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20
월간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 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이야기20
  • 남송우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0.02.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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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온 아이」 속에 숨긴 동심

향파의 「섬에서 온 아이」는 1960년대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동화이다. 욕지도에 사는 인자와 국섬에 사는 남조라는 두 어린이가 부산에 들렀다가 도시 사람들 속에서 겪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인자는 부산에 있는 이모 집에 들리려고, 남조는 국섬에 홀로 있는 할아버지를 떠나 식모살이를 하기 위해 부산에 오게 된 것이다. 부산 자갈치 선창에 이들을 실은 배가 도착하는 순간의 장면 묘사로 이 동화는 시작되는데, 오랜 섬 생활에서 떠나 처음으로 낯선 도시에 오게 된 이들이 경험하는 문화충격에 놀란 표정들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주소지 하나만 손에 들고 인자의 이모 집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사기꾼 할머니가 다가섬으로써 이야기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 두 소녀에게 친절하게 다가온 사기꾼 할머니는 이들이 가는 집을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이 두 소녀는 결국 꽤임에 속아 할머니를 따라간다.

할머니 집에 들려 이들이 저녁을 얻어먹고 할머니의 친절에 속아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인자의 이모 집으로 데려다 줄 것으로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의 교활한 친절은 거짓임이 드러난다. 인자는 이모 집으로 데려다주지만, 남조는 결국 할머니에 의해 다른 집에 식모로 팔려가게 된다.

여기서 향파 선생은 왜 이런 순진한 섬 소녀들을 어른의 욕망의 수단으로 삼게 만드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섬 소녀들의 순진함과 도시 노인네의 가식성와 추악성을 대비시켜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순진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적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는 섬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처럼 살아온 두 소녀는 인공이 만발하는 도시공간에서 사는 사람과는 차별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향파 선생의 관심은 어른들에 의해서 아직은 순진한 아이들이 어떻게 희생당하고 있는지를 문제삼고 싶었던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얼마나 이기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지를 내보이는 장면으로 읽힌다.

사기꾼 노인네의 꾀임에서 시작된 남조의 도시생활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식모살이로 이어진다. 노인네의 술책에 의해 인자는 이모집으로 가고, 식모살이 하려 왔다는 남조는 사기꾼 노인네에 의해 다른 집으로 팔려가게 된다. 남조가 팔려간 집에서의 힘든 생활 이야기가 이 작품 속에서는 또 다른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되어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남조가 식모살이를 하게 된 집은 중풍이 든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를 모시는 부부, 그 부부의 자녀인 남매가 사는 집이었다. 병든 할아버지는 며느리에 의해 구박을 당하는 신세로 힘들게 골방에 갇혀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반가이 맞이해줄 누구도 없는 외로움에 처해 있는 이 할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된 남조는 할아버지를 위해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이 있으면 해드리려고 한다. 그러나 이 집안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며느리는 남조의 이러한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할아버지를 도울 때마다 그녀를 괴롭힌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병든 할아버지에 대해 남조가 남다른 인정을 느끼는 것은 그가 국섬에 같이 살던 할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조는 국섬에서 홀로된 할아버지와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잘 몰랐다. 자신의 친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지 부산에 같이 온 인자의 말을 듣고 육지로 나오면 좋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할아버지 몰래 도망을 쳐 부산에 왔지만, 식모살이의 고달픔이 더해갈수록 국섬에 혼자서 생활할 할아버지 생각이 더욱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이 집을 도망쳐 국섬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남조를 견디게 한 것은 병든 할아버지가 밤마다 들려주는 옛이야기의 즐거움이었다.

며느리는 병든 할아버지가 귀찮아 미워했지만, 손자들은 할아버지를 한 번씩 찾아와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들어주었다. 손자들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재미나는 이야기에 취해 엄마 몰래 할아버지 방을 찾았다. 그러나 이를 싫어하는 엄마에게 들켜 혼이 나기도 하지만, 엄마 몰래 할아버지 방에 와서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이야기를 남조도 함께 들으면서 식모살이의 괴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손주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손자 권일이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학교 친구들에게 다시 들려줌으로써 많은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소년소녀 동화대회에 출전하여 2등을 하기도 했다. 이런 할아버지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주 때문에 한 번은 권일이 학교 친구들을 엄마 몰래 밤 중에 집으로 초청해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하려다가 탄로가 나서 한바탕 소동을 치르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향파 선생의 동화작가로서의 또 다른 솜씨를 읽게 된다. 병들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며느리로부터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권일이의 할아버지였지만, 아이들에게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재주를 가진 할아버지로 설정하여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무엇인가 즐거움을 심어주려고 한 점이다.

그런데 이런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지붕 처마 밑에 살고 있는 새를 잡으려 밤 중에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다가 그만 떨어져 죽고 만다. 장례를 치르는 날 이웃집 식모처녀와 함께 시장을 보러가는 중 생전 처음 영화관에 들렸다가, 남조가 그만 시장비를 전부 잃어버리게 되어 자갈치에서 울고 있는 중에 인자를 만나 섬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있다. 어려운 식모살이를 버티게 해주었던 권일이 할아버지의 죽음과 식모살이 하는 집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향파 선생은 남조를 섬으로 다시 돌려보냄으로써 아이들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것이 향파 선생이 「섬에서 온 아이」를 통해 구현하려는 동심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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