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21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21
  • 남송우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0.03.04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꼬리 긴 물고기」에 나타난 동심

[현대해양] 향파 선생은 아이들에게 많은 동화를 들려주기를 원했다. 그 형식은 동화라는 작품을 통해서였지만, 작품 구성상 읽히기보다는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구전되었던 전래동화를 많이 창작했다.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할아버지・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전된 이야기들이다. 재미와 지혜가 결합된 생명력이 긴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아이들에게 생동감 있게 전해줄 것인가를 고민할 결과, 향파 선생은 들려주는 이야기식의 동화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형식이 그가 펴낸 『톡톡 할아버지』 동화집에 집중적으로 실려있다. 이 이야기들 중에 「꼬리 긴 물고기」를 한번 들어 보자.

톡! 톡! 톡!

자, 벽장문은 두드려 놓았다만 오늘은 또 무슨 얘기가 튀어나오려나 너희들 한번 알아맞춰 보겠나? 하! 요 자식은 왜 생글생글 웃고만 있어! 모르겠나? 이 바보들아 오늘은 개구리 얘기야. 개구리가 울고 있는 얘기야, 뭐 개골개골 우는 거 아니냐구? 천만에! 엉엉 눈물을 흘리면서 운다는 얘기야. 그럼 자. 내가 얘길 할 테니 가만히 들어 보라구!

<톡! 톡! 톡!> 이라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문 밖으로 끌어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즉 이야기를 들어 줄 아이들을 상대로 서로 소통하는 화법을 사용함으로써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을 이야기 마당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있다. 『톡톡 할아버지』 동화집에 실려있는 대부분의 동화는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다. 여기에 실린 많은 동화들이 부산문화방송의 <어린이 극장> 프로그램에서 낭독되었다는 매체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방송용으로는 이런 형식이 유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형식이 전래동화가 지닌 구전의 특성에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전래동화가 지닌 구전성을 활용함으로써 아이들에게는 이야기의 전달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용왕님이 살고 있는 물 속의 세계로 아이들을 인도한다. 용왕이 모든 물고기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 상에 불려온 물고기는 도미, 가자미, 복쟁이, 문어, 방어, 곤어, 갈치, 족어, 고등어, 전어, 상어, 고래, 청어, 새우, 게, 풍장어, 전복, 낙지, 오징어, 준치, 가재, 멸치, 꺽정이 등 물에 사는 모든 생물들이 다 모였다.

이들이 모두 모여 슬과 떡과 과일, 고기 등을 마음껏 먹고, 장구치고 피리 불고 춤추고 노래 부르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술이 많이 취한 갈치가 혼자 신이 나서 춤을 추고 돌아다니다가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긴 꼬리를 가지고 용왕님의 눈을 때렸다. 이로 인해 용왕님의 눈이 멀어졌다. 화가 난 용왕은 게와 가재를 불러 꼬리있는 물고기는 다 잡아들이라고 명령을 했다. 그래서 게와 가재는 꼬리가 긴 물고기를 잡으러 나섰다. 그런데 게와 가재가 꼬리 긴 물고기를 잡으려고 해도 걸음이 느린 이들이 물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게는 빨리 간다고 생각했지만 옆으로 기어가고, 가재는 뒤로 걸어가는 재주밖에 없었다. 꼬리 긴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지만 놀림만 당했다. “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찌 그리 앞으로 바로 걸어오십니까?” “가재 아저씨 아니십니까? 뒷걸음 쳐 오시느라 매우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뒷걸음으로 걸으시면 하루에 몇 리나 걸으십니까?” 이렇게 계속 놀림만 당하고 꼬리 긴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다. 그래서 게와 가재는 의논을 했다. 이 물속에 있는 물고기는 너무 걸음들이 빨라서 잡을 수 없으니, 물 밖에 나가서 육지에 있는 물고기를 잡기로 했다.

이런 결정을 하고 게와 가재가 육지로 나가려고 하니, 장난꾸러기 물고기 아이놈들이 쫄쫄 뒤를 따라오면서 또 놀리기 시작했다. “벌써 꼬리 있는 물고기 다 잡으셨어요?”라고. 그러나 게와 가재는 이에 이랑 곳하지 않고 육지로 나왔다. 이들이 육지에 나와 논두렁에 올라서 이마의 땀을 닦고 있는데, 어디서 훌쩍 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하고 내려다보니 파아란 옷을 입은 개구리가 울고 있는 것이다.

게와 가재가 왜 우느냐고 물었다. 그러니 개구리는 “꼬리 있는 물고기를 잡으러 다닌다고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게와 가재는 “그래, 넌 꼬리가 없잖아”라고 물었다. 이에 개구리는 말하기를 “나야 꼬리가 없지만 올챙이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난다고요”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게와 가재는 개구리에게 다시 대꾸한다. “하 요놈 좀 봐! 제 궁둥이에도 어제까지 꼬리가 달려 있었던 건 잊어버리고서 뭐! 나야 꼬리가 없지만이라고?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톡톡 할아버지는 “‘개구리 올챙이 쩍 생각을 못한다’ 하는 말이 그래서 생겨난 거야”라고 이야기를 끝맺음 한다.

이 짧은 한 편의 동화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의미를 정리할 수 있다. 우선은 물고기를 이야기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할 물고기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아이들의 상상력을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향파 선생은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상들을 의인화함으로써 아이들의 동심을 확대시키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이나 현상들을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해명함으로써 아이들의 생각을 넓혀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어떤 현상이나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게 함으로써 이야기가 지닌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톡톡 할아버지』는 평생 동화를 쓴 이주홍 선생 자신의 별칭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