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 계기된 중국 방공구역 선포
전화위복 계기된 중국 방공구역 선포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4.02.1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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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상공에서의 비극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수평선 멀리 하현달이 보였으나 상공은 여전히 짙은 어둠 속이었다.……

1983년 9월 1일 새벽 5시(한국시각), 옛 소련 공군 소속 전투기(수호이-15)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소령이 기억하고 있는 당시 사할린 상공의 풍경이었다. 다음 순간 경천동지할 비극이 펼쳐진다.

시선을 거둔 조종사는 움켜쥐고 있던 조종간의 빨간 버튼을 거푸 두 번 눌렀다. 순간 기수 양쪽 발사구를 박찬 포탄은 똑바로 직진하여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거대한 비행체에 명중했다. 한 발은 엔진에 명중했고, 다른 하나는 꼬리날개를 짓이겼다. 불과 수백 미터의 거리에서 열(熱) 추적 미사일이 어긋날 까닭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투기보다 열 배도 더 큰 비행체는 피격의 충격으로 수십만 개의 파편으로 분해되면서 불꽃놀이 영상처럼 타타르 해협 항구도시 네벨스크 앞바다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해 갔다.

“명중입니다.”

조종사는 그 사실을 기지 상황실로 즉각 보고했다.

보다 앞선 새벽 2시 15분, 야간 대기조이던 조종사는 상황실로부터 캄차카반도로 즉각 출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방금 레이더스코프에 영공을 침범한 괴(怪)비행체가 포착됐으니 그 동태를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그건 유도착륙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불응하면 그대로 격추시켜도 좋다는 뜻이었다. 그게 어느 나라 전투기든 무단 침범한 괴 비행체에 대한 가차 없는 대응 매뉴얼이었다. 미·소 양국의 냉전체제로 긴장이 한껏 고조돼 있을 때였고, 그에 따라 미국 정찰기들이 소련 영공을 무시로 침범하면서 첩보를 수집하던 때였다.

하지만 격추된 비행체는 하루 전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을 이륙, 앵커리지를 경유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 747점보기였다. 바로 그 민간 여객기가 소련 공군 조종사의 버튼 하나로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269명이 전원 사망하는 대형 참사(慘事)를 불러오고 만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 소련 전투기 조종사는 무고한 여객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단 말인가. 좀체 이해하기 힘든 야만적 공격을 감행한 조종사는 나중 자신이 격추시킨 비행체가 미국 첩보기가 아닌 대한민국 국적의 민간 여객기임을 알고 평생을 고뇌와 회한에 젖어 살았다고 실토했지만, 그럼에도 그와 소련 공군 당국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은 모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덕적 문제일 뿐이지, 법적 혹은 민사상 그 어떤 문책도 할 수 없는 영공수호라는 이름의 국제적인 관례였다.

그럼에도 당시 조종사에게는 왜 첩보기와 여객기를 분간하지 못 하였느냐는 기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추궁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나중 회수한 블랙박스 분석 결과에 의하면, 앵커리지 공항을 이륙한 KAL기는 자이로 시스템에 의한 자동항법 대신 나침반에 의한 구식 모드를 채택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럴 경우 정상항로에서 최대 700km 가량 벗어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고 보면 그 날 발생한 비극의 사단이 어디에 있는가가 분명해진다. 따라서 문제의 KAL기는 당시까지만 해도 결코 우방국(友邦國)일 수 없는 소련 영공을 무단 침범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만 것이었다.

62년만의 해양주권 정상화

필자가 30년 전의 비극을 재차 운위하는 것은 바로 그 사고가 오늘날 한?중?일 3개국이 각각 달리 주장하고 있는 동지나해의 ‘방공식별 구역(防空識別區域; ADIZ)’ 문제와 관련해서다.

작년 11월 23일, 중국은 느닷없이 새로운 ‘방공식별 구역(CADIZ)’을 선언하면서 동북아 주변국들을 경악시켰다. 바로 그 영역 내에 한국의 이어도가 포함된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어도가 어떤 곳인가. 이전까지는 단순한 수중암초였지만 11년 전인 2003년, 한국 정부는 2,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10층 높이의 견고한 구조물을 짓고, 거기에 상주 과학자들의 주거시설을 포함한 헬기 플랫폼과 통신망 등을 두루 갖추고 매년 여름철이면 한반도로 북상하는 태풍의 진로 등을 관측하는 ‘종합해양과학기지’로 기능해온 우리 영토가 아닌가(본지 2007년 8월호 칼럼 참조). 그렇잖아도 중국은 심심하면 이어도의 관할권이 마치 자신들에게 있는 양 떠벌려온 터여서, 중국의 이번 조치는 실로 한국 정부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여기에 상황을 더욱 곤란하게 만든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지금껏 한국은 방공식별 구역을 선포하지 않은 대신, 6?25전쟁 중이던 1951년 3월 미 태평양공군이 설정한 ‘인천 비행정보 구역(FIR)'으로 대체해 왔는데, 그에 따르면 한국의 관할 범위는 겨우 마라도에서 그칠 뿐 더 이남(以南)의 이어도 과학기지까지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은 이번 중국의 막무가내 식 해양패권에 밀린 나머지 자칫 새로운 영토분쟁의 회오리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국제관례에 준하는 매우 합당하고 적절한 조치(선언)로 그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냈다. 중국의 일방적 선언이 있은 지 보름째가 되는 12월 8일, 종전의 인천FIR을 훨씬 뛰어넘어, 마라도와 이어도와 거제도 남단의 홍도를 모두 싸안는 새로운 ‘한국 방공식별 구역(KADIZ)’을 선포한 게 그것. 그런 다음 그 일주일 후인 구랍 15일 발효에 이르게 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잠재우는 빛나는 외교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이번 중국의 돌출 선언으로 한반도는 오히려 종전의 해양영역을 450㎢나 더 남쪽으로 확대시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우리는 실로 반만 년 만에 비로소 본디 모습을 되찾은 쪽빛 바다- 이어도 남방 멀리까지 제주 강정해군기지에서 출동한 이지스함들이 평화로이 순항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고, 그리하여 더 먼 훗날, 2013년말 해양주권을 실질적으로 회복시킨 대한민국 정부를 영원히 기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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