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기자재 손 놓고 있는 한국
수산기자재 손 놓고 있는 한국
  • 최정훈 기자
  • 승인 2020.01.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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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식품·양식산업 견인차임에도 불구
▲수산기자재 제조공장

[현대해양] 수산업이 1차산업을 넘어 가공, 유통, 서비스를 아우르는 6차산업으로 변모하고 있지만 수산업의 요체인 기자재산업은 여전히 정책적 관심을 못 받고 좌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래 수산업 견인차

모든 산업의 벽이 허물어지는 4차산업 시대 언저리에서 수산업 종사자들도 가공, 유통, 서비스 등 다각도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와 같은 지각변동 국면에서 수산업의 돌풍을 몰고 올 분야로 양식업과 식품업이 떠오르고 있다.

미래신기술학자 윌리암 하랄(William Halal)이 앞으로 양식업이 세계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단언한 만큼 각국이 안정적인 수산자원확보를 위해 양식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건강식으로 각광받는 수산물 수요가 급증하는 동시에 간편식 등 1인가구가 주 구매층으로 부상한 트랜트에 발맞춰 수산업도 원물을 가공하는 수준에서 고객 입맛을 고려한 다품목 소량생산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같은 추세에 걸맞게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수산기자재의 가치도 커질 전망이다. (사)한국수산기자재협회에 따르면 수산기자재는 크게 △기르는 어업용, △잡는 어업용, △수산물 가공용, △위생 처리용으로 구분되는데 이중 양식 및 가공·위생 관련 기자재가 주역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가 이미 기자재산업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동향분석(V.161)에 따르면 양식기자재 시장규모는 2017년 636억 달러에서 2022년 890억 달러로 증가될 전망이며 특히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성장세가 기대된다. 수산가공품시장은 479억 달러에서 679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전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잠식한 노르웨이 연어가 이와 같은 선진 양식, 식품기술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성과물이라는 평가다. 노르웨이는 지구상 가장 최악의 해상환경으로 명성이 자자한 북해에서 원유를 시추하는 해양플랜트 기술력을 접목한 외해양식장에서 연어를 대량생산하고 있으며 소수의 인원만이 제조에 참여할 만큼 전 가공 과정에 자동화가 안착됐다. 사료, 양식, 가공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노르웨이 수산기자재 산업은 수조원에 이르는 시장을 형성했다. 또한 가공식품 선도국인 독일, 일본 등에서도 고차원의 수산물 가공기자재 수출을 통해 이미 수산기자재가 수산업 나아가 국가 GDP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식장 관리하는 모습
▲국내 양식장 관리 모습

 

농업에 있는 ‘육성법’도 없어

이에 반해 우리나라 기자재산업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KMI에 따르면 국내 양식기자재 시장규모는 7,000억원인데 반해 국산화 비율은 56%로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연간 무역수지에서 190억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가공기자재 시장규모는 약5,000억원, 국산화 비율은 57% 정도로 추정된다.

여타 수산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수산기자재산업의 성장판이 여전히 닫힌 이유는 국가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가는 시선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종사자의 지속적으로 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세에 직면한 수산업은 당장 국가의 보조없이는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동일하게 생산인구 감소 문제로 고심하는 전통적인 산업인 농업분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농업에는 이미 1978년도에 정부가 창고, 트렉터, 비료 등 여하 불문하고 기자재 가격의 70~80%(현행 50%)를 보조하는 ‘농업기계화 촉진법’을 제정한 덕분에 지금은 가장 기초적인 거름, 비닐 등 간단한 자재까지도 1,000원, 2,000원에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농기계 임대는 물론이고, 수리도 정부가 주도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탕이 돼 ‘대동기계’ 등 굴지의 글로벌 농업기자재기업의 성장도 견인한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농기계의 우수성은 세계 곳곳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농기계 수출연구사업단(KATI)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기계 수출규모가 2018년 기준 10억4,200만 달러에 무역수지 4억 8,1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농업 업계는 수출 경쟁력 확보에 방점을 찍고 국가차원에서 기관별로 중소기업 농기자재 수출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농림축산부 ‘농기자재 수출기업육성 지원사업’, 농업기술실용화재단 ‘해외테스트베드지원사업’, 한국산업기술진흥원 ‘ODA지원사업’, 한국농어촌공사 ‘해외농업개발지원사업’ 등 우리 기자재를 세계 곳곳에 안착시키는데 전폭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와 같이 업체와 정부가 의기투합한 결과 농업 분야는 이미 트랙터를 중심으로 현지 맞춤형 농업기계를 개발하는 제품 단위 수출을 넘어 플랜트 단위 수출을 통해 현지생산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이에 반해 수산업은 기본적인 육성법조차 없어 성장이 답보상태이다. 수년전 (사)한국수산기자재협회 차원에서 부산발전연구원(BDI)에 자체 용역을 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014년 해수부로, 이후 국회의원 입법 발의를 위한 KMI 주관 용역 단계까지 진전된 바 있다. 이와 같은 노력 끝에 지난 2016년 8월 제345회 국회(임시회)에서 박지원 의원 등 15인이 ‘수산기자재산업 육성법’을 공동 발의했으며, 또한, 지난 2019년 4월 국회(임시회)에서 경대수 의원 등 10인이 ‘식품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으나 관계부처의 의견 차로 마찰음이 나오고 있다.

