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8] 국가가 만든 법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할까?
[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8] 국가가 만든 법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할까?
  •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0.01.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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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청 훈령 무효 사건

<여덟 번째 여행의 시작>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강선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현대해양] 세상사 대부분이 그렇듯 법에도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헌법의 시대가 열린 이후에는 헌법, 국회가 만드는 법률, 대통령이 만드는 시행령, 각부 장관이 만드는 시행규칙, 그 외 훈령이나 예규, 고시 등의 순서로 상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수많은 법들에 따라, 그리고 그 법에 기재된 내용에 부합하게 국가기관이 면허나 처분을 한다면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그 면허나 처분이 위법하다고 의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 자체에 무언가 흠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법부의 재판정에 가면 문제 있는 법들은 무효로 판단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사건에서 A는 수산업법 제14조 제1항에 따른 어업면허의 유효기간이 끝나가자 관할 도지사인 B에게 같은 조 제2항에 따른 어업면허기간 연장허가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B는 이 사건 어장에 대한 어업면허를 해주면 지선어민들의 반발로 분쟁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수산청 훈령인 수산업에 관한 어업면허사무취급규정 제10조 제1항 제4호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A에게 어업면허기간 연장을 불허하였습니다. 그럼 A는 수산청 훈령에 적혀 있는 대로 판단한 B의 처분으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을까요?

 

<쟁점>

어업면허기간연장허가의 성질과, 그에 따라 수산업에 관한 어업면허사무취급규정이 무효가 될 수 있을까?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1988. 2. 9. 선고 86579 판결 [어업면허거부처분취소]>

1. 수산업법 제14조 제2항에 의하면, “어업의 면허 또는 허가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경우 행정관청은 제1항 단서 및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업권자의 신청에 의하여 면허 또는 허가기간이 만료한 날로부터 제14조제1항의 기간 내에서 기간의 연장을 허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A는 위와 같은 기간연장불허가 사유가 없는 한 B로부터 이 사건 어장에 대한 어업권면허를 받을 권리와 이익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A의 권리와 이익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이 사건 처분과 같은 것은 기속적(羈束的) 재량행위(裁量行爲)로 반드시 법령상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B가 이 사건 불허가처분의 이유로 삼은 지선어민과의 분쟁예상이라는 것은 제14조 제2항에서 기간연장불허가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제20조 제1항 제3호 소정의 공익상 필요한 때에 해당된다고는 볼 수 없다.

2. B가 이 사건 불허가 처분의 근거로 삼은 수산청 훈령인 수산업에 관한 어업면허사무취급규정 제10조 제1항 제4호에 의하면 어업분쟁 중이거나 향후 분쟁이 예상되는 수역은 어업조정상 그 분쟁요인을 해결한 경우에 한하여 어업면허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 규정은 법령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명령이므로 위 규정은 신규의 어업면허신청에 대한 허가여부와 같이 행정청의 자유재량에 속한 처분의 기준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A와 같이 위 법조 소정이 기간연장불허가 사유가 없어 재차 어업면허를 받을 수 있는 기득의 권리와 이익을 갖는 기존의 어업권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법령의 근거 없는 명령으로서 무효인 것이다.

결국 B의 이 사건 처분은 법령상의 근거 없이, 그 효력이 없는 명령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위법한 처분인 것이다.

 

<판결의 의의>

우선 이 사건을 통해 대법원은 수산업법 제14조 제2항에 따른 어업면허기간 연장허가는 특별히 법률이 규정한 기간연장 불허는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허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수산업법 제14조 제2항에서 유효기간의 연장을 허가할 수 있다가 아니라 유효기간의 연장을 허가하여야 한다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법원은 이런 법률 규정에 충실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법적 근거는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또 반드시 국회가 만드는 법률또는 그 법률의 위임을 받은시행령 등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BA의 신청을 불허한 근거인 어업분쟁 중이거나 향후 분쟁이 예상된다는 점은 우선 수산업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최소한 수산업법의 위임을 받은 규정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B가 그 근거로 삼은 수산청 훈령, 수산업에 관한 어업면허사무취급규정 제10조 제1항 제4호는 수산업법의 위임을 받지도 않은 채 함부로 A의 권리나 이익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법원은 수산업에 관한 어업면허사무취급규정 제10조 제1항 제4호를 법령의 근거 없는 명령으로 아예 무효라고 판단하고, B의 불허가 처분도 취소시켜 버렸습니다.

 

<여덟 번째 여행을 마치며>

대한민국의 역사상 현재의 법치주의는 가장 높은 수준에 와 있습니다(물론 앞으로 더 발전할 것입니다).

교과서에나 있을 것 같은 삼권분립, 즉 국민이 국회를 통해 만든 법률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가 집행하고 법률과 집행을 사법부가 감시하는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고, 특히 행정소송의 발달로 사법부의 행정부 감시 기능은 적어도 판례적인 측면에서는 엄연히 실효적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를 통해 법률조차도 무효화시킬 수 있고, 또 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 그리고 대법원이 법령상 근거 없는 규칙이나 훈령, 고시, 예규 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무효 판단을 하면서 국민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처분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면 그 처분의 근거 법령조차 무효화시켜 권리 구제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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