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현의 양망일기 ㉓ 라스팔마스-똥개이야기
하동현의 양망일기 ㉓ 라스팔마스-똥개이야기
  • 하동현 소설가
  • 승인 2020.01.1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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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정든 사람들과 헤어짐에 버금가는, 배에서 키우던 개들과 이별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첫 배에서 짧게 키웠던 똥개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다.

- 장편수기 ‘마린보이의 꿈’에서 중 일부 발췌, 재구성한 글이다.

 

1. “꼬뇨, 네그로(염병할, 검둥이 자식).”

손수건으로 땀을 훔친 스페인 경찰이 침을 뱉으며 욕지거리를 한다. 어선전용부두, 겹겹이 정박한 배들 사이로 뜨내기 흑인부랑자의 시체 한 구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떠올랐다.

생선박스를 훔치려다 실족했거나, 어느 배 선원들과 시비가 붙어 맞아 죽었을 법한 상황이었지만 경찰들은 손을 놓고 있었다. 현지교민인 부식납품업자가 담배연기를 뿜으며 내뱉는다.

“저놈들은 신분증도 없어요. 신원확인도 못할 불법체류자인데 건져봤자 헛일이지. 경찰들 머리 아프게 생겼네.”

1984년, 라스팔마스 도착 이튿날 부두풍경이었다. 월 1천 척 가까운 크고 작은 배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있을 수 있는 일은 모두 일어난다는 여기는 자유항 라스팔마스가 아니던가.

지중해풍 온난한 기후에 스페인령 휴양지이자 보급항이었다. 1966년 11월, 해외차관으로 마련한 수산개발공사의 ‘강화1호’에 승선한 40여명 선원들이, 두 달 항해 끝에 도착해 전진기지로 터를 잡은 것이 아프리카어장 개척에 발을 디딘 시초였다.

일본인들이 버리다시피 한 낡은 중고선들을 인수해 대서양 바닥을 긁어내듯 했던 한국인들의 독고다이(특공대)식 고기잡이는 단언컨대 세계 최강이었다. 스페인이나 모로코 같은 나라들은 배를 제공하며 저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잡을 수 없는, 악과 깡으로 똘똘 뭉친 한국선원들을 인력송출형태로 용병처럼 태웠다.

‘대서양드림’이라 일컬으며, 7,80년대 우리 원양어업 전성기에 이백여 척이 넘는 한국 어선들이 만선과 풍어를 기원하며 들락거리고, 모로코, 모리타니아 국적선에 승선한 한국인 선원들과 교민들을 모은다면 한국인촌 하나쯤은 너끈히 만들 수 있었다.

문어, 갑오징어, 조기, 서대, 돔 같은 고가어종의 황금어장이라 불렀던 아프리카 어장의 전초기지였지만, 자국영해를 확대하고 규제를 강화하려는 연안국들의 움직임에 몇 수산회사들이 발 빠르게 새로운 어장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고, 우리의 경우 뉴질랜드 어장으로 배를 회항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위생과 환경을 최우선시하는 뉴질랜드 내규에 따라 어획물 처리실 구조물들을 스테인레스 재질로 교체해야했다. 거주시설과 안전장치며 허가규정에 맞추어 모두 손봐야 하는, 외판을 제외한 배 전체 시설물을 다 들어내다시피 하는 큰 공사라 주어진 석 달의 수리기간은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

어느 뱃놈 시인이 해와 달이 동시에 떠오르는 곳이라 썼듯이 라스팔마스에는 낮과 밤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휴양지로 명성을 떨치는 이면에 화끈하며 어지럽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어선전용부두의 풍경이 따로 있었다.

2,3년간의 어로계약을 마치고 귀국하는 선원들과, 새로 시작하기 위해 수 십 시간 지루한 비행으로 막 도착한 무리들이 뒤엉킨 난장판이 제일 먼저다.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배들의 뱃고동 소리에다 보급품을 싣고 온 트럭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용접불길이 치솟고 망치소리가 끝없이 울려대는 수리작업과 하역으로 한낮의 열기가 넘쳐흐른다. 금발머리 여자들이 담배를 물고 부두를 거닐며 허한 마음의 선원들 눈길을 붙드는데, 어느 한국 배에서인지 현지교민들의 방문선교에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그 와중에 줄줄이 횡으로 정박한 크고 작은 배들에서 각 나라 선원들과 현지 좀도둑이나 흑인부랑자들과의 난투극이 연이어 벌어진다. 현지 부둣가 건달들도 한국선원들은 건드리지 못했다. 사방에 짓눌렸던 세상을 피해 응어리를 가슴에 묻고 승선한 자들이 태반이라 그야말로 화약통을 두드리는 격이었으므로.

