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등 비과세 예탁금제 일몰로 ‘30조’ 피해 ‘위기’
수협 등 비과세 예탁금제 일몰로 ‘30조’ 피해 ‘위기’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0.01.1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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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금융기관 존폐기로에 내몰려

[현대해양] 상호금융 비과세 예탁금 제도의 일몰이 올해 말로 다가옴에 따라 수협, 농협 등 상호금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상호금융 비과세 예탁금 제도가 폐지되면 대량 고객이탈현상이 일어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고 조달원가 상승 및 대출금리 인상 등으로 이어져 협동조합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것.

당초 세법 개정으로 2019년부터 준조합원에 대해 분리과세(2019년 5%, 2022년 9%)를 적용키로 했던 것이 국회에서 2년 연기되면서 2020년 말 일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특단의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 한 당장 내년부터 준조합원에 대해 2021년 5%, 2022년 9% 분리과세가 적용될 예정이다.

상호금융 비과세 예탁금 제도는 협동조합 등 상호부조의 성격을 가진 서민금융기관을 이용하는 조합원, 준조합원, 회원이 예탁한 일정 금액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는 제도다. 1인당 상호금융 예탁금 3,000만원, 출자금 1,000만원까지 이자소득세 14%(정상세율 15.4%-농특세 1.4%)를 면제하는 이 제도는 지난 1973년 농어촌 지역경제를 육성하고 농어민 영세서민의 목돈 마련을 통해 소득보전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됐다.

 

‘중상위층 절세수단’은 어불성설

이런 순기능과 취지에도 불구하도 이 제도가 고소득층의 절세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비과세 예탁금 제도는 수협, 농협, 산림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기관에서 만 20살 이상의 조합원 및 준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서민금융저축 상품으로 대부분의 가입자가 저소득 서민계층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최근의 상호금융기관은 금융환경변화 속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어업인의 감소와 더불어 수협 조합원이 감소하고, 금융업권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시중은행의 소도시 진출이 확대됐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상호금융기관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상호금융 조합원 및 준조합원의 예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규정하고 있는 조세특례제한법 제89조의3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 일몰을 앞두고 있는 것.

이 제도의 일몰 위기는 처음이 아니다. 앞서 8번이나 일몰이 연장됐다. 1995년 관련법이 일몰제로 변경된 이후 정부의 세제개편이 있을 때마다 비과세 예탁금의 일몰기한을 연장할 것인지 일몰 조치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져왔다.

송두한 농협금융지주 금융연구소장은 지난 2018년 8월 10일자 <농민신문> 기고를 통해 “비과세 예탁금 제도는 지난 40여 년 동안 금융의 실물 지원기능에 충실한 정책상품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역할을 해왔는데, 그 중심에는 준조합원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 준조합원 비과세 예탁금이 ‘고소득층의 절세수단’으로 치부되면서 이 제도가 지닌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특히 조합원과 준조합원을 분리하는 접근은 사실상 이 제도를 폐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신숙 수협중앙회 상무는 “비과세 예탁금 제도가 일몰되면 조합원보다 훨씬 많은 준조합원이 대거 이탈할 것”이라며 “준조합원이 협동조합 수익센터 역할을 하지 못하면 수협이 어업인 지원단체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돼 결국 정부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업인 지원사업도 위축될 수밖에 없어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주장처럼 수혜 대상이 ‘금융 소외계층 자산형성’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일까?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 이미용·조용준 박사팀이 2014년 지금처럼 일몰 논란이 있을 때 ‘비과세 예탁금 폐지가 수협 상호금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수협 상호금융을 통해 신규대출을 신청한 조합원 및 준조합원을 표본으로 소득을 비교한 결과, 조합원과 준조합원의 소득 차이가 거의 없으며, 두 집단 모두 평균 소득 수준이 3,000만원 내외의 서민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원의 54.8%, 준조합원의 59.4%가 연간 3,000만원 미만의 소득 분포를 보였고, 각 집단의 소득 중앙값(median)은 각각 2,406만원, 2,359만원이었다. 따라서, 비과세 예탁금이 부유한 준조합원의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정기예탁금에 비과세 한도액인 3,000만원을 예치했을 때 비과세 상품과 일반 과세 상품 간의 이자수령액 차액, 즉 절세액은 8만 6,100원에 지나지 않는다(2019년 11월 기준 1년 정기예탁금 평균 금리인 2.05% 적용). 따라서 비과세 예탁금 제도가 중상위층 자산가의 절세수단, 혹은 조세회피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비과세 예탁금 제도 폐지는 국가 세수 증대에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득보다 실이 많다는 분석이다. 수협중앙회 분석에 따르면 비과세 예탁금 폐지를 통해 정부가 기대할 수 있는 세수증액은 수협 비과세 예탁금 기준으로 2021년 68억 원, 2022년 이후 연 123억 원(2019년 11월 1년 만기 정기예탁금 신규금리 2.05% 기준)이다. 또한 2015년 조세재정연구원 조세특례 심층평가를 기준으로 비과세 예탁금 제도가 일몰될 경우 비과세 예탁금 중 약 19.7% 가량이 이탈해 1조 3,142억원의 재원 감소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11월말 기준 수협 상호금융 비과세 예탁금은 전체 예탁금의 24.1%인 27조 6,318억 원에 이른다. 수협 준조합원 수는 34만 3,000여명이고 예탁금은 6조 3,345억 원으로 무려 비과세 예탁금의 95%에 수준이다. 이 말은 금융환경이 악화돼 준조합원들이 이탈하면 자산 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금융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 기반도 약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수협 상호금융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23억 얻기 위해 1조 원 날리는 꼴

