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규제, 나쁜 규제
좋은 규제, 나쁜 규제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4.04.2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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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少數者),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규제방정식

▲ 김성욱 본지 발행인

무릇 법(法)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도덕률과(道德律) 규범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국민이 걸아가야 할 길을 비추는 길잡이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법은 규제와 보호라는 두 얼굴을 지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다. 평등한 것은 평등하게 보호하고,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 규제하는 것이 법의 본질이다. 그 중심에는 사회적 정의와 소수자(少數者)로서의 국민, 즉 사회적 양자(弱者)에 대한 배려가 자리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근혜대통령은 규제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지난 3월 20일에는 대한민국 초유의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간합동 규제개혁 공개대토론회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되었다. 장장 7시간 동안 TV로 생중계된 토론회에서 박대통령은 “물건을 빼앗는 것만 도둑질이 아니라 규제개혁을 안함으로써 청년들이 길거리를 헤맨다면 이는 일자리를 빼앗는 죄악”이라고 질타했다. 그리고 “보신주의에 빠져 국민을 힘들게 하는 부처와 공무원에 대해서는 책임을물을 것”이라며 규제혁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박대통령은 규제개혁이야말로 바로 한국경제 발전을 위한 특단의 개혁조치이며, 규제개혁 없이는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경제발전 3개년 계획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있는 것같았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성장 없는 분배는 국민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뿐만아니라 분배지상주의(分配至上主義)는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서민과 사회적 약자(弱者)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져준 셈이다.

정상적인 기업활동과 건전한 투자행위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범죄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박근혜대통령의 결단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로 까지 지적되고 있는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를 규제개혁만으로 해결해 낼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선다.

물론 그동안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話頭)로 떠올랐던 가진 자(者)들의 횡포, 즉 갑(甲)의 횡포를 막아낼 규제는 더 강화되어야 하겠지만, ‘좋은 규제’, ‘나쁜 규제’를 판별해 낼 수 있는 공직자들의 혜안(慧眼)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지난 해 3월 로마카톨릭교회의 제 266대 교황으로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무런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독재」라고 설파했다. 사회적 소수자, 특히 가난하고 힘 없는 자들에 대한 관용과 배려가 없는 물질만능의 자본주의는 독재와 다름 없는 폐악이라는 점을 강조한 프란치스코교황의 가르침을 가슴 속에 되새겨야 할 때다. 그는 이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가난과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는데 헌신해 줄 것을 강조한다.

‘좋은 규제’와 ‘나쁜규제’ 를 헤아리는 두 지도자의 종교적 철학과 경제적 헤안을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가슴 속 깊이 간직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할 따름이다.

도매시장법인 상생의 길을 찾아야

1980년대 중부시장(일명 방산시장) 건어물 상인들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강제 이전시키는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던 농수산물 유사도매시장을 폐쇄하고 그곳 상인들을 제도권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농수산물유통시장 대혁신작업이 전두환정권 초기에 시작되었다.

그 당시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완공과 더불어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던  농수산물 유통구조의 개선문제에 대해서도 혁명의 칼날이 드리워졌다. 군부 출신인 안교덕씨가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농안법(농수산물가격안정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건어물 유통시장을 좌지우지했던 거상(巨商)들의 저항과 반발도 군부세력의 강압앞에 얼마 견디지 못하고 제도권 시장으로 편입되는 대 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공영도매시장에 입주한 상인들은 경매제도를 피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중도매인들에게는 경매를 통해 세원(稅源)이 낱낱이 노출된다는 사실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정부 당국에서는 제도권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과도기적인 조치로서 거래금액의 일정 부분만 과세표준으로 인정해 주는, 인정과세제도를 채택하줌으로써 상인들의 반발을 무마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대도시 농수산물시장의 거상(巨商)들은 수십년 동안의 거래관행(去來慣行)상 산지(産地)에서의 수집기능과 도매시장에서의 분산기능을 모두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두가지 기능을 분리토록 규정한 농안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자면 농안법에서는 도매법인이 수집기능을 담당하고 중도매인은 분산기능을 전담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도매법인의 수집능력이 거의 전무(全無)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도매인이 생산현장에서 수집해 놓은 자기 물건을 도매시장으로 상장시켜 놓고 자기가 자기 물건을 또다시 매입하는,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도매시장법인은 경매수수료만 챙기는, 노름판의 전주(錢主)와도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실과 법의 괴리(乖離)가 빚어놓은 한 편의 코미디같은 드라마가 지금도 대도시 수산물도매시장에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도매시장 운영주체인 도매시장법인과 시장도매인 사이의 이해관계가 또 다시 충돌하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 농안법 규정에 따라 수산물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점을 감안하여 수입 바지락, 명태코다리,북어채를 상장 예외품목으로 지정하는 문제를 두고 양측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 갈등의 틈바구니에 자락동 도매시장 관리주체인 서울시농수산뭀식품공사가 자리하고 있다.

수입 바지락은 말할 것도 없도 명태코다리나 북어채는 모두 원양산  명태를 건조가공해서 만든 가공식품이기 때문에 포장단위나 kg당 단가가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 특성상 이들 품목은 정가수의매매로 유통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정가 수의매매 품목이 늘어날수록 공사(公私)와 도매법인, 시장도매인 사이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 질 수 밖에 없도록 되어있다. 경매수수료는 줄어 드는 데다 수의매매 정산기능을 공사측이 갖게되면 도매시장법인의 역할과 기능은 당연히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매시장 법인이 수집기능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정부가 추진하는 농수산물유통단계 축소라는 가격안정대책에도 기여하지 못한다면 존립기반을 상실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도매시장법인은 ‘나쁜규제’에 무임승차했던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 ‘좋은 규제’의 길잡이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는 것- 거기에 상생(相生)의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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