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마리나는 왜 만년 적자인가?
우리나라 마리나는 왜 만년 적자인가?
  • 최정훈 기자
  • 승인 2020.01.07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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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 중심사업 전환돼야
▲왕산마리나 클럽하우스 및 계류장
▲왕산마리나 클럽하우스 및 계류장

[현대해양] 국민 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에 요트들이 눈에 띄게 부쩍 증가했음에도 마리나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적자 고리 못 끊는 마리나

최근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을 필두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가운데 조원태 회장이 만년 적자 늪에 빠져 미운털이 박힌 왕산레저개발(주)도 거론한 것과 관련해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2011년 설립된 왕산레저개발(주)의 주 사업대상인 왕산마리나는 왕산해수욕장 인근 266선석의 해상계류장, 34선석의 육상계류장 등 요트 300척이 정박할 수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민간마리나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경기장이자, 수도권에서 바다로의 접근성이 뛰어나 유명세를 달리던 왕산마리나에 순차적으로 배후단지로 복합레저문화시설 등이 들어선다는 사업계획 등이 나돌았지만 마리나 운영 수년째 20억원이 넘는 적자 경영의 고리를 끊지 못한채 추후 사업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진 상황이다. 왕산레저개발(주) 관계자는 “리조트, 숙박시설, 컨벤션 등 기 계획됐던 사업이 늦춰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업을 포기한다는 판단은 나오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왕산마리나뿐만 아니라 사실상 우리나라의 대부분 마리나가 적자 성적을 내고 있다. 최근에 생긴 마리나는 고사하고 비교적 풍부한 수도권 인구를 등에 업고 있는 전곡마리나도 누적 적자가 20여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에 화성시는 업체의 불만섞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올해 계류시설 사용료를 50% 인상한다는 강수를 내놨다.

대기업도 흑자 경영이 어려운만큼 민간의 투자자들에게는 이미 마리나 사업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공고해졌다. 지난 2010년부터 추진된 강정 마리나 항만 개발사업도 선석의 70%가량의 공공부문 완공 이외에 나머지 선석과 클럽하우스 등 부대시설에 선 듯 나서는 투자자가 없어 난항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전국의 마리나(서핑포인트 포함)

 

경제성 있는 인프라 구축

요트 등 각종 레저선박 등록대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지난 2014년 1만1,000여척에서 2018년 2만2,000척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정부는 레저선박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마리나 구축을 위해 지난 2009년 제정된 '마리나항만의 조성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인프라 개발에 집중해 왔다. 2018년 기준 수도권 왕산마리나, 김포마리나 등 5개소, 전남권과 경북권이 각각 4개소 전국 34개소가 운영 중에 있다.

문제는 인프라 구축 속도가 레저보트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한국수상레저안전협회 관계자는 “현재 등록된 전국의 요트 숫자만 2만3,000여척에 이르는데 마리나 계류장은 2,400여석으로 단순 계산해도 10척중 9척은 계류를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선박이 계류하기 좋은 해안 지형 등에는 이미 어항들이 들어서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기존의 어촌·어항을 활용한 ‘어촌마리나역’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지만 공유수면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불거지는 어민들과의 불협화음이 만만치 않다. 어민과의 마찰이 적은 곳 위주로 개발하다보니 초기 투자비가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레저보트의 안전한 계류가 어려워지다보니 전곡항의 경우 계류선석에 프리미엄만 몇천만원에 거래되면서 마리나로 인해 파생되는 부가가치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부분 마리나가 계류비 회수에 혈안이 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문가들은 마리나 설계부터 경제적인 설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충환 경기도 전문위원은 “세일요트 등 30ft이상 규모의 대형 요트는 해상계류가 불가피하더라도, 중소형 보트는 육상계류시설로 올려 계류비용을 낮추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해상계류에 비해 최소 1/6 투자로 구축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육상계류시설은 선진국 마리나에 대부분 구비돼 있다.

▲전곡항 클럽하우스
▲전곡항 클럽하우스

 

워터프론트 사업 키워야

우리나라 대부분 마리나에는 오직 계류 사용료에서의 사업비 회수 이외에 배후단지 위주로 부가가치를 생성할수 없는 형국이다. 박창호 한국수상레저협회 회장은 “한국 마리나 사업형태가 계류시설에 불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트는 항해만하는 레저활동이 아니다. 중간에 경유지, 목적지에 방문, 관광, 체류가 이뤄져야 진정한 해양레저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컨벤션형, 리조트형, 테마시설형 등 부수적으로 연관된 사업다각화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선진 마리나 수준으로 요트와 관련된 클럽하우스, 주유소, 수리소, 편의시설 등이 제대로 된 갖춰진 곳이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국내 최대의 부산수영만 조차도 주변에 계류시설 이외에는 편의점을 이용하는 등 부가 활동을 하기 위해 마리나를 꾀나 벗어나야 한다.

요트들이 즐비하고 주변에 숙박시설, 요트기업체 들이 들어선 전곡항의 경우에도 배후시설에서 경제적 효과가 미미한 실정이다. 전곡항 어민 A씨는 “호화 선박과 어선과 구분을 지어 위화감만 조성했지 실질적으로 어민들에게 주는 효과가 없다. 전곡항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마리나가 아닌 주민들이 주도한 어촌체험마을이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는 어촌마을이던 전곡항 주변으로 다양한 숙식, 관광시설이 늘어 났지만 요트 이용객들은 요트 활동만 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정부도 마리나 연관 산업 집적화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레저선박 수리·정비·매매 등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형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서비스형을 기반으로 한 ‘제조형 산업단지’를 육성해야 한다는데 궤를 같이 하지만 정부가 할 일이 인프라 구축까지이지 민간의 구미를 끌어들일 산업육성까지 손을 대기에는 여러모로 버겁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해외 선진 마리나들은 원래 클럽중심에서 파생돼 기본적 마리나 인프라조차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번진 것이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스스로 동력이 없어 정부가 지원사격하고 있지만 국가가 개입해서 취미, 활동까지 인위적으로 유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서비스 산업까지 정부에 하소연 할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가운데 요트문화 강국인 이탈리아의 사례가 귀감이 된다.

지난해 10월 국제마리나 컨퍼런스에서 이탈리아 마리나인 ‘Porto Reno’의 ‘Filippo Burchi’ 이사는 “마리나는 콘텐츠가 중요하다. 마리나 또한 독특한 가치를 팔아 재방문을 유도하고 가망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며, “부두, 계류시설, 육상시설, 수심 등 기본 인프라뿐만아니라 숙박, 식음, 쇼핑, 관광 등을 포함해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자국 요트 세금 인상 정책을 겪으면서 마리나 산업이 커다란 침체기를 겪은 바 있다. 이후 지난 2015년부터 마리나 육성을 위한 차별성 있는 콘텐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며 마리나를 고급 복합 리조트화하고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들은 애초에 마리나 이용객들이 사실상 요트 계류시설에서 1/3정도 지출을 할뿐이지 대부분 배후단지 서비스에 지갑을 연다는 것을 이미 인식한 상태에서 마리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소외받는 마리나 산업의 이목을 되돌리기 위해 종전의 민관의 사업추진 행보에서 과감히 탈피한 쇄신의 불씨가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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