한국선원출신이 운영하는 술집 겸 밥집에서는 유행가 젓가락장단에 바로 부둣가 선술집 풍경이 따로 없었고, 각국의 뱃놈들이 모인 현지 주점에서도 한국선원들의 성난 파도같이 들이붓는 술과 고성방가에 다른 나라 선원들은 기가 질려 감히 대적할 엄두도 못 냈다.

 

2. “밥 좀 주라. 나 일 잘 한다…….”

정통 경상도 사투리만 배운 떠돌이 흑인들이 배를 기웃거렸다. 화장실 청소며 부식 나르기 같은 허드렛일은 밥만 먹여준다면 죽는 일 말고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노숙자 흑인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음바디(Mmbadi)’. 다 떨어진 슬리퍼에 피골이 상접한 꼴로 우리 배에 빈대 붙은 친구가 분필로 갑판바닥에 비뚤비뚤 써 준 이름이다.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은 선원들은 그냥 ‘바지’라 불렀다. 어느 나라인지 기억도 못하는 유럽 냉동운반선에 짐짝처럼 실려와 이곳에 내던져져 낙동강 오리알이 된 팔자다.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가 총망라된 사연을 들어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가난에 찌들어 구걸로 부둣가를 빈둥거리는 이들을 유럽 배들이 밥만 먹여주는 대가로 구슬려 태워 가둬버린다. 항해 중 온갖 고된 작업에 개같이 부리다가 이곳에 입항하면 짐짝 던지듯 무기로 위협해 쫓아내버리고 휑하니 떠나버린다. 불시에 가족과 생이별이 된 자도 있겠지만 일부러 지긋지긋한 가난을 떠나 자청하다시피 배로 오른 친구도 있단다.

자신의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아마 서른다섯 이쪽저쪽이지 싶다는 이 친구도 벌써 반 년 가까이 이 부두에서 비루먹는 파리 목숨이라 했다. 이놈은 한국배가 제일 인심이 좋다는 아부성 발언을 시작으로 불굴의 오지랖에 온갖 궂은일과 심부름을 떠맡으며 슬그머니 우리 배에 눌러앉았다. 우리가 떠날 때까지는 밥이 해결됐다는 안도감에서였는지 밤이 되면 처리실 바닥에 비닐 한 장만 깔고는 코를 골며 잘도 잤다. 한국말이랍시고 순 쌍말만 배웠지만 몸으로 때우는 개그로 곧잘 우리를 웃겼다.

이놈도 밥값을 톡톡히 할 때가 있었다. 수문장 노릇을 자청해 성가신 좀도둑들의 출입을 몸을 던져 원천봉쇄했고, 자신의 거룩한 밥줄을 건드리는 구걸족속들을 도끼눈을 부라리며 쫓아냈다.

 

3. 한 날 이놈이 난데없이 황금빛 터럭에 눈알이 반짝거리는, 영락없는 한국 시골 똥개 비주얼의 수놈 새끼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왔다. 건너편 부두 대만 참치선에서 기르던 암놈이 새끼를 다섯 마리나 퍼질러놓아 그야말로 개판이 되자, 밟혀죽을까 정신 사나워진 선장이 이배 저배로 한 마리씩 분양을 결심했단다. 그 배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바지가 우리 배로 데려가 키우겠다며 얼른 한 마리 달라했단다. 미심쩍었던지 확인 차 대만선원 하나까지 따라와 서있었다.

저마저 눈치 밥 얻어먹는 주제에 강아지 팔자가 저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여겼던지, 자신이 잘 알아 키우겠으니 선처 바란다며 하명을 기다리고 섰다.

다들 심심한 터에 반색을 하며 대환영이었다. 우리가 떠난 후 이 둘의 앞날이 은근히 맘에 걸렸지만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여하튼 강아지까지 우리 객식구가 되어버렸다. 그 배로 해수용 샴푸와 담배를 선물삼아 들려 보냈다. 유일하게 조리장만이 거품을 물었다.

“바디 너 이 새끼, 똥개 주방에 음식 핥게 했다가는 죽을 줄 알아라.”

녀석의 이름을 논의 끝에 ‘한국’이라 지었다. 바지와 수산고등학교 졸업반 막내 실항사(견습사관)는 강아지를 정성으로 키웠다. 아침저녁 목욕에다 빗질을 받는 호사를 누렸고, 우유를 떼자마자 선원들이 먹다 남긴 잔반통의 밥알까지 게걸스레 핥아대며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폭풍성장이었다.

