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경험을 통해본 남북 수산협력사업
실무경험을 통해본 남북 수산협력사업
  • 김용득 한국수산증양식기술사협회 회장 (전 해수부 남북협력 담당)
  • 승인 2020.01.0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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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 매뉴얼, 민간협력단 운영이 관건
김용득 한국수산증양식기술사협회 회장

[현대해양] 필자가 남북 수산협력사업을 처음 맡게 된 것은 해양수산부 유통정책과 주무관으로 근무하던 2003년 하반기였다. 당시 필자는 남북협력에 필요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 가락시장 도매법인인 (주)강동수산 자회사 피쉬닷컴 관계자 등의 자문을 구하며 남북 수산물 교역(유통) 사업을 추진했다.

 

아쉬움 많은 제1차 남북 수산실무자회의

필자는 남북 수산협력 분야의 정부지원 사업을 체계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으로 논의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남한의 통일부와 북한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를 설득했다. 그 결과 2005년 남한의 통일부 장관과 북한 최고 권력자 간에 면담 후에 수산당국자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해서 제1차 남북 수산협력실무회의 개최가 극적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실무자회의 의제 등을 의논하고 남북 수산협력사업의 실행계획 등 공감대 형성을 위해 북한의 초청으로 입북하게 됐다.

북한에서 이뤄진 제1차 실무회의에서는 양식과 가공 및 유통 사업을 우선 협의과제로 하고 점진적으로 동·서해 어선어업으로 확대하자고 협의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남으로 돌아보니 이전엔 관심조차 없던 다른 부서에서 갑자기 관심을 보이며 업무를 이관하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정책적으로 결정된 사항이라 업무를 인계했다. 그리고 곧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남북이 잠정합의했던 의제와 반대로 어선어업 중 가장 이슈가 됐던 NLL(북방한계선) 수역의 남북공동어로 협력사업에 치중해 3일간 의논하다가 결국 유일하게 마련된 창구를 이어가지 못하고 끝을 내고 만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북한 방문 기억

남북 수산협력 실무회의에 앞서 북한 주체사상탑 앞에 선 남북 수산협력추진단

중국 북경을 경유해 북한의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의 감회는 새록새록 안개처럼 이따금 피어오르곤 한다. 특히 우리 일행이 대동강과 연결된 보통강 옆에 자리한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제일 먼저 ‘내일 아침 보통강변을 산책을 할 것’이라고 밝히자 북한 기관원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날 우리 일행은 아침산책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초에 해주 지역의 수산 관련 현장을 답사하려고 하였으나, 북한의 기관원이 전날 밤에 있었던 군사훈련 등을 이유로 들어 일정을 취소했다. 이 때문에 우리 일행은 평양 시내를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되었고 몇 군데를 견학하고 대동강변의 주체사상탑에 고속 승강기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필자가 김삿갓 할아버지의 후손 ‘광산 김 씨’라고 하니 북한 안내원은 대동강 건너편에 있는 을밀대가 그려진 그림을 구입할 것으로 권해 부모님께 사드리기도 했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은 남포에 있는 바지락 어장 답사에 나섰다. 남포 바지락 어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만조(滿潮) 때로 높게 둘러쳐진 철조망 울타리 사이로 바닷물만 보고 북한 주민이 채취해 보관하고 있던 바지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많은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남북협력사업 합의서 채택까지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남북 수산협력사업을 맡게 된 것은 2007년 10·4 남북 공동성명의 후속으로 제1차 남북농수산협력분과위원회의 수산협력회의에 참가하면서부터다.

그간 남북 수산협력사업의 경험을 토대로 회의장에서 의견을 나누던 중 “북한은 통 크게 사업을 하자고 하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북한의 대표자는 “우리는 여태까지 사업계획을 제시한 적이 없다”하며 잠시 정회를 하자고 했다. 북한이 정회하자고 한 이유는 그 당시까지 사업계획서를 외부로부터 받아 선택했던 경험뿐이었기에 하고자 하는 희망사업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당황했던 것이다.

30분 후 재개된 회의에서 북한이 제안하는 사업은 수산종자 배양장 건립과 수산양식 및 가공·유통 사업 등이었다.

