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주변, 권력의 주변
한식의 주변, 권력의 주변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금융영업단장
  • 승인 2009.05.19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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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은 植木日이자 청명(淸明)이고 한식(寒食)이었습니다.

찬 음식을 먹는다는 한식, 이는 춘추 5패(五覇)의 하나였던 진(晉)나라 문공(文公)시절 개자추(介子椎)에 관한 고사에서 유래합니다.

공자(公子)시절 중이(重耳)로 불리었던 문공은 난을 피해 국외로 망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사모하는 많은 인사들이 뒤따랐습니다. 물경 19년이란 세월을 세상 이곳저곳 떠돌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정정(政情)이 바뀌면서 진나라 임금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귀국길에 문공은 황하를 건너기 위해 강가에 섰습니다. 일행중 호숙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호숙은 중이가 고국에서 도망쳐 나올 때부터 짐을 맡아서 따라다닌 사람이었습니다. 호숙은 비참했던 망명시절을 생각하면서 구멍난 솥, 모서리가 깨진 질그릇이며 심지어는 해어진 돗자리도 배 안에 실었습니다.

 중이가 돌아다보면서 웃었습니다.
  “저런 물건들을 가지고 가서 무엇에 쓰겠는가.”하며 그 물건들을 백사장에 버리도록 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호숙의 형인 호언이란 사람이 자기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19년이란 세월동안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몸도 마음도 저 구멍난 솥이나 찢  어진 돗자리처럼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이 말에 중이는 깜짝 놀라 사과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으니 어서 저 물건들을 배에다 다시 옮겨 싣도록 하라.”
 그리고는 황하를 굽어보며 맹세합니다.
 “내가 고국에 돌아가 그대들의 고생을 잊는다든지, 또한 그대들이 나와 함께 했던 그 한마음으로 나라 일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든 그 자손들에게 불행이 있을지라!”

중이는 마침내 진나라 임금이 되었습니다. 가신의 한 사람이었던 개자추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짚신을 삼아 팔아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개자추는 망명중 중이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인 인물입니다.

개자추의 친구로 해장이 이웃에 살았습니다. 해장은 도성에 들어갔다가 논공행상에서 빠진 사람은 신고하라는 벽보를 보았습니다. 이를 들은 개자추는 웃기만 할 뿐. 그러자 곁에서 노모가 말했습니다. 

 “너도 한번 가 보거라. 약간의 상이라도 받는다면 우리 모자가 곤궁한 생활은 면할 것이 아니냐?”
개자추는 어머니 앞에서 꿇어앉았습니다.
 “오랫동안 어머니를 봉양 못한 이 불효자식에게 어찌 그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주공이 임금이 된 것은 하늘의 도움 때문이었지 가신들의 공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그것이 자기들의 공로인 양 벼슬을 놓고 다투는 것이 부끄러워서 소자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아들의 뜻에 노모는 감탄했습니다.
 “너는 참으로 깨끗한 선비로구나! 너의 뜻을 지키려면 시정(市井)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綿山)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개자추가 면산으로 들어간 것을 아는 이는 친구 해장뿐이었습니다.

해장은 임금이 개자추를 돌보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시를 지어 궁성 담벼락에 붙였습니다. 임금은 그 시를 보고 즉시 면산으로 행차했습니다. 산은 깊었습니다. 군사들로 하여금 며칠이나 산을 뒤지게 했으나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누군가가 임금에게 아룁니다.
 “산에다 불을 지르십시오. 개자추는 효자이니 어머니를 위해서도 틀림없이 나올 것입니다.”
 임금은 산에 불을 지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불은 3일 뒤에야 꺼졌고, 군사들은 잿더미 속에서 타죽은 모자의 해골을 찾아냈습니다. 산에 불을 지른 날이 청명, 후일 이를 기려 3일 동안 불을 피우지 않고 미리 장만해둔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습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로 설치고 날뛰었던 전 정권의 비리에 대한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5년마다 진행되는 말도 안 되는 이런 퍼포먼스,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또한 現下 많은 공기업에 있어서 소위 ‘낙하산 인사’가 봄풀처럼 만연하다 합니다. 가신은 누구이며 공이란 무엇일까요. 모두가 이른바 ‘구멍 난 솥, 모서리가 깨진 질그릇이며 해어진 돗자리’를 짊어졌던 사람들이 나름의 공을 내세우면서 다투어 제각각 한 자리씩 차지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은 아닐까요. 사람들이 쓴소리(苦言)를 토로합니다. 가신을 떨쳐내고 능력 있는 재사(才士)를 채택하라고 말입니다.  

작은 공에 비하여 큰 공치사를 내세우는 사람들, 개자추처럼 시정(市井)에 숨어 짚신을 삼지는 못할망정 찬 음식 한식(寒食)을 한 끼라도 먹어봄이 어떨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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