결국 정부는 123억 원(2022년 이후 9% 분리과세 기준)의 세금을 더 거둬들이기 위해 세수 증액의 수십 배에 달하는 1조 원 이상의 서민금융 재원 감소를 감수해야만 한다는 결론이다. 수협의 비과세 예탁금 규모가 전체 상호금융기관의 비과세 예탁금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정도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비과세 예탁금 폐지에 따라 전체 상호금융기관으로부터 발생할 서민금융 재원 감소액은 최소한 3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비과세 예탁이 폐지되면 상호금융기관들은 예탁금의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 경우 높아진 금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대출자들의 대출감소로 이어져 상호금융기관에 또 다른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자율: 2.05%(19년 11월 기준 1년 정기예탁금 평균 금리) 기준

만약 상호금융기관이 재원유지를 위해 금리인상을 결정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소득·저신용의 서민층에게 돌아갈 수 있다. 신용등급이 우량한 대출고객들은 상호금융기관을 떠나고, 반대로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으로 이탈하기 어려운 고객들은 남아 인상된 금리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과적으로 ‘부실채권 증가-경영실태평가 등급 하락-경영개선을 위한 금리인상-우량고객 이탈-부실채권 증가’ 등 서민금융을 위축시키는 악순환 구조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수산경제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예탁금의 이탈은 예대마진 감소로 이어져 당기순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협중앙회 91개 회원조합 중 과반수(46개)가 전년 당기순이익 대비 10% 이상의 이익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각 회원조합의 예탁금 이탈은 예대율 증가로 이어진다. 지난 2011년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계부채연착륙 종합대책’에 따라 대출금 200억 원 이상의 조합은 예대율 80%이하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예대율 한도를 초과한 조합들이 예대율을 낮추기 위해 수신금리를 인상할 경우, 여신금리 상승이나 대출만기 연장거부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상호금융의 본연의 기능인 서민금융지원과 대치되는 결과이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 보면, 상호금융기관의 비과세 예탁금 제도는 본래의 도입취지에 부합해 서민의 재산증식과 서민금융의 선순환 시스템으로서 제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는 것.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비과세 예탁금을 부유층의 탈세 수단으로 오인하거나 세수 증대를 위해 폐지할 경우, 상호금융기관의 붕괴와 더불어 서민금융의 악화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이다.

 

“비과세 예탁금 제도 영구화 해야”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8년 7월 16일자 <한겨레> 칼럼에서 “정부는 조세수입 확보라는 거시적 차원의 논의에서 한걸음 벗어나 농어촌 지역의 서민금융을 통한 재산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비과세 예탁금 일몰 기한을 연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 교수는 “고령화와 소득 감소로 갈수록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어촌 지역의 사회보장적 기능을 하는 차원에서 비과세 예탁금 제도를 바라봐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위원장은 <현대해양>을 통해 “정부가 세수 부족에도 불구하고 세제혜택을 마련해 세금을 덜 걷는 것은 형편이 어려운 농어민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비과세 규모가 늘어났다고 해서 3,000만 원 기준 연간 6만 원에 불과한 농어민들의 비과세 혜택마저 폐지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준조합원 비과세 혜택 폐지는 시기상조다”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황 위원장은 지난 2018년 7월 3,000만 원 이하 비과세예탁금의 비과세 적용시한을 10년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조세감면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럼 반대로 비과세 예탁금제는 어떤 농어민 등의 조합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비과세 예탁금 폐지가 수협 상호금융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에서 수협의 조합원과 준조합원의 예대율을 비교해 본 결과, 조합원은 194.4%, 준조합원은 61.9%이었다. 준조합원의 예탁금이 조합원에게 대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협 상호금융 비과세 예탁금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준조합원 예탁금은 상호금융 재원으로서 서민금융 선순환구조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2~3년씩 짧은 일몰 연장을 되풀이하며 시한부 유지를 이어갈 것이 아니라 비과세 예탁금 제도를 영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더불어 농·수협 등의 상호금융 업무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26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농협중앙회가 주최, 농민신문사 주관한 ‘농협 상호금융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윤건용 농협미래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비과세혜택에 대한 일몰 연장으로 유지돼온 비과세 예탁금 제도는 상호금융기관의 유동성 제고 및 금융시스템 안정성 차원에서라도 영구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정봉 한국수산회 부설 수산정책연구소장은 “상호금융 비과세 예탁금 제도가 폐지되면 상호금융기관의 금리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상당액의 상호금융 예탁금이 시중은행 등으로 빠져나가 상호금융기관의 서민금융 기능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비과세 예탁금 제도를 항구화(恒久化)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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