남북한 회의가 잘 되어가 쉽게 끝날 수 있겠다는 기대는 합의서에 담겨질 현지조사 문구를 넣는 문제로 무려 9시간 이상의 마라톤 회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루하게 밀고 당기는 회의에서 다행스럽게 결론을 냈던 것은 남북 대표단이 앞서 점심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가운데 의견을 나누었던 내용이 결정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일반적으로 남한에서 수산생물의 번식과 보호를 목적으로 조성하는 인공어초를 투하하기 전에 바다 속이 굴곡인지, 평탄한지 모래, 펄 또는 암반인지 등 그 상태를 사전 조사하는 절차가 반드시 따라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와 관련, 만일 육상과 해상에 시설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건축물과 시설물을 설치할 사업비만 책정되었을 때 평탄작업 등의 추가 비용 발생할 경우 남한에서는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설명하였다. 이를 반영하였는지 북한 대표자는 비교적 부담이 적은 현지조사를 수용하게 되었고 최종 합의서를 채택하게 되었다.

비록 합의서는 맺었지만 이후에 남북사업에 악재가 돌출해 남북대화마저 어렵게 되면서 합의서 이행을 위한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답보상태가 되어버렸다.

 

남북 수산협력사업 추진과제
남북 수산협력사업 추진과제

남북 수산협력사업의 과제

남북수산사업을 희망하는 사업자는 꾸준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남북 수산물 교역사업과 수산양식 및 가공·유통 사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남북의 특수 사정에 기인한다.

그래서 남북이 원만한 관계가 되고 남북경협의 화해무드가 조성되기 전까지는 신중하게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성공적인 남북 수산협력사업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남북 당국이 합의하는 범위 내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길만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북 수산협력사업은 2가지 방법으로 구분하여 진행하는데 우선 남북 당국자 간에 큰 틀에서 합의하고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협력분야 실행계획을 마련하여 흔들림이 없는 진척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남북 당국이 수산협력사업에 관한 절차 및 관리 요령(매뉴얼)을 제정·공포하고 민간협력을 위한「(가칭)남북 수산협력사업단」을 설립·운영하여 안정적으로 남북 수산협력사업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판단된다.

남북 수산협력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사업단이 활동할 수 있는 별도 용도의 예산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모든 남북 수산협력사업의 전략과 전술은 사업단에서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고 분석 및 평가한 결과를 기초로 실천사업 단계별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이행하면서 계속적으로 수정·보완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계별 남북 수산협력사 흐름도
단계별 남북 수산협력사 흐름도
신개념 남북 수산협력사업 프로젝트 체계도

남북 수산협력사업의 시사점

혹자는 엉뚱한 군사행동과 무력도발을 자행하는 북측과는 협력사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남북은 동포애와 평화 교류협력이라는 대명제에서 자손만대까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조그마한 주춧돌을 놓는다는 의미에서 남북수산사업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경험에 비추어 남북 수산협력사업 성공의 지름길은 수산업이 발전해 온 역순, 즉 수산물의 교역→ 유통→ 가공→ 양식→ 종자생산→ 어선어업의 순으로 진행할 때 연착륙을 기대할 수 있고 성공의 확률이 높다고 본다.

또한 단기간 내에 남북 수산협력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시범적으로 수산 관련 패키지 사업화를 시도해서 연계망을 구축하고 원스톱(One-Stop)으로 관리·조절하는 신개념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민간사업단 중심으로 남북 수산협력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화해 무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북 당국 및 민간사업단이 긍정적인 신호를 교환하면서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보폭이 다소 느리더라도 차분하게 준비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지려면 남북 당국은 물론이고 민간 차원의 접촉과 교류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자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 남포항 갑문 앞

지나온 몇 번에 걸쳐 남북 수산협력사업을 굳건히 하고 싶었던 것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뛰어 넘어 교류협력의 일선에서 한민족의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실현 가능사업을 점진적으로 모델화하려는 마음이었고 매사 노심초사하였던 순간들이 기억된다.

남북 수산협력사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각오와 무수한 난관을 하나씩 헤쳐 나가겠다는 굳은 결심 없이는 결코 시현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이 시각에도 교류협력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많은 손길들을 생각해서 하루빨리 남북의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희망해 본다.

3면이 바다인 한반도 연안을 따라 남해안 바닷물이 서해안과 동해안으로 오르내리는 자연의 이치가 지속되는 한 남북 수산협력사업의 염원은 현실로 성큼 다가 올 것이다.

이에 대비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한강의 물과 대동강의 물이 서해에서 만나듯이 남북 수산업이 뒤엉켜 발전하는 그날을 더불어 준비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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