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업 50년에 느끼는 소회(所懷)
원양어업 50년에 느끼는 소회(所懷)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08.10.30 1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학창시절 센티멘털리즘(sentimentalism : 감상주의)에 빠져 즐겨 암송했던 「안톤 슈낙」의 산문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생각난다.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과 세월의 흐름 속에 명멸해 가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수채화처럼 그려낸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자연과 인간과 삶과 죽음에 대해 음미하곤 했다. 그의 글 속에는 인간의 영혼을 순화시키는 청량함이 깃들어 있었다.

 “울음 우는 아이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해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 쟈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그루 노목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지난 6월 2일 오양수산의 김성수 회장이 타계했다. 우리나라 원양어업 역사의 한 획을 담당했던 지철근 회장이 세상을 떠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의 수산원로가 스러진 것이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우리나라 원양어업이 존폐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는 시점에 한 사람의 수산계 원로를 잃었다는 슬픔도 슬픔이지만 회사를 둘러싼 가족 간의 다툼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슬프게 만든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점거한 장남과 회사원들의 농성, 모자(母子)간에 벌어지고 있는 금융채권 반환소송, 형제간의 반목과 질시....

 난파하는 선박 안에서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 같은 추악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쇄락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원양어업의 치부를 바라보는 것 같아 부끄럽고 서글픈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누구의 잘 잘못을 따지기 전에 수산 업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혐오감으로 변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라고 설파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경구(警句)가 떠오른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원양어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은 존재였다. 책 만드는 회사가 바다에 뛰어들 정도로 매력 있고 수익성 좋은 사업이었다. 그 당시 원양회사들은 돈도 많이 벌었다. 속된 말로 ‘잘 나갈 때’ 그들이 수산계 발전을 위해 어떻게 처신했고 ‘가진 자의 의무’를 다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돈은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돈을 잘 쓰는 방법이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돈을 잘 쓰는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패배자가 된다.

 원양어업 50년의 역사를 기록하는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수산인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나라 수산업의 백년대계를 다시 수립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구조조정이 능사는 아니다

 올해는 우리나라 수산업이 한반도를 벗어나 대양(大洋)으로 첫발을 내디딘 지 꼭 5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1957년 인도양으로 향하는 지남호(指南號)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열망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수산대국 일본처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해양수산인들의 가슴속에는 그 때의 환희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허탈함과 서글픔만 가슴에 가득하다. 신기루처럼 떠올랐던 고려원양의 신화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고, 지금까지 대한민국 원양어업의 자존심을 지켜온 기업들마저 200해리 신해양법, 시장개방, 유류대 인상, 환율급락, 선원부족, 선박노후화 등등 수없이 많은 장애물 앞에 절망하고 있다.

 특히, 그 장애물 가운데 가장 절실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기업의 승계문제다. 50년의 세월이 말해주듯이 원양어업 창업 1세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칠순을 넘어섰다. 선친의 가업을 이어받은 2세 경영인들도 육순을 넘긴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어느 누가 감히 노도처럼 밀려오는 저 파도를 헤치며 고기잡이에 나설 것인가. 국민소득 1천달러, 2천달러 시대 우리 수산인들이 가졌던 강인한 집념과 도전정신을 소득 1 만달러 시대 꿀맛만 보면서 살아온 세대들이 어찌 감히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경제 원론적 안목과 한계기업 퇴출논리로 수산업을 재단 하려든다면 우리나라 수산업, 특히 원양어업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수산업을 식량산업으로 받아들이는 길 밖에 없다. 식량산업을 포기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와 안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명심해야 한다. 수산업 인구가 적다고 해서, 그리고 정치적 비중이 낮다고 해서 수산업을 홀대하거나 재정적 지원을 줄여나간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감당하기 어려운 국가적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구조조정만이 능사(能事)가 아니다. 재경부를 포함하여 해수부와 수산계 대표들이 머리를 맞대고 식량산업인 수산업이 더 이상 침체되는 것을 차단하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해 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07년 7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