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살아야 미래가 산다
청년이 살아야 미래가 산다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4.02.18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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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청년들의 취업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각 기업과 공기업들의 정문에 취업축하 플랜카드가 걸렸습니다. 서류를 내랴 면접을 보랴, 기업 빌딩이며 회사 사무실을 오가는 청년들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잔뜩 긴장된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때때로 처진 어깨도 보게 됩니다. 천근은 되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청년이 취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하는 청년이 더 많아 보입니다. 청년은 국가의 보배라고 합니다. 그럴 것입니다. 청년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고 한 사람은 도산 안창호입니다. 청년들에게는 기회가 많아야 합니다. 실패해도 실패 그 자체가 자산이 되는 것이 청년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가정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취업에 성공하면 당연히 가정의 보배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가정의 문젯거리, 골칫덩어리가 됩니다.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은 공식적으로 약 3.3%, 청년실업률은 7.5% 정도입니다. 참, 청년이라 함은 몇 살의 나이를 말할까요. UN, OECD, ILO는 ‘15~24세의 젊은이’를 청년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 복무가 의무화돼 있는 점을 고려해 청년의 범위를 15~29세로 넓게 잡고 있습니다(특별한 경우 15~34세, 또는 19~39세로 정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15~29세로 정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7.5%였지만, 실제 청년실업률은 16.7%에 이릅니다.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 6명 중 1명꼴로 취업이 안 되어 고통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실업 상태에 있는 청년, 즉 학원 등을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자나, 오랫동안 취업이 안 되어 포기한 구직 단념자까지 포함해서 실질 청년 실업률을 추산한 결과입니다.

2010년 튀니지의 한 도시에서 26세의 청년 모하메드가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직장을 잃은 후 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불법노점상이라는 이유로 팔던 물건을 모두 빼앗기고 폭행까지 당한 뒤 얼마 뒤 사망했습니다. 가족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항의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불과 20일 만에 대통령이 망명하게 되고 독재정권이 무너졌습니다. 튀니지를 상징하는 꽃의 이름을 따 이를 ‘재스민 혁명’이라 부릅니다. 재스민 혁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과 예멘 대통령이 하야했고 요르단의 내각도 총사퇴했습니다. 리비아의 경우 카다피 국가원수가 시위대를 무력진압하면서 내전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카다피는 8개월 후 시민군에 잡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시위 발생 당시 튀니지의 실업률은 14%, 리비아와 예멘, 바레인의 실업률도 20% 안팎을 넘나들었습니다. 당연히 청년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았겠지요.

재스민 혁명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 때문에 일어났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입니다. 특히 높은 청년실업이 에너지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청년실업은 이렇게 무서운 폭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처드 왓슨(Richard Watson)이라는 미래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래를 발명할 수는 있다’고 말합니다. 미래는 결정론적 미래관에 따라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그래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리더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청년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청년들을 나라의 보배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인층의 복지도 긴요합니다. 노인복지는 보살핌을 내용으로 하는 현실의 문제라 하겠습니다. 청년복지는 일자리 제공으로 미래에 대한 문제입니다. 청년들을 일하게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층에 대한 복지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합니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정부의 ‘여성·가족부’를 ‘청년·여성부’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그리고 중점적으로 청년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사실 청년문제의 속성과 여성문제의 속성은 많이 비슷합니다. 양쪽이 모두 취업문제가 심각한 것이 그렇고, 사회적으로 그 중요성이 엄청난데도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점도 그렇습니다. 출산율 저조와 향후 노동력의 부족이 예상되는 점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성문제와 청년문제는 미래와 관련이 많습니다. 낮은 출산율은 청년노동력의 부족을 초래할 게 뻔합니다. 이는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경제발전을 둔화시키는 것은 물론 경제를 위기로 몰아갈 것입니다.

과거적 사고로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청년의 문제를 노년층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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