결국 기본법도 없이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진전돼야 하는데 현장의 수산인들은 불만이 많다. 수산기자재 경영지원을 담당하는 해수부 소득복지과의 변혜중 과장은 “육성법이 이번 국회에서는 통과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본 과 한 곳에서 수산기자재에 대한 경영지원 사안을 결정,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데 현행법인 수산업법, 어촌발전법, 양식산업법 등에 기자재 육성을 위한 방안이 들어가는 방식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지원 대상이 대부분 기자재 수요자인 생산자, 가공업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기자재산업을 직접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은 없는 상황이다.

업계가 해수부와 국회를 붙들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는 팔짱만 끼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수산인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한국수산기자재협회장을 7년동안 역임한 정석봉 ㈜참코청하 대표는 “기자재에 대한 법적 정의, 범위도 없는 불모지에서 산업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기본법 제정을 줄곳 주창해 왔지만 번번히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양식, 가공, 어업, 낚시 등 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농업의 경우 작물, 채소 심지어 가축까지 동원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합심해서 목소리를 내는데 수산업은 단일대오조차 안되니 제대로된 화력이 나올 수 없다고 거듭 아쉬워했다.

양식장 사료 제조
▲양식장 사료 제조모습

 

스마트양식 하고 싶어도 ‘그림의 떡’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양식분야의 기자재 지원 현황은 어떠할까. 양식장 자체가 바다에서 가두리, 펌프 등 기자재를 결집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을 감안할때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공경석 (사)한국수산기자재협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현행 양식지원 시스템이 대규모 프로젝트 건에만 해당될 뿐이지 영세한 대부분 어업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정부가 스마트양식에 방점을 찍고 양식산업 육성에 통크게 지원한다는 태세이지만 몇십억원대의 참치외해양식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건에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기존의 대부분 양식장 어업인들은 소품종 다종 생산 규모이다 보니 자기자본으로는 현실적으로 버거운 실정이다.

기존의 양식장 어업인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은 현재 해수부 소득복지과에서 지자체, 수협과 위탁계약을 통한 수산장비융자사업과 수산장비임대사업이 대표적이다. 양식장관리선, 액화산소통, 대형크레인 등 공공재 성격의 기자재를 저렴하게 대여할 수 있고 개인한도 1억원 내 필요한기자재에 대해 80%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연간 예산이 30억원에 그치고 지자체, 수협마다 까다로운 개인 사정과 신용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존이 어업인이 아닌 외지인이 신규 양식장을 경영하겠다며 기자재 지원을 받으려고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마창모 KMI 수산정책연구실장은 “농신보에서 스마트농어업은 최대 70억원까지 융자가 가능하나 실제 담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사실상 어업회사법인을 만들어서 지원을 받거나 정부의 친환경공모사업 등 매칭 사업을 통해 지원받는 루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단연 어촌계 가입이라는 벽을 넘었다는 것을 전제로 영어자금, 귀어귀촌자금, 영어민후계자, 농신보 담보, 해수부 친환경 공모사업 등 여러 루트를 통해 기자재를 구입할 수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냉동수산물 이외 수산물, 어업권 등에 대한 담보능력이 없고 금융권에서도 경험이 전무한 상태이다보니 농신보나 공모사업의 경우 땅 혹은 부동산을 담보로 요구하는 상황이다. 또한, 어민들을 위한 수협은행 또한 은행의 건전성을 압박하는 ‘바젤3’에서 자유롭지 못해 신용도가 낮은 어업인에 대해선 듯 대출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식품산업 견인할 기자재산업 육성해야

또 하나의 미래 수산업의 주역이 될 가공기자재도 기지개를 못 켜고 맥없이 풀이 죽은 모양새다. 정석봉 참코청하(주) 대표이사는 “식품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를 여실히 목격하고 있지만 기자재산업에 대한 정부의 시선이 싸늘하다”고 꼬집으면서, “수산기자재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기자재를 생산하는 업체들도 수산기자재만하기 보다 농업기자재도 병행하며 경영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현행법인 식품산업진흥법에는 식품산업 기술 개발 및 농수산물 가공산업 육성 정책수립을 통해 가공기자재산업을 육성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수산물 가공기자재 업체 중 수산정책자금을 이용하는 업체는 전무하고 주로 수산모태펀드 혹은 중소기업정책자금, 농업정책자금 등을 우회적으로 지원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혁신적인 수산식품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찬 수산 벤처·스타트업들은 한국해양수산기술진흥원(KIMST)에 R&D 신청을 통한 기술관련, 혹은 귀어귀촌종합센터, 국립수산과학원의 창업프로그램을 통해 귀어귀촌관련 수산모태펀드의 지원사격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수산모태펀드가 적자 늪에 빠져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

마창모 실장은 “업체들이 금융시스템 지원을 받기 불투명해 수산모태펀드에 기대고 있지만 마이너스가 나오고 있다”며, “비슷한 농업펀드쪽 업체들이 바이오 등 2, 3차산업에서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것과 달리 수산분야는 여전히 원물중심 제품이 많다”고 진단했다. 식품산업이 발전하고 있지만 당장은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원물중심 지원에서 맴돌고 있다보니 수산식품의 대반등이 어려운 형국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자재의 활성화가 시급한 대목이다.

KMI 해외시장분석센터는 기자재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본법 제정을 통한 공통적인 기본 방향 설정이 선행돼야 하며 국내시장 규모, 국산화 비율, 교역 규모를 감안해 양식기자재의 경우 선내수 후수출 전략을, 수산물 가공 기자재는 내수 및 수출병행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한다.

될성 부른 수산기자재 육성을 위한 관심이 모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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