강아지는 건강하고 영리했다. 밤이면 외출했다 귀선하는 선원들을 가장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던 가족처럼 꼬리치며 반갑게 맞이했다. 실항사의 맹훈련에 담배물고 두 발로 서 있기, 던져주는 소시지를 땅에 닿기 전에 받아먹기 같은 재주도 부렸다. 야단치는 시늉이나 괜한 호통에는 삐친 듯 엎드려 끙끙대고, 갑판장이 손바닥에 흘려주는 주스를 홀짝거리고는 아양을 떨며 옆 구르기를 했다.

음식을 날름거리다 조리장에게 붙들려 쥐어 박힐 때, 이렇게 학대할 거라면 자신이 데려가 키우겠다며 항의성 방문을 한 스페인 배 항해사를 정중히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흘렸고, 천방지축 온 부두를 싸돌아다니는 녀석을 찾아다니느라 바지와 실항사가 발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일에 지친 날들이 더디게 흘러갈 때, 이 둘은 삭막한 배에서 선원들에게 웃음보따리를 안겨주는 존재였다.

 

4. 하지만 이 객식구 둘의 운명은 예정보다 빨리 꼬여버린다. 두 달 반여가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바지가 사라졌다. 몸뚱이 하나뿐인 형편에 흔적이야 남길 것도 없었다지만 온다간다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의 실종에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우리가 떠난다면 밥줄이 날아갈 판이라, 다시 거지신세가 될 앞날을 생각해 다른 배에 눌러 붙었을 거라는 의견은 절대로 강아지를 두고 혼자 갈 리 없다는 반박에 힘을 잃었다. 우리 배 선원이라도 된 듯 행세하며 출입을 막고 싸우듯 쫓아냈던 흑인 부랑자 무리들에게 밉보였거나, 한 번씩 배에서 쥐어주는 소주에 취해 어떤 사고를 당했을 거라는 짐작에 무게가 실렸다. 혹시나 해서 모두 챙겨 보았지만 돈이 될 만한 것을 훔쳐간 정황도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자 강아지는 바지가 그리운지 부두를 배회하는 흑인들을 일일이 확인하듯 노려보다가 그의 잠자리가 있던 처리실 바닥을 킁킁대며 안절부절 했다. 지켜보던 기관장이 말했다.

“도대체 연탄(바지) 그눔아가 갑자기 없어져 뿌린기 뭔 조화인가 모르겄네. 보래이, 그놈도 없는데 똥강아지 저거만 나중에 부두에 던져버리고 갈 수도 없다 아이가. 정 끊을라믄 빨리 어찌해야 될끼다.”

묵묵히 듣고 있던 갑판장이 거들었다.

“맞소. 이곳 아프리카에서야 배에 태우고 들락날락 해도 되지만 검역 때문에 뉴질랜드로 태워 갈수도 없고, 저 놈 어미 있는 대만배도 나가뿌맀고 키우겠다던 스페인 배도 없고, 인자 맡길 데가…….”

남은 수리기간만이라도 악착같이 데리고 있겠다는 실항사가 울상이 됐다.

마침내 뉴질랜드 입어시기에 맞춰 마무리 수리는 항해 중에 계속 진행하기로 하고 출항날짜가 잡혔다. 결국 강아지 ‘한국’이의 거취는 대리점에 조회해 흔쾌히 키우겠노라 약속한, 곧 출어할 모로코 어선에 보내기로 결정되었다. 미리 보내봤자 도망쳐 올지 모르니 출항시간에 맞춰 재빨리 넘기고 돌아와야 한다는 기관장의 충고까지 실항사 가슴을 후벼 팠다.

강아지를 떠나보내는 날 배 전체가 침울했다. 이놈은 어떤 불길한 예감이라도 드는지 모두의 눈치만 살피며 밥도 거르고 납작 엎드렸다.

마지막 목욕을 마친 놈을 갑판장 영감이 품에 안고 배를 나섰다. 녀석은 선원들의 씁쓸한 배웅에 오들오들 떨며 눈을 깜박거렸다. 초롱한 눈망울로 꼬리치며 잠시나마 생명의 따뜻함과 활기를 선사했던 녀석과의 이별이었다.

뒤따라 달려 나간 실항사는 한 시간 후 쯤 휘적휘적 배로 돌아왔을 때 눈가가 젖어있었다. 갑판장이 실항사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허참, 그 배에 넘가줄라는데 실항사한테서 악착같이 안 떨어질라 카는거 있제. 통곡하듯이 울어대는데 나도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

이별에 익숙한 뱃놈들이었지만 또 하나의 가슴 아픈 헤어짐이었다.

갑판장은 그날 오후 작업을 일찍 마치고 캔 맥주라도 하나씩 돌리자는 건의를 했다. 우리가 가장 힘들어 한 것은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떠나보내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때 첫 기항지 라스팔마스에서 만난 친구 둘을 함께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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