, 마치 외상값 장부 같은 노트에서 북 찢어 낸 종이에다 사연을 담았다. 왜 그랬느냐니까, 아직도 학문을 탐구 중인 유학생임을 강조할 수도 있고, 또 한창 공부를 하던 중 문득 그리움에 사무쳐 펜을 든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니 기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기발하다고나 할 그 방법이 얼마나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둘 사이가 크게 가까워졌다는 증언이 없어 효과는 별로였던 모양이다.

그 청년이 노트 쪽지에 흘려 쓴 연서 내용의 하나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 ……참으로 경솔하기 짝이 없는 경거망동이었습니다. 단 한 번 대면했을 뿐인 당신에게 무슨 자신감으로 덜컥 청혼을 하였단 말입니까?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처럼 암울하기만 한 식민(植民) 시대를 살아가는 한 젊은이가 너무 성급한 나머지 사리판단이 조금 흐트러졌던 것으로 이해해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모쪼록 새 학기를 맞아 미래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갈 아이들 지도에 힘써 주시기만을 고대할 뿐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선생님 같은 분이야말로 진정 이 나라의…….

물론 그 편지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몇 차례의 일방적인 편지를 받아본 여선생이 드디어 답장을 보내 왔으니 말이었다. 다른 생각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이하 내용은 월간 현대해양 2013년 11월호(통